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빅딜" 만이 능사인가

 반도체 분야의 사업구조조정(빅딜)이 산넘어 산이다.

 지난 9월 LG반도체와 현대전자가 통합 형식으로 단일법인을 설립하기로 가닥을 잡은 데 이어 책임경영 주체를 결정하기 위해 추석 연휴중에도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으나 결론은 외부 평가기관에 실사를 맡겨 다음달 말까지 결정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이같은 결과를 두고 항간에는 현대와 LG가 빅딜을 회피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또 5대그룹의 사업구조조정에서 알맹이가 빠져 재계의 자구노력이나 정부의 개혁역량 모두 함량 미달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당초 정부의 사업구조조정 의도는 과잉·중복 투자를 조정·억제함으로써 산업의 체질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도체 분야만큼은 그러한 정부의 목적과는 달리 방향이 빗나가고 있으며 뜻하지 않은 부작용만 불거지고 있다. 빅딜을 하기로 발표한 이후 LG와 현대 모두 외국 바이어들이 반도체 수입계약을 자꾸 미루고 있으며 또 투자하려고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던 외국 업체들도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있다. 경영권이 확실하지 않은 회사와 계약을 하려는 업체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대와 LG 직원들은 일할 맛을 잃고 동요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간 자칫 고도의 정밀성을 요하는 반도체 분야의 생산성·신뢰성이 떨어질까 우려된다. 이같은 현상은 이 문제가 완전히 매듭지어질 때까지 앞으로 최소한 한달 반 이상은 어쩔 수 없이 계속될 것 같다.

 혹자는 두 회사가 통합하고 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데 무슨 걱정이냐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부 평가기관이 어떤 잣대로 두 회사를 평가해 경영권을 7대3으로 나누느냐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한달 반 후 외부 평가기관이 내놓은 결과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소지를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정부의 반도체사업 빅딜방침에 따라 양사는 물론 국가경제 전체가 큰 손해를 보고 있다.

 반도체사업 분야의 개혁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것은 어딘가에 근본적인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보면 현대와 LG 모두 경영권을 넘겨주려고 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

 자산도 많지만 부채도 적지 않은 회사를 정치권에 미운털이 박힐 수 있는 부담을 무릅쓰고라도 굳이 넘기지 못하겠다는 데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는 양사가 반도체사업이 수출 주종품목으로서 결코 과잉·중복 투자와는 거리가 멀며 무엇보다도 앞으로 유망해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빅딜이 지지부진한 또다른 원인은 정부가 당초에 오판을 했으며 그 추진과정도 졸렬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제 반도체사업 빅딜은 뜨거운 가슴보다는 냉철한 머리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정부의 가이드라인대로 LG와 현대가 통합하기라도 한다면 결국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 규모를 단순히 줄이고 또 국제사회에서 장기적으로 영향력만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누차 지적해온 바와 같이 양사의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거의 없음은 물론 앞으로 통합으로 인한 한쪽 회사의 설비는 무용지물이 될 공산이 크다. 보완·개체해서 사용할 수 있는 생산라인을 그대로 버려야 하는 것은 국가경제 전체로 볼 때도 매몰비용이 너무 큰 것이다. 대규모로 실업자를 발생시킬 수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반도체 사업구조조정이 진정한 의미에서 사업구조의 고도화로 이어지려면 메모리사업보다는 비메모리사업의 비중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도체업체가 덩치를 키우기보다는 기술흐름에 신속하고 유연히 대처할 수 있도록 가벼운 체질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LG와 현대가 통합된다면 결국 우리의 반도체사업은 거꾸로 가게 되는 셈이다. 잘못된 물길은 지금 바로잡아도 늦지 않으며 그것 또한 용기있는 일이다. LG와 현대의 통합만이 능사인지, 진정으로 산업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선 오히려 선의의 경쟁토양을 조성해 나가는 일이 급선무가 아닌지, 좀더 근본적인 정책판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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