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중소기업] 중소기업인 24시

나눔기술 장영승 사장 밀착 리포트

7월20일, 월요일. 소프트웨어전문회사인 나눔기술 장영승 사장(36)이 영등포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55분. 매주 월요일 오전 8시는 임원회의가 있는 날이다. 장 사장, 윤석용 부사장, 채희선 이사 이렇게 세명의 임원이 참석하는 임원회의는 지난 한 주의 업무결과를 점검하고 새로운 한 주의 업무를 스크린하는 회의다. 오늘 회의에서는 어떻게든 「한글」문제를 매듭지어야 할 것 같았다. 윤 부사장과 채 이사는 벌써 회의실에 도착해 있었다. 의례적인 안건토의를 마치고 곧바로 「한글」의제로 들어갔다. 장 사장은 지난 토요일 저녁 한글과컴퓨터(한컴) 이찬진 사장으로 부터 직접 「한글」지키기운동본부의 한컴 인수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장 사장은 그동안의 경과를 얘기하며 「한글」이 살아난 것은 나눔기술이 처음부터 원하던 바가 아니었겠느냐며 결론을 유도했다. 하지만 그룹웨어 「스마트플로우」를 담당하는 채 이사는 「한글」퇴출 발표 때문에 나눔기술이 받은 기업이미지의 타격과 영업손실을 어떻게 만회해야 하는가가 더 급선무라는 표정이었다.

한컴의 「한글」퇴출 발표이후 나눔기술은 한달여 동안 큰 홍역을 치렀다. 「스마트플로우」고객들 가운데 70%가량이 「한글」을 연동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마트플로우글」체제는 고객들에게도 엄청난 인기였다. 물론 고객들은 「한글」이 퇴출된다해도 2∼3년 안에는 당장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품을 공급한 나눔기술 입장에서는 향후 지원 방안에 대해 고객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었다. 지난 6월27일 나모인터랙티브 박흥호 사장과 함께 퇴출 「한글」을 대신할 「나모글」을 개발키로 공동회견을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오늘부터 「나모글」팀을 해체시키고 보도자료도 준비해 두세요. 아참, 그리고 고객들에게도 안내문 보내드리고요.』 「한글」이 살아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진 것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었다. 「한글」의 퇴출발표가 있었던 6월 15일부터 한달이상을 허송세월한 꼴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놓고 누구를 탓할 성질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장 사장은 잘 알고 있었다.

회의를 마치자 10시 30분이었다. 장 사장은 자리에 돌아와 PC를 켰다. 전자우편의 검색은 사무실에서 하루일과의 시작이다. 1분 가량의 부팅 시간이 지루해 언제나 담배를 꺼내 물곤하던 그였지만 두 달 전 기획관리부 직원들과 한방을 쓰면서부터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다. 비용 절감을 위해 다른 층의 사무실 일부를 건물주에 반납하면서 세평 남짓했던 사장실을 직원 회의실로 헌납(?)해버린 것이다. 직원들과 함께 근무하는 방은 어디서나 금연이다. 애연가인 장 사장이 사장실 폐쇄 때문에 고통을 받는 거의 유일한 이유이다.

PC가 부팅되는 한국정보공학의 유용석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 사장은 어제 유 사장을 만나 한국정보공학의 「미래로」를 취급하고 싶다는 나눔기술 경남지사 측의 요청을 전한 바 있었다. 「미래로」는 최근 각급 교육기관에 대규모 물량을 납품했는데 경남지사(사실은 대리점) 측의 뜻은 사무실 유지비용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경남지역 「미래로」사용자들의 유지보수와 교육을 맡고 싶다는 것이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겠지만 서울에 있는 회사도 어려운데 지방회사들은 얼마나 어려울까 싶어 경남지사장의 요청을 이해한 처지였다. 유 사장은 언제나 뒤끝이 없다. 『저희 직원들 얘기 들어 보니 「스마트플로우」와 시장이 겹치지는 않을 것 같습니나. 장 사장님 뜻대로 하세요.』

부팅이 완료된 PC화면에는 줄잡아 30여개의 메일이 순차적으로 로드됐다. 각 시도 지사로부터 올라오는 일일보고, 여전히 하루에 3~4통씩 들어오는 「나모글」개발에 대한 찬성지지 글과 반대 비난 글들, 이제는 이런 글들이 쓸모없게 돼버렸다.

