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서정욱 사장
19세기 말 관업(官業)으로 시작했던 우리나라 통신서비스는 80년대 초 한국전기통신공사의 발족으로 국영기업화했다. 그후 여러 차례의 제도적 개선을 거치면서 세계무역기구(WTO)체제 등 새로운 국제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선(先) 국내경쟁 후(後) 대외개방 정책」을 전개해 왔다.
그 결과 현재 허가된 서비스 운용업체 수는 시내전화 2개사, 시외전화 3개사, 국제전화 3개사, 이동전화 5개사, 무선호출 13개사, 발신전용 휴대전화 11개사, 주파수공용통신 11개사, 무선데이터 3개사, 회선설비 임대업 7개사에 저궤도 위성통신 및 별정통신 서비스까지 합하면 무려 90개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정보통신은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황금알 낳는 거위」 신드롬에 걸리고 말았다. 특히 이동통신 분야는 업체난립, 과잉투자, 가격파괴 등으로 부실 사업자가 속출하고 있어 공멸사태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설상가상으로 IMF체제로 인해 국제신인도까지 추락하고 있어 업체들의 경영환경을 악화시키기까지 하고 있다.
사실 정보통신사업은 도로, 항만, 에너지 분야와 달리 기술이나 방식이 빨리 바뀌어 투자회수도 못하고 퇴출해야 하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사업자는 미래를 잘 읽고 시운(時運)과 시장운(市場運)을 잘 타야 한다. 기업은 이익을 내지 못하면 기술 및 인력 개발을 지속할 수 없어 결국 자멸한다. 현재의 여건에서 우리나라 통신사업자들이 과연 몇이나 살아남아 국제경쟁을 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그동안 우리는 정보통신 분야의 연구개발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해 왔다. 80년대부터 엄청난 투자를 해 왔지만 경제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디지털 교환기(TDX), 행정전산망 주전산기(TICOM), 디지털 이동전화(CDMA)를 빼고는 특기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물론 반도체는 수출에 큰 몫을 했고 PC도 한때 호황을 누렸으나 현재 후발 국가들의 추격을 받아 고전하고 있다.
첨단 정보통신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요체는 산, 학, 연, 관의 구성원이 품격 높은 지식과 정보, 기술자본을 축적하는 것이다. 특히 기업은 인력 및 기술 개발에 재투자하는 건실한 경영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또 정보통신산업 전반의 구조조정과 기반시설 확충도 시급하다. 이를테면 이동(무선)전화망의 서비스 품질이 고정(유선)전화망의 선로품질에 달려 있음을 감안할 때 기간사업자들은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고도화하는 데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는 최첨단 디지털 이동전화의 제품 및 서비스를 자체 개발해 공급하는 국가가 됐다. 이동전화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주파수 자원이 고갈된 외국의 운용업체에 고무적인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더욱이 국산 CDMA 단말기는 국내외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으며 인프라스트럭처로 그간의 생산실적을 바탕으로 수출에 힘쓰고 있다. 이로써 IMT 2000(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 2000) 개발의 기반을 구축했고 해외 진출에 유리한 입지를 마련했다.
위기에 처한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은 운용업체와 제조업체가 공존공영의 협력을 해야 한다. 한국이 CDMA방식 이동전화의 상용화에 성공한 것도 「미지의 미지(Unknown Unkonown)」에 도전한 운용업체와 제조업체 사이의 공존공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IMT 2000의 연구개발, 시험평가, 품질보증과 생산 및 마케팅 활동에서도 공조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술용역, 운용사업 등 해외 공동진출이 가능해진다.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은 인구가 1천만명도 안되는 스웨덴이나 핀란드의 업체들이 자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미국, 중국, 일본 등 전세계에 진출하고 있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국가의 정치력과 경제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동전화 상품 및 서비스의 해외 진출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정부당국에 한 가지 건의를 하고자 한다.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위해 획기적인 기술 및 서비스를 개발했거나 제조업체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한 운용업체에는 필요한 사업권을 허가하고 주파수를 할당하는 등 미국 FCC의 「Pioneer’s Preferenece」와 같은 제도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술 및 인력 개발을 위해 기업이 자원을 투자하도록 국가가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지금은 21세기를 대비한 초고속 정보통신망 건설, IMT 2000 개발 등에 정보통신업계가 중지를 모아 총력을 결집할 때다. 원칙이 있는 정치와 투명한 기업경영이 떳떳한 정보사회로 가는 첩경이다. 「산업화는 늦었으나 정보화는 앞장서자」는 비전이 공허한 구호가 되지 않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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