도시바.후지쯔의 차세대 메모리 포괄적 제휴의 배경과 전망

 일본 반도체업계 순위 2·4위인 도시바와 후지쯔가 최근 차세대메모리분야에서 포괄 제휴했다. 3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이들 두 업체의 제휴를 놓고 대부분의 일본언론들이 일본 반도체업계를 이끌어온 강자간 연합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세계 메모리업계의 지각변동까지 예상했으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 제휴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두 업체가 90년대 초까지는 세계 반도체메모리시장을 좌지우지했음에 틀림없으나 최근 메모리 시황 악화로 두 업체 모두 메모리분야에서 고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점유율도 상당히 하락한 상태기 때문에 「강자연합」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이번 제휴는 D램 사업 유지에 급급한 패자간 연합으로 실제로 전문가들은 두 업체를 합친 D램 세계시장 점유율이 10% 미만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두 업체간 제휴가 앞으로 메모리를 뛰어넘는 반도체 전반의 제휴로 이어지게 될 경우에는 세계시장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는 경쟁력 높은 연합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번 도시바와 후지쯔 포괄 제휴의 핵심이 되는 1GD램은 미세가공기술 등을 포함한 관련기술을 단독으로 개발할 경우에는 약 1천억엔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다. 지난 96년부터 지속된 메모리 시황 악화로 도시바·후지쯔의 올 회계연도 반도체사업 연결재무제표는 각각 3백억엔과 5천억엔의 영업적자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두 업체 모두 메모리반도체사업이 기업 경영의 가장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상황으로 투자 여력도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내년부터 본격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1GD램 개발비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이번 제휴는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특효약임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이 제휴는 기술개발 뿐만 아니라 공동생산문제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어 기술개발보다 한층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하는 설비투자까지 절반씩 분담하게 되기 때문에 투자비 절감 효과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휴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궁지에 몰린 두 업체의 초췌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회사 모두 주력사업이던 D램 시황의 악화로 반도체사업 전반에 걸쳐 심각한 실적부진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이번 제휴를 장기적 안목에서 이뤄진 합리적 결정이 아니라 당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은데 이같은 분석을 내놓고 있는 전문가들은 「이번 제휴는 최근까지 메모리왕국으로 불렸던 일본 반도체산업의 지반붕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도시바는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규모의 D램 업체로 군림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IDC 조사에서 도시바의 업계 순위가 8위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도시바가 이번 제휴와 같은 여러 가지 부양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지난 92년부터 미국 IBM과 독일 지멘스 등 대표적인 반도체업체들과 제휴, 3사 연합을 중심으로 하는 메모리사업 전략을 펴왔다. 이들 연합은 현재도 2백56MD램을 공동개발하면서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본격 논의에 들어갔던 1G급 이후 제품에 대한 개발 협의 과정에서 IBM이 참여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교섭이 중단된 상태다.

 이 때문에 도시바는 올해 초부터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해 왔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자사와 마찬가지로 D램 투자부담으로 고민하고 있는 후지쯔인 셈이다. 그러나 후지쯔로 막강한 파트너였던 IBM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고 게다가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1GD램 개발투자부담 문제는 해결됐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이번 제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도시바와 후지쯔가 앞으로 D램 사업 전체를 통합한다고 가정해도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은 10% 미만. 현재 수위업체인 한국 삼성전자와 일본 최대업체인 NEC와의 차이는 여전히 크다. 또 지난 10월 미국 TI의 메모리사업부문을 인수하면서 급속히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존재도 부각되고 있어 이들 3사의 점유율이 앞으로 세계 D램 시장의 절반을 넘어설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도시바와 후지쯔는 「점유율이 아니라 이익중심으로 사업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지금까지의 경험상 가격경쟁이 치열한 D램 시장에서는 결국 생산규모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 반도체산업은 D램 이외의 분야에서는 미국과 유럽업체들에게 완전히 눌려있는 상태로 현재 시스템 온 칩 등 새로운 분야 개척을 서두르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도 막대한 개발자금을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시장전문가들은 도시바와 후지쯔의 포괄적 제휴가 앞으로 메모리 뿐만 아니라 시스템 온 칩,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된다면 상황이 크게 반전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두 회사의 반도체사업 규모를 간단히 더하면 1조3천억엔에 이르기 때문에 세계 2위의 반도체업체로 탈바꿈해 경쟁력 제고에 많은 보탬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제휴가 예상대로 현실 탈출을 위한 메모리분야 제휴에 머무를 경우 한정된 시장에서의 「약자연합」에 그쳐 진정한 의미의 위기극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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