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한림 원탁토론회" 과학기술과 평가제도

 박익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은 지난 25일 오후 한국경제신문빌딩 18층 다산홀에서 열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주최 제17차 한림원탁토론회에 참석, 「과학기술정책과 평가제도의 문제」 주제발표를 통해 『현재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국가 과학기술정책 목표설정과 이를 구체화한 예산편성 지침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특히 경제난 극복이라는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시적으로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술개발에 모든 연구개발 역량을 모아야 하며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다음 순서라고 주장, 토론자는 물론 일반 참가자들의 반대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토론회에는 학계에서 강계원 과기원 교수, 강주상 고려대 교수, 이원국 과기원 명예교수가, 산업계에서는 임관 삼성종합기술원장이, 연구계에서는 정형진 과기연 책임연구원, 장문호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장이 참석했다.

〈편집자〉

 ▲이원국 교수(한국과학기술원)=국가 정책목표를 명확하게 하고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예산편성 지침도 중요하지만 연구기관들의 역할분담을 명확히 해줄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대학은 응용연구보다는 학문적인 연구를, 기업체는 단기 위주의 제품생산에 필요한 개발연구에 치중하고 출연연은 환경이나 국방·기상·안전·표준화 등 국가의 특수목적을 위한 연구나 투자비가 많이 드는 중장기 국가과학기술 기반구축을 위한 연구를 담당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연구프로젝트 선정이나 업적 평가를 공정히 하기 위해서는 공평 타당한 기준을 만들고 공정한 인사관리가 필요하다. 앞으로 연구개발 영역이 정확히 명시되고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진다니 다행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장래를 위한 기초과학 투자를 도외시 해서는 안된다.

 ▲정형진 박사(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출연연의 위상과 역할에 위원장의 주장과 의견을 달리한다. 출연연의 위상과 역할은 이제 전략적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선도의 연구개발과 공공복지에 대한 공익적 연구개발의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출연연의 연구는 탐색적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어 연구투자의 효율성은 비교적 낮을 수밖에 없다. 출연연에 정부가 부여할 연구개발 기능은 이를 감안해 명확히 해야 하고 평가도 이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출연연의 평가문제는 대학이나 산업계와 다른 평가기준을 설정해야 하고 기관별로도 차별화해야 한다. 출연연은 지금 가시적인 연구성과물이라고 할 국제학술논문 게재와 국제 발명물질 특허 등을 출원할 경비가 없어 이를 억제하고 있는 상황에 있다. 최근 경제난 원인의 하나로 연구개발 효율성 저하로 인한 기업의 경쟁력 상실을 들고 있고 결국 출연연이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쓰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96년 기준 국내 연구개발 총투자가 1백35억달러라고 하는데 그 중 공익성 연구비와 과기원 등 특수과학교육분을 제외하면 순수 연구개발비는 2%에도 못미치는데 왜 모든 책임을 출연연이 져야 하나.

 ▲박익수 위원장=의견에 동의한다. 과기부나 출연연의 역할은 명확하다. 그러나 지금은 출연연을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나를 생각할 때다. 출연연 설립배경을 보면 경제개발계획과 맞물려 있다. 국가적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초 목적대로 되돌아가야 한다. 행정적으로 정책목표를 세워 전략을 마련해야 선진국을 따라갈 수 있다. 산업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할 때다. 과학은 효능이 있어야 하고 기술은 효능과 실용이 있어야 한다. 기술을 통해 과학이 이루어져야 한다.

 ▲임관 원장(삼성종합기술원)=연구개발의 효율화를 위해 좋은 정책과 평가제도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전략적 연구개발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를 신속히 집행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산학연 협동 연구체제가 강화돼야 한다. 산업계로 하여금 과학기술 투자를 삭감하지 않도록 하는 통치자의 의지가 전달되었으면 한다.

 ▲강계원 교수(한국과학기술원)=국가 정책목표가 너무 막연하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과학정책은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보편적이고 영구적이어야 한다. 그간 과기부의 정책을 보면 연구소 관리정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과거 예산 배정은 사업의 지속적인 관리보다는 새로운 사업과제 도출에 치중해 왔다. 과학기술정책은 기획단계부터 폭넓은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며 특히 평가자의 선정, 평가절차, 평가내용 등이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장문호 소장(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과학기술정책은 특정 산업을 겨냥한 단기 처방식 목표달성을 위한 정책보다는 우수인력에 초점을 맞춰 추진해야 한다. 목표지향적인 과학기술정책과 수출주력산업의 기술고도화는 다른 관점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정책의 목표가 수출주력산업의 기술고도화로 설정되어서는 곤란하다. 국가종합기술 지도작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국가가 연구능력, 제품의 시장성, 수익성 등에 대한 평가를 통해 전략적 연구개발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논리는 좀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평가제도의 경우 그동안 많은 변화와 제도개선이 이루어져 왔으나 평가의 공정성이나 투명성 등에 있어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평가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학연이나 지연 등 우리 사회의 바람직하지 않은 평가문화에 기인한 요소가 크다. 새로운 평가제도의 도입은 중복평가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박익수 위원장=연구개발에 대한 평가는 독립성이 보장된 제3자가 해야 하는 것이다. 과기부가 어떻게 자신들이 한 일을 스스로 평가하고 공정하다고 할 수 있나. 과기부의 평가는 공신력 있는 평가라고 볼 수 없다. 또 과기부의 행정은 과학기술 연구행정이지 과학기술행정이 아니다. 과기부의 역할은 정부의 정책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행정이다. 현실은 수출과 중소기업의 육성을 요구하고 있다. 목표가 없는 곳에 예산을 투자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현재에 닥친 다급한 경제문제들을 해결한 다음 기초과학에 대한 예산규모를 확대해도 늦지 않다. 정부가 과학기술계에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해결이다.

 ▲강주상 교수(고려대)=과학기술이 산업정책의 하나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다시 과학기술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흔들릴 것 같아 안타깝다. 국가과학기술정책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목표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지적이다. 과학기술 관련부처 중 과기부의 목표가 제일 불분명하고 특히 출연연의 소위 방만한 연구관리를 문제점으로 제기하는 것은 객관적이면서도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GNP의 2.79%라는 방대한 국가 연구개발예산 중 정부투자는 25% 정도이고 나머지는 민간투자인데 정부투자분의 일부인 출연연의 투자는 전체 투자의 5% 미만 수준으로 연구개발정책의 문제점을 출연연에 집중시키는 것은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기초과학보다는 당장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산업기술 개발에 모든 과학기술자가 열중해야 한다는 인상이다. 단기적 처방은 다른 부처에 맡기고 과학기술은 장기 처방에 집중해야 한다. 기초과학 진흥은 장기적으로 기술혁신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정리=정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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