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새너제이에 있는 해외소프트웨어지원센터(KSI:Korea Software Incubator) 사무실. 많은 해외시장 개척의 교두보로 각계의 관심 속에 문을 열었던 지난 4월의 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몇몇 사무실은 아예 사람이 나오지 않는지 며칠째 문이 닫혀 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무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밤이 되면 아예 고요 속에 파묻힌다. 입주업체 중 새벽까지 일에 파묻혀 있는 벤처의 모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신기술이 경쟁을 하는 실리콘밸리에서 신화를 이루겠다던 「아메리칸 드림」은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일부 기업들은 진출한 지 몇 달도 안돼 해외자본 유치에 성공하는가 하면 많지는 않지만 제품 공급계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예 진출을 포기한 기업들도 많습니다. 뚜렷한 마케팅 전략이나 시장자료도 없이 「일단 가면 되겠지」하고 무작정 왔다가 변변한 시도도 못해보고 실패한 것이지요.』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있는 한 정보통신업체 사장은 많은 기업들이 구체적인 자금조달 계획없이 현지에 진출해 파견 직원들이 생존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한다. 본사에서 제대로 운영비가 송금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 임대료 등은 소프트웨어지원센터 등에서 저렴한 가격에 해결한다고 하지만 식사와 숙박 등에 필요한 생활비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진출 목적이 좀더 신속한 정보습득과 제품개발 때문이라면 본사에서 최소한 1∼2년은 자금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럴 형편이 아니라면 철저히 생존전략을 세워야지요. 본사는 몇 달 지원하다가 힘들다 싶으니깐 금방 손을 놓고 현지 직원들도 철저히 혼자 서보겠다는 각오가 없어요.』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한 벤처업체 사장은 『국내 기업들은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고 꼬집는다. 밤새워 시장조사를 하고 개발을 해도 미국 벤처기업들과 경쟁이 될까 말까인데 서울에서보다 더 편하게 생활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해외소프트웨어지원센터 등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의 역할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소프트웨어지원센터에서 현재 지원하고 있는 것은 근무장소와 미국정착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단순한 수준입니다. 마케팅과 해외 자본유치를 지원한다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전문가가 너무 부족해요.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현지 전문가가 없어 깊이 있는 지원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죠. 기업들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면 단순히 해외언론이나 벤처캐피털의 주소를 알려주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해외소프트웨어지원센터에 입주해 있는 한 벤처기업 직원의 말이다. 미국시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없이 지원센터를 열다보니 정작 지원에 쓸 정보가 축적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외에 정부기관이나 단체 등에서 쇄도하는 자료 또는 보고서 요청 때문에 소프트웨어지원센터에서 정작 필요한 일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같은 문제점에 대해 소프트웨어지원센터도 인식하고 있다. 해외소프트웨어지원센터의 박승진 소장은 『실리콘밸리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려면 우선 기업선발부터 미국의 기업문화에서 경쟁력이 있는 회사를 뽑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국내 벤처기업들이 미국 기업문화를 익힐 수 있도록 입주사 중 몇몇 기업은 현지 2세 기업들을 대상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기업들이 실리콘밸리 진출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손쉽게 알 수 있도록 내년 1월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리콘밸리 진출은 우리 기업들이 꼭 넘어서야 할 벽이다. 국내 시장이 침체의 늪에 빠져있는 지금은 그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그 꿈은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미국인들도 성공하는 확률이 1% 미만인 실리콘밸리에서 언어장벽과 인적 네트워크 부족이라는 이중의 어려움에 시달려야 하는 국내 벤처기업들은 더욱 그렇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진출 전에 더욱 철저한 조사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또 정부도 건물이나 보고서 같은 외형에 치중해 「백화점식 지원」을 외칠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필요한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 차츰 지원의 범위와 내용을 넓혀 나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장윤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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