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업체로 분류돼 그동안 통신서비스시장 진출에 제약을 받았던 현대와 삼성의 행보가 최근들어 심상치 않다. 이들 양대 재벌은 각각 현대전자와 삼성전자라는 간판기업을 갖고 있지만 21세기 최대 자원인 전파자산을 확보하지 못했고 최근 대기업 빅딜, 기간통신사업자 동일인 지분한도 철폐, 통신산업 구조조정 등 대내외적인 환경에 힘입어 유무선 통신서비스시장에 직접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업계로부터 받고 있다.
현대와 삼성은 아직까지는 노골적인 서비스시장 진입을 천명하지 않고 있지만 서비스업체의 지분 인수 및 확대 등을 통해 「원격경영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이 단말기시장에 진입하는 등 서비스업체와 장비업체가 서로의 영역에 교차 진출하는 최근의 추세가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시적인 움직임은 현대가 앞선다. 현대는 이미 온세통신의 실질적 대주주로 부상, 활발한 사업구상을 펼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삼성은 언제든지 서비스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조심스런 진격」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는 온세통신이라는 확실한 파트너를 갖고 있다. 유선 가운데 시외·국제전화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온세통신은 최근의 IMF 한파로 대부분의 주주가 증자에 난색을 표명하는 것과는 달리 현대가 적극적으로 나서 공격 마케팅의 토대를 마련했다. 현대는 우호지분까지 포함할 경우 온세주식의 30% 이상을 이미 확보, 확고한 1대 주주로 자리잡고 있다.
현대는 이에 따라 금강산관광 통신사업을 온세통신을 통해 수행토록 했고 시장에 매물형태로 나와 있다고 알려진 현대정보기술의 인터넷사업인 신비로를 온세에 인수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현대의 경우 전자의 반도체분야가 빅딜의 한복판에 서 있고 어떤 결말이 나더라도 정보통신분야는 분사키로 방침을 정해 내년 이후에는 장비와 서비스를 동시에 거머쥔 거대기업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삼성은 여전히 장비와 서비스 겸업은 세계적 추세와도 어긋난다며 서비스시장 직접 진출에 일정한 선을 긋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은 최대 장비공급업체로 굳이 서비스업계의 「신경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만 급류를 타고 있는 정보통신산업 구조조정 와중에서 대응책 정도는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더욱이 삼성은 기아자동차 인수를 위해 막대한 회사채를 발행, 자금을 확보했지만 이것이 무산됐고 결국 그 자금은 정보통신서비스분야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물론 삼성은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을 외채상환에 썼고 이 때문에 반도체 투자마저 위축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룹 차원에서는 통신서비스업체 지분확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통신업계에서는 이 때문에 삼성이 단말기 생산으로 일격을 가한 SK텔레콤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통신이 갖고 있는 약 18%에 이르는 SK텔레콤 지분인수 경쟁에 뛰어드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민영화를 추진중인 한국통신 자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설도 대두되고 있다.
통신업계는 라이벌인 현대의 적극적인 행보를 의식할 수밖에 없고 최근 발표한 그룹 구조조정 방향에도 정보통신 강화를 명문화한 삼성이 서비스시장을 놓칠 리 만무하다는 시각이 시배적이다.
통신업계는 삼성이 법적 최대주주(약 8%, 삼성생명)로 등재된 데이콤의 지분을 늘려나가 최근에는 10% 이상을 확보했고 데이터통신 강화를 위해 유니텔 분사를 단행한 것도 이같은 논리를 뒷받침해준다고 보고 있다.
현대와 삼성은 국내 통신산업 구조조정의 완결판인 한국통신 민영화 시점까지 서비스시장 영향력 확대에 주력할 전망이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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