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병원, 국산 의료기기 푸대접 "말썽"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국·공립병원에 납품될 의료기기가 외산 일색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오는 99년 10월 개원 예정인 7백20병상 규모의 일산병원과 2000년 상반기 개원 예정인 5백병상 규모의 국립암병원에 설치될 의료기기의 95∼98%가 외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산병원은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이, 국립암병원은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인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외산 장비 일색인 것은 「국산 수요 확충을 통한 의료기기 산업 육성」을 줄곧 주창해 왔던 정부 정책과 국산 장비 구입을 확대하려는 범의료계의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비난의 소지가 되고 있다.

 최근 IMF 관리체제에 따른 경영난을 극복하고 관련 산업 육성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대병원 등 8개 국립병원장들이 공동으로 국산 의료기기 구입 확대를 선언한 바 있으며 삼성서울병원·서울중앙병원·연세대의료원 등 대학 및 종합병원들의 국산 의료기기 구입률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자기공명 영상진단장치(MRI)·전산화 단층촬영장치(CT)·초음파 영상진단기·X선 촬영장치·내시경·마취기·소독기·레이저수술기·환자감시장치 등 다수의 국산 전자의료기기가 세계시장에서 호평받고 있는 데다 IMF 관리체제에서 환율 인상으로 인한 자금 부담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국·공립병원이 외산 장비를 고집하는 것은 「국부 손실」이라는 것이 제조업체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실제 복지부 국감자료와 지난달 24일 조달청이 낸 국립암병원 입찰공고에 따르면 2백89억원에 달하는 1백3개 품목, 2백19세트의 국립암병원 의료장비 입찰 사양서가 외산 장비 기준으로 맞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국가에 가장 유리한 입찰자를 낙찰자로 결정한다」는 낙찰자 결정방법에도 불구하고 국산 장비가 낙찰될 확률은 매우 낮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 올해 말 입찰공고를 낼 예정인 일산병원은 내년 5월말까지 약 4백20억원대에 이르는 의료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1년 이상의 자체 조사기간을 거쳐 사양서를 작성하고, 연세대 의대 교수들로 구성된 의료장비 분과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입 및 제조업체들로부터 받은 입찰관련 서류를 토대로 1단계 검토를 완료했으나 사양서가 고기능의 고가 외산장비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대다수 국내 의료기기 제조업체들은 응찰의 기회조차 없거나 응찰하더라도 낙찰률은 극히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국립암병원 개원 준비단의 한 관계자는 『입찰 품목과 사양은 서울대 의대를 비롯한 8개 대학 17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료장비 전문위원단의 심의를 거쳐 결정된 것으로 이번 1차 입찰에서는 고가·특수 의료장비를 주로 구입하기 때문에 내구성이 뛰어나고 초정밀 장비 위주로 선정할 수밖에 없었으나 2백97억원에 달하는 2단계 입찰에서는 국산 장비가 상당수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내년으로 예정된 2단계 입찰에는 일반 의료기기 외에도 의료비품·수술용 기구·사무용 집기 등이 모두 포함돼 있어 국산 의료기기 보급률은 가격 대비 2∼3% 미만에 그칠 것으로 제조업체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일산병원 의료장비 구매 담당자도 『국산 장비 도입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기기 특성상 국산을 강요할 수는 없으며 의료사고라도 발생한다면 책임 추궁을 당할 수도 있어 국산 도입을 꺼리는 경향』 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기존 대학병원은 변변한 국산품이 거의 없었을 때부터 외산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최근들어 국산을 많이 구입했다 하더라도 누계로 국산 비율이 낮은 것은 당연하므로 신설병원과 동일한 잣대로 비교할 수 없다』며 『국산의 품질이 크게 향상돼 미국·독일·일본 등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고 무엇보다 국내 의료기기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많은 개발자금을 지원해 놓고도 공공 의료기관이 국산 구매를 꺼리는 것은 이율배반적이고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제조업체 관계자는 『특히 일산병원은 「현실적인 의료보험수가 체계 확립을 위한 기초자료 수집」이란 병원 설립 취지와 걸맞지 않게 필요 이상의 기능을 가진 외산을 선호함으로써 만성 적자는 물론 혈세의 낭비를 초래할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전자의료기기 수출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억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올 상반기 초음파 영상진단기·심전계(ECG)·X선 촬영장치 등 수출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2% 늘어난 6천1백25만7천달러를 기록했으며 지역별 수출 점유율은 유럽시장이 가장 큰 25.8%를 기록한 데 이어 미국(21.4%), 아시아(19.1%), 러시아 및 동유럽(8.9%), 남미(7.5%), 일본(6.1%), 중동(4.3%), 기타(6.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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