검색을 끝내고 즉답해 줄 것은 곧장 메일을 보내고 나서 장 사장은 외출채비를 했다. 12시에는 여의도에서 A사의 한 임원과의 점심 약속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통회사인 A사는 요즘 자금 사정이 매우 긴박한 상황이다. 고객과 점심을 같이 하는 경우 여느 때 같으면 자신이 호스트가 되지만 오늘은 그 반대다. 그래서 장 사장도 기분이 썩 내키지 않는다. 아마도 A사측은 장 사장에게 당분간 채무유예를 요청할 것 같다. 하지만 장 사장도 이에 대해 무슨 복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예상했던 대로 점심은 그리 유쾌한 자리가 아니었다. 나눔기술 역시 이 어려운 시기에 자금압박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장 사장은 그래도 고객의 요청을 야박하게 물리친다는 것도 뭐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A사의 임원은 장 사장이 자신의 말을 이해했다고 믿는 눈치였다.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채무나 채권에 관해서는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던 장 사장이었다.

오후 2시 30분. 장 사장은 국회의원회관의 C의원 방을 찾았다. C의원 측이 「나모글」개발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해서 이뤄진 약속이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었다. J의원도 그런 낌새였던지 장 사장에게 대뜸 『그동안 수고했소.』라며 악수를 청하더니 『장 사장 일하나 맡아 줘야겠소』라고 다짜고짜 말했다. 정부가 전국의 우체국에 컴퓨터를 갖다 놓고 실직자들을 위한 정보취로사업을 벌이는데 이 사업의 자문위원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무슨무슨 비용을 갹출하라는 것이 아닌가 싶어 시큰둥한 기분이었는데 그런 의도는 아닌 것 같았다.

의원회관을 나선 장 사장은 곧바로 삼성동으로 향했다. 대학선배가 소개해준 비비컴의 홍윤택 사장을 찾아 보기 위해서였다. 대학선배는 공대 출신인 장 사장이 기술만 알았지 비즈니스를 잘 모른다며 핀잔을 주기가 일쑤였다. 『수긍하고 싶지 않겠지만 아직 한국은 법(法)이나 상경계열 출신들이 힘을 쓰는 사회』라는 것이 선배의 충고였다. 그래서 경제학과 출신인 홍 사장에게 『한수 배워둬라』라는 것이었는데 장 사장은 처음엔 그 뜻을 잘 몰랐다. 소프트웨어회사의 밑천으로 남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개발 기술만 있으면 된다고 믿던 장 사장이었다. 며칠전 최대고객인 울산의 H사 관계자들에게 저녁을 대접하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장 사장,내 떼돈버는 방법 하나 가르쳐 드리리다. 우리하고만 놀지 말고 회사 높은 분들과 골프도 치고 술도 좀 마셔봐요.』

출판과 소프트웨어개발을 겸하고 있는 홍윤택 사장도 장 사장의 방문을 반겼다. 『나는 이론(경제)은 알았지만 알맹이(기술)를 모르니 잘됐습니다. 우리 힘을 합쳐 멋진 일 한번 해봅시다.』

다시 만나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서 홍 사장 방을 나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그룹웨어사업부의 채희선 이사였다. 『방금 보고를 받았는데 따냈답니다.』 양재동 K사 입찰건에 관한 것이었다. 물량은 많지 않았지만 K사의 기업 장래성이나 제품 공급의 파급효과를 따진다면 나눔기술로서는 반드시 낙찰받아야 하는 전략 사이트였다. 아침 회의에서 장 사장은 채 이사에게 『우리 직원 제안서 써내는 실력 믿을 수 있지요. 이대로 하세요』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입찰방식이 무제한 낙찰제가 아니라 발주자의 예가에 근접한 가격을 써내는 제한 낙찰제였는데 이런 유형의 제안서는 기술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고 많았습니다. 금주중에 수고한 직원들에게 자리한번 마련하세요. 그리고 저는 들를 데가 몇군데 더 있으니까 무슨 일있으면 연락주세요.』

건물을 나서려는데 조금전까지도 흐렸던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장 사장에게는 아직도 2개의 약속이 더 있다. 그 하나는 여섯살, 다섯살 두 아이와 일찍 귀가해서 함께 놀아주겠다는 약속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저녁시간에 애들과 놀아주기로 했는데 갈수록 약속을 못지키는 횟수가 늘어가고 있다. 오늘도 그 약속은 공염불이 될 것이 틀림없어졌다. 또하나의 약속은 나모인터랙티브 박흥호 사장,ISS 김홍선 사장과 함께 저녁식사를 겸한 모임이었다. 지난주 박 사장, 김 사장 등과 함께 「나모글」개발 자금확보를 위해 한국소프트웨어컨소시움이라는 것을 발족시켰는데 어차피 모든 것이 수정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장 사장은 오늘 저녁 이 기구를 없애지 말고 산업발전을 위한 상설기구로 발전시켜나가보자고 제안해 볼 생각이었다.

시계를 보니 5시반이었다. 약속시간까지는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장 사장은 머뭇거리다가 인근의 백화점으로 향했다. 귀가할 때 애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 갖고 싶어하던 인형과 장남감이라도 사둬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구성=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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