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창간16주년] 테마기획-수출전략 다시짜자

 전자업체들의 수출드라이브전략이 암초에 걸렸다.

 IMF라는 장벽을 넘기 위해 수출총력체제라는 비상경영에 돌입했지만 6개월도 지나지 않아 40년 만에 수출폭 최대 감소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같은 수출감소세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IMF극복의 최일선에서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전자산업은 국가경제를 이끌어간다는 명예에 앞서 제 살길을 찾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

 국내 전자업계의 수출드라이브전략은 상반기까지만 해도 원화가치의 하락이라는 뜻밖의 호재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수출이 곧바로 하락세로 돌아서고 또 그 폭이 사상 최대라는 수식어를 동원할 정도라고 한다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수출전략에 문제가 있음이 분명하다.

 실제 하반기들어 가전산업 중 영상기기의 경우 전년동기대비 32.2% 줄었으며 음향기기도 19.9% 감소하는 등 AV분야의 수출감소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수출물량 증가에 비해 수출단가가 39% 이상 떨어지면서 국내 가전산업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정보통신부문도 마찬가지다. 다만 품목별로 명암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전반적인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가전산업과 다를 뿐이다. PC·모니터·유선통신기기의 수출은 크게 위축되고 있지만 이동통신단말기나 컴퓨터 주변기기 수출은 호조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품목으로 최대의 수출규모를 자랑하는 반도체도 D램의 공급과잉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가격하락이 지속돼 지난 4월 이후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국산 전자제품의 수출이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시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은 늘고 수요는 없는 공급과잉현상이 수출을 확대하려는 국내 전자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상반기 수출확대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환율마저 안정되면서 국산 전자제품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가격경쟁력이 사라졌다. 특히 그동안 국내 전자업체들의 무리한 수출확대전략으로 수출단가가 급락하면서 수출감소폭을 더욱 크게 하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수출물량이 크게 늘어났지만 수출단가 하락으로 금액은 줄어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 단가 변화를 나타내는 수출단가지수가 97년 1월부터 5월까지 18.8이었지만 올해 같은 기간에는 절반수준인 9.2로 떨어져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매출액을 올리기 위해서는 수출을 2배 이상 늘려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또 내수부진에 허덕이는 동남아국가들이 생존차원에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수출드라이브전략을 전개하면서 자국시장 보호를 위해 미국 및 유럽 등 선진국가들이 반덤핑관세부과 등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도 국산 전자제품 수출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최근 현대전자와 LG반도체에 대한 미국과 EU의 반덤핑규제, EU의 한국산 VCR테이프에 대한 덤핑제소 움직임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문제는 국내 전자산업의 수출을 가로막고 있는 이같은 장벽이 올해에 이어 내년말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데 있다. 최근들어 세계적인 공황이라는 용어가 부쩍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경제상황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이에 따라 전세계에 불어닥치고 있는 불황은 IMF를 수출로 타개하려는 국내 전자업계에는 커다란 시련이 아닐 수 없다.

 수출전략을 다시 짜야한다는 명제는 이처럼 수출환경이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국내 전자업체들이 수출전략을 다시 수립할 때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지금까지의 외형확대전략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다.

 LG전자 권영수 상무(세계화담당)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전세계적으로 시장수요가 20%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먹을 파이가 줄어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 열심히 한다고 해서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즉 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수출을 추진한다면 곧바로 출혈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외형을 부풀리기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수출하는 과거의 악순환에서 탈피해 비록 적게 팔더라도 수익구조 중심의 전략을 수립, 시행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업계 관계자들은 「줄이는 것이 앞으로를 위한 투자」라는 획기적인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내 전자업계가 수출전략을 새롭게 짜는 데 필요한 또다른 하나는 수출부문 역시 사업군별로 사업성이 없는 제품은 과감히 포기하고 유망한 상품에 대해서는 재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같은 전략은 수출지역은 물론 수출제품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만큼 자사제품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시장에서는 수출물량 확대전략이 필요하지만 아직까지 시장에 진입하지 않았거나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과감히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산 전자제품의 전반적인 수출부진 속에서도 세계 곳곳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아 인기가 치솟고 있는 제품도 적지않다.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와 휴대폰·전자레인지·모니터, LG전자의 모니터·CD롬 드라이버·에어컨, 대우전자의 컬러TV 등은 세계 전 지역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또 국가별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산 전자제품들이 수십개 품목에 달한다고 전자업계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는 과거와 같은 수출선다변화 노력보다는 자원을 이들 특정지역, 특정품목에 집중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속에서도 국산 전자제품의 수출돌파구가 항상 열려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품전략 또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내수비중이 전체 매출의 20%에 불과하고 수출이 80%를 차지하는 기존의 상황에서는 제품개발전략을 세울 시점에서부터 내수와 동시에 수출이 가능한 제품개발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다 본사, 해외공장 및 판매법인들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재고축소에 나서는 동시에 신용장거래가 가능한 대형딜러와 거래를 확대하는 대신 신용거래가 불가피한 소규모 딜러들과는 신용기간 단축이나 채권을 줄여나가는 바이어별 차별화전략도 적극 구사해야 한다.

 국내 전자업체들이 세계 곳곳에 생산기지를 확보하고 있는 장점을 살려 외국기업에 비해 가장 이른 시간에 안정된 품질을 갖춘 제품을 공급하는 것도 국산 전자제품의 수출활로를 열어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경기가 내년에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오는 2000년에나 회복세에 들어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같은 상황변화 속에서는 전략 또한 근본적으로 수정해야만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수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자되는 기술경쟁력을 키우기보다는 당장 우리가 앞선 분야를 특화하는 근본적인 수출전략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양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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