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규격장벽 극복 정부가 나섰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수출확대에 해외규격이 최대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좋은 품질과 가격경쟁력이 수출의 절대조건이지만 해당 수입국에서 요구하는 규격을 획득하지 못하고서는 아무리 품질 좋고 가격경쟁력을 갖춘 제품이라 하더라도 국경을 넘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으로 관세장벽이 허물어지면서 규격을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제품의 품질에 대한 규격인 안전 및 신뢰성은 필수항목이다. 최근엔 전자파 적합성(EMC)·통신·인체보호·환경 등으로 점차 세분화하고 포괄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에 제품을 양산하는 과정, 즉 품질시스템에 대한 규격까지 총동원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단순히 기술규격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규격을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품질인증시스템을 까다롭고 복잡하게 만들어 이중 삼중의 벽을 국경에 펼쳐놓고 있다. 이에 따라 수출로 IMF 경제위기를 타개하려는 국내업체들에 해외규격을 통과하는 일련의 과정이 큰 경제적·시간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주 수출무대인 미국·유럽 등은 유명 규격획득이 곧 신용이자 신뢰성의 보증수표다.

 현재 해외 바이어들이 요구하는 규격은 지역별·제품별·성격별로 매우 다양하다. 우선 수출을 추진하는 업체라면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제정한 품질경영시스템, 즉 ISO 9001부터 9004에 이르는 ISO 9000시리즈 인증은 거의 기본이다. 업종에 따라서는 자동차 및 관련부품의 경우 제너럴모터스·크라이슬러·포드 등 미국 자동차 빅3가 제정한 QS 9000이 우선하기도 한다. 또 반도체 등 환경경영이 요구되는 일부 품목의 경우는 환경경영시스템 인증인 ISO 14000까지 겸비하면 좋다.

 이들 품질 및 환경시스템 규격은 수출에 반드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은 아니지만 바이어에 따라서 반드시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며 적어도 해외에 제품을 수출하려고 하는 업체라면 선진국 수준의 자체적인 품질관리 구축을 위해서도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과목으로 보는 게 마땅하다. 최근엔 QS 9000이나 미국 통신업계가 ISO 9000 규격을 활용해 제정을 추진중인 TL 9000과 같이 업계차원에서 새로운 단체규격을 잇달아 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처럼 시스템 규격은 국제기구인 ISO 규격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파생, 발전하고 있는 데 반해 제품의 품질규격은 국가별·경제블록별·업종별·품목별로 갈수록 세분화되어 있다. 물론 유럽연합(EU)의 경우는 CE마크라는 역내 공통규격을 만들어 회윈국가를 하나로 묶어놓았지만 현실적으로는 CE마크 이외에도 기존 국가별 개별규격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기존 안전규격 이외에 전자파 적합성(EMC)규격·통신규격·인체규격·환경규격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막강 맨파워와 탄탄한 자본력, 그리고 기술력과 정보력 등을 두루 겸비한 대기업들은 이에 따라 별도 규격팀을 풀가동,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 규격체계의 변화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규격 획득에 수반되는 여러가지 조건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상황이 다르다. 모델당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규격획득 비용도 문제지만 해당 수입국에서 요구하는 규격과 정보를 소화할 만한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따라 환율상승과 정부의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정책으로 모처럼 수출의 호기를 잡은 중소기업들은 수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규격이라는 높은 벽에 막혀 중도에 손을 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품질테스트·공장실사·가격절충 등 수출전에 필요한 기나긴 터널을 통과했으나 마지막 관문인 규격을 따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는 이에 따라 중소기업의 해외규격 인증 획득을 지원하기 위해 별도 예산을 편성, 지원에 착수함으로써 높은 규격장벽에 막혀 좌절하고 있는 많은 중소기업에 한가닥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국내 중소기업들이 해외규격 획득에 필요한 자금·전문가·정보력이 모두 취약하다』고 전제한 뒤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인식전환과 함께 이번 정부 차원의 해외규격 인증지원사업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책으로 확대 발전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중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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