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IBM 상무 박기순
작년 말부터 전개되고 있는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으로 인해 기업의 제반 활동이 많은 어려움에 당면하고 있다. 기업들은 계속되는 판매부진으로 새로운 상품개발이나 유통망 혁신, 또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개발 등 기업의 장기적인 목표를 위한 활동은 아예 엄두도 못낸 채 오직 「당장 얼마만큼 팔 수 있으냐」하는 코앞에 닥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낮은 가격을 무기로 한 판매촉진책」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기업은 기술혁신이나 유통개선에 의해 가격을 낮추고 이를 통해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시장경제의 이치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상태가 기술이나 유통의 혁신에 의한 가격경쟁이 아니라 기업 생존의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PC업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내수가 작년보다 40% 정도 감소한 가운데 많은 업체들은 오로지 판매 그 자체에만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싶다. 모든 업체들이 낮은 가격의 제품들을 중심으로 영업을 전개하고 있고 잇따른 할인판매나 기획행사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현재와 같은 「오로지 가격만을 무기로 하는 배수진의 경쟁」은 장기적으로 볼 때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게임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기업의 측면에서 보면 단기적으로는 낮은 가격을 통해 매출을 확대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자체를 대기수요로 몰아갈 수 있고, 그동안 소중하게 키워온 브랜드 가치를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 역시 낮은 가격만을 구매포인트로 삼아 저성능의 제품을 구입했을 때 사용과정에서 추가비용이 발생하게 될 가능성이 크며 낮은 PC성능으로 인한 기회손실까지 고려한다면 이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선택해야 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여러 사례에서 나타난다.
이를테면 PC시장에서 올 상반기 특징 중의 하나는 「고성능 노트북PC 기종의 상대적 호조」였다. 펜티엄Ⅱ 프로세서를 채용했거나 초경량, 초박형 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제품들은 상당히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기대를 훨씬 상회하는 판매실적을 보였다. 이전까지의 시장상황을 보면 워드프로세서 등을 이용하는 단순 사용자들에게만 맞춘 로엔드 제품이 주력이고 사용자 중에서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른바 파워유저들의 요구는 상당 부분 배제돼 왔다.
멀티미디어 프레젠테이션의 보편화와 새로운 정보기술(IT)기법을 활용하는 경영관리층의 확산 등은 고성능 제품이나 진정한 모빌오피스를 위한 초경량, 초박형 제품에 대한 기대심리를 불러일으켰고 새로운 제품의 출시지연은 이러한 기대심리를 더욱 가속화했다. 시장에서 배제돼 있던 상위기종 구매자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당연히 더욱 클 수밖에 없었는데 많은 업체들이 이러한 대기수요를 경제악화에 따른 상위기종 시장의 소멸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 판매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잘 나타난다. 유가나 가격 측면에서 경차의 호조는 당연한 추세지만 소비자들은 가격에만 포인트를 맞춘 경차보다는 소형차만큼 비싸더라도 넓은 실내공간이나 성능을 강조한 경차를 선호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가격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같은 사례들은 앞으로 기업들이 추구해야 할 상품개발 방향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이들 제품은 소비자들이 욕구를 「가격이 싼 제품에 대한 선호」라는 막연하고 단순한 분석틀이 아닌 다양하고 복합적인 분석틀을 사용해 개발된 제품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분석틀은 시장을 하나의 객체가 아닌 다양한 요구에 맞춰 분화된 시장으로 설명한다. 이제 PC업체들로 다양한 고객을 대상으로 세분화된 상품개발과 마케팅으로 승부해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가격위주」의 단순한 전략보다는 시장을 세분화하고 이에 맞춘 다양한 제품과 다양한 마케팅 방법을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시장에 대한 다양한 분석틀과 접근수단을 갖춘 회사만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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