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의 구조조정안 확정을 위한 기관별 임시이사회가 과학기술노동조합의 반발로 무산되는 등 출연연 경영혁신에 제동이 걸렸다.
1일 과학기술부 및 출연연에 따르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한국항공우주연구소 등 13개 출연연은 기관별로 지난달 29·30일 이틀간 일제히 임시이사회를 개최해 조직 및 인력감축, 정년 하향조정, 연봉제·계약제 확대 개편 등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안을 확정할 계획이었으나 노조측이 반발, 회의장을 원천 봉쇄해 이사회가 한 군데도 열리지 못했다.
과기부가 지난달 15일 열린 출연연 기관장협의회 등을 거쳐 각 출연연이사회에 상정한 출연연 경영혁신안에는 정년의 경우 신규 임용직원부터 책임급 61세, 선임급 58세, 기능직 56세 등으로 직급에 따라 2∼4년씩 단축하도록 하고 있으며 계약제는 초임계약 3년에 3년마다 재계약을 하되 인사규정에 종합평가 불량자 등에 대해 재계약을 거부하는 조항을 삽입토록 하고 있다. 또 내년 1월부터 고정급과 성과급, 법정수당으로 구성한 연봉제를 도입하고 근무성적에 따라 연봉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토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체력단련휴가 등 연간 12일에 달하는 특별유급휴가를 폐지하고 상급자의 승인 또는 정당한 이유없이 직장이탈을 금지하는 등 복무규정을 강화하도록 했다. 과기부와 출연연은 이같은 경영혁신안이 현행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련법에 위배되는 점을 감안, 정년 하향조정, 계약제 확대 등과 같은 민감한 사안의 경우 신규 임용자부터 적용하도록 하고 기존 직원들의 경우 노조와 협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종전 규정을 적용토록 했다.
과기노조는 이에 대해 명분상으로는 뚜렷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내지 않으면서도 정년조정, 계약제 등 대부분이 노조와 합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들인데다 과기부의 일방적인 지침에 따라 임시이사회를 개최하는 것은 출연연 스스로 자율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며 일방적인 이사회 개최를 연기해 줄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근본적인 갈등은 기회있을 때마다 출연연의 자율성 보장을 외쳐온 정부가 출연연 구조조정 문제를 놓고 출연연의 자율성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대다수 출연연 관계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다시말해 정부가 기회있을 때마다 연구분위기 조성을 다짐하면서도 이의 기본이 되는 출연연의 자율권을 보장하기보다는 사사건건 출연연의 자율성을 침해해온 데 대한 연구원들의 불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과기부는 이에 대해 이번 경영혁신안의 경우 종전과는 달리 여러차례 출연연 행정, 기획담당부서장을 통해 여론수렴에 나섰으며 경영혁신안 마련을 위해 「출연기관 기획·행정부장 협의회」를 구성해 의견을 모으고 기관장협의회 등을 통해서도 의견을 수렴하는 등 출연연의 자율적인 개혁을 유도해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과기노조를 비롯한 출연연 관계자들은 내년이면 정부출연연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돼 총리실 산하로 재편되고 이때 전반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데도 굳이 9월말로 못박아 일률적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 대해 상당히 불만을 갖고 있다.
과기부는 이에 대해 『출연연에 대해 생소한 총리실에서 출연연 구조조정을 하기보다는 출연연 관련 업무를 계속해 온 과기부가 담당하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출연연 관계자들은 이번 경영혁신안에서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정년 하향조정 문제의 경우 연구실적이나 평가에 따라 계약이 이루어지는 연구원계약제를 철저히 활용한다면 연구성과나 연구과제 수행능력이 없는 연구원들은 자연히 정년과 관계없이 퇴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구성과를 철저히 따지고 이를 기준으로 계약여부를 판가름하면 정년상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임시이사회가 원천봉쇄됐다 해도 경영혁신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서면이사회 등의 편법이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 또다른 파장이 우려되고 있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 과학기술민주화를 위한 모임은 30일 성명을 통해 과기부는 출연연의 자율적인 노사관계를 존중하고 특히 정부와 출연연 기관장, 과기노조,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4자위원회를 구성해 출연연의 실질적인 개혁을 단행하고 출연연의 연구생산성 제고, 출연연 종사자들의 사기 진작 등에 관한 국민적 합의도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이번에 출연연 임시이사회가 무산됨으로써 출연연 경영혁신이라는 칼을 빼든 과기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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