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의 중재로 추진돼온 5대 그룹 7개 업종 구조조정 작업의 핵심 사안인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반도체 부문 합병 협상이 책임경영 주체 선정 문제를 놓고 진통을 거듭하다 사실상 결렬됐다.
이에 따라 재계는 해당업체들이 사업 통합을 전제로 한 사업계획서를 전경련을 통해 개별적으로 제3의 평가기관에 제출, 추후 책임경영주체를 결정한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제3의 평가기관에 심사를 맡기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고 정보 유출에 따른 기업신뢰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반도체 부문의 빅딜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라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양사는 정부측의 향후 조치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부문의 빅딜 논의를 지켜보면서 가슴을 졸여온 양사 관계자들은 오히려 이번 협상 결렬이 다행스럽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양 그룹의 합병 협상이 물밑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도 양사 합병이 국내 반도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무용론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구조조정에 포함된 나머지 업종들이 대부분 비좁은 내수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는 과잉 중복투자 업종인 반면 반도체 산업은 전체 생산량의 90% 이상을 해외에 내다파는 수출주도형 사업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
또한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통합은 실익이 없다는 게 양측 모두의 시각이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는 기본적으로 반도체 설계기술이나 공정기술은 물론 생산설비까지 호환성이 없다.
이와 관련, 양사의 64MD램 3세대 제품을 동일한 공정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5천억원 이상의 보완투자가 소요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과잉·중복투자라는 단순한 잣대로 반도체 산업을 판단할 경우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세계 D램시장 점유율은 각각 13∼15% 내외. 하지만 전세계 D램의 70% 이상을 구매하는 컴팩·IBM·HP 등 대형 PC업체들은 특정업체에 20% 이상 구매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주장에 정부 당국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전반적인 국내 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무시한 채 자사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경영권에 집착해 협상자체를 무산시킨 양측에 대한 책임이 적지 않다는 비난도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 협상 결렬은 앞으로 현대전자와 LG반도체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수백%에 달하는 부채비율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압박을 비롯해 합병보다 더욱 가혹한 안팎의 압력이 이들의 생존 자체를 강력히 위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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