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인 종합 전기·전자업체인 히타치제작소와 도시바가 올해 사활을 건 몸집 줄이기에 들어갔다.
올 회계연도(98년 4월∼99년 3월)중 히타치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단독·연결결산 모두 적자로 전락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적자규모도 단독결산 2천6백억엔, 연결결산 2천5백억엔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큰 규모가 예상된다.
그러나 이 결산에는 반도체 구조조정비용 9백억엔, 특별퇴직금 3백억엔 등 합계 1천7백억엔에 이르는 특별손실이 계상돼 있는데, 이는 올해를 기점으로 모든 적자 요소를 청산하겠다는 히타치 경영진의 결의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히타치는 올해 안에 실적악화의 주범인 중전부문과 반도체·가전사업부를 중심으로 전체 종업원의 약 10%에 이르는 5천명 이상의 인원을 본사에서 분리해 조직의 덩치를 줄여나간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미 가전분야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냉열사업부의 제조부문을 별도 회사로 독립시켰으며 다른 사업부도 1년 이내에 제조부문을 자회사로 이관한다는 구조조정안을 표명한 상태다.
또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회사 등으로 옮기는 사원의 임금을 약 30% 삭감하는 한편 본사에 남게 되는 사원에 대해서도 내년도 하반기까지라는 단서를 붙여 시간외수당 삭감과 노동시간 연장 등 사실상의 임금 삭감안을 제안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결산이 예상되기는 도시바도 마찬가지다. 도시바는 올 상반기(98년 4월∼9월) 단독결산에서 64억1백만엔의 경영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전체 회계연도에서는 1백50억엔의 흑자가 예상되고 있으나 연결결산에서는 반도체 자회사의 수익악화로 적자로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도시바도 이미 구조조정 작업에 본격 착수한 상태다. 최근 본사로부터 공전기사업부를 분리해 미국 캐리어사와 합병했으며 복사기사업부도 그룹 자회사인 도시바테크로 이관했다.
또 테크가 추진해온 업무용 조명기기 사업은 전액출자 자회사인 도시바라이테크로 이관했다.
이에 앞서 도시바는 지난 4월에 승강기 관련 3개 자회사의 합병계획을 발표했으며 실적이 부진한 도시바초자도 아사히초자의 자회사인 이와기초자와 합병했다.
또 10월에는 도시바의 발상기업이기도 한 시바우라제작소를 실질적으로 분할해 주력인 모니터사업의 영업권을 일본전산과의 공동 출자회사에 양도했다.
이처럼 히타치와 도시바는 올해 운명을 건 사업합리화 및 재편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부활 시나리오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상태다.
히타치는 내년 4월부터 사내 그룹제를 한층 강화하고 도시바도 사내 기업제도를 도입한다.
두 회사는 공통적으로 우선 기존 제품별로 나뉘어 있는 조직을 시장에 맞춘 사업그룹 및 사내기업으로 재편한다.
이와 동시에 지금까지 본사가 담당해온 투자와 인사권 및 경리·사무처리기능 등은 물론 해당분야 사업과 관련이 깊은 기업의 총괄권까지 사업그룹 및 사내기업에 양도한다.
이처럼 사내 분사(分社)화를 철저하게 함으로써 각각의 사업분야 채산체계를 완전하게 독립시킨다.
물론 목적은 그룹 의존도를 줄이고 경영판단을 더욱 신속하게 한다는 데 있다.
히타치와 도시바는 60∼70년대 중전분야에서 거둬들인 수익을 가전에 투입했고 80년대에는 가전에서 축적한 자금을 반도체에 쏟아부어 기업규모를 확대해 왔다.
이 시기에는 시장 전체가 지속적으로 확대됐기 때문에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필요도 없었다. 경쟁업체들이 개척한 시장에 한발 늦게 참여해도 자금력을 배경으로 한 가격경쟁력과 제품의 다양성을 무기로 충분히 이익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두 회사 주력사업의 기반이 돼온 국내와 아시아시장이 극도의 불황과 치열한 경쟁상황에 직면했다. 문어발식으로 확장한 사업구조 탓에, 예를 들어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부품 조달처를 바꾸려 해도 기존 조달처가 그룹내 기업일 경우가 많아 불필요한 잡음과 절차가 경영악화를 부채질하기도 한다.
따라서 분사화를 통해 개혁을 추진한다는 두 회사의 발상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히타치·도시바 모두 보다 명확한 개혁비전과 개별사업을 전략사업으로 집적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각 사업부가 각각의 살길을 찾아나섬으로써 분사화가 자칫 경영자원의 분산화를 초래해 전사적인 축소균형이라는 딜레마를 가속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히타치와 도시바는 일본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신규 사업을 그룹 내부로 계속 끌어들임으로써 일본을 대표하는 종합전자·전기업체로 급부상했다.
따라서 상황이 급반전되고 있는 지금 두 회사에 요구되는 진짜 개혁은 이 과정에서 몸에 붙어버린 그룹 경영풍토의 「해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대규모 사업의 축소와 철수는 고용과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 사회적 책임 등을 감안할 때 매우 어려운 결단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축소균형이라는 딜레마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이같은 용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히타치와 도시바는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위기를 타파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두 회사가 어디까지 「해체」를 감행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히타치와 도시바에 있어 최대 전환점이 되고 있는 올해 두 회사의 움직임에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심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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