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중소기업] 벤처 지원정책의 허와 실

한국전쟁 이후 최대 국난으로 불리는 IMF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중소, 벤처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으로는 다가오는 21세기 지식, 정보시대에 탄력 대응이 어려운 만큼 탄력성이 높은 중소, 벤처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97년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된데 이어 최근 벤처 붐이 일고 새 정부가 벤처기업을 새로운 국부의 창출원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히자 중기청, 산자부, 정통부, 과기부 등 경제부처와 금융권, 정부투자기관, 지자체, 대학 등이 경쟁적으로 벤처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다.

현재 정부가 내놓은 벤처정책의 골간은 크게 벤처기업 창업분위기 조성과 벤처기업 저변 확대 등 2가지다. 이는 벤처산업을 경제의 중심축으로 키우기 위해선 현재 2천여 개에 불과한 벤처기업 수를 대폭 늘려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2년까지 벤처기업을 2만개로 늘린다는 목표아래 대학생, 연구원, 예비창업자 등을 대상으로 창업을 유도하는데 정책의 포인트를 두고 있다. 미국 경제가 초호황을 구가하는 것도 실리콘벨리를 중심으로 활동중인 4만여개의 벤처기업이란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정부는 특히 이미 세계은행(IBRD) 차관자금 가운데 올해 벤처지원 용도로 할당된 4천억원중 절반 정도를 창업 지원 중심으로 배정한 상태다. 창업의 보고인 대학가에 벤처창업을 유도하기 위해 대학생 창업 로드쇼와 벤처창업박람회가 잇따라 개최하는 가 하면 대학가 창업동아리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또 전국 주요 지역에 대형 벤처창업단지를 조성하고 지역별로 벤처창업타운을 설립하는 것을 비롯 창업보육센터, 벤처전용빌딩(벤처집적시설) 등 벤처기업 공간확보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벤처기업의 젖줄인 벤처캐피털시장 활성화를 위해 창투사 설립요건을 완화했다. 창투사와 신기술금융사를 통한 벤처기업 투, 융자도 확대하고 있다. 연, 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벤처투자를 허용한 것이나 엔젤(개인투자가)제도 도입, 대기업 총액출자예외 한도범위 확대 정책 등도 같은 맥락이다. 뿐만 아니라 창투사 등 벤처캐피탈의 사채발행 한도액을 확대했고 벤처기업가들의 직접금융 조달 확대와 투자가들의 조기 투자회수를 위해 코스닥시장 재편도 추진중이다.

이밖에 벤처기업의 인력 및 기술 지원을 위해 공공기관이 일정비율 이상을 중소 벤처기업들에게 지원토록 유도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기술만으로 신용보증서를 발급하는 기술담보제도의 활성화, 공공기관 보유기술을 중소기업에 이전하기 위한 「기술복덕방」설치, 교수, 연구원의 휴직년제 도입, 벤처기업 병역특례요원 공급확대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벤처기업 육성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우리나라는 아직 벤처산업의 역사가 짧은 탓에 벤처기업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리가 안돼 있을 뿐더러 벤처기업의 법적근거인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 조치법」이 제정, 공표된지 1년도 채 안돼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조항이 많다. 이에 따라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 정책 곳곳에 적잖은 헛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수 많은 정책발표와 관심 집중에도 불구하고 그 효율과 효과는 의문시되고 있다. 벤처 창업과 성장에 필수적인 환경(인프라스트럭처)조성이 미흡하고, 경제 주체들의 능동적 인식전환이 더디게 진행하는 것도 원인중 하나다. 우리 실정에 맞는 고유의 벤처기업 모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방향제시가 없이 정책이 수립되고 발표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부분이 벤처기업의 범위 설정 부분. 이는 정부의 벤처지원 우산에 들어가느냐 여부와 결부되기 때문에 명확한 규정 정립이 시급하다. 현재 관련 법상 벤처기업의 범위는 △벤처캐피털사의 주식 총액이 자본금의 10% 이상 이거나 투자 총액이 20%이상△연간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가 5% 이상 △특허, 실용신안권 등의 사업화 △정부출연기술개발사업이나 우수 신기술 등을 사업화한 기업 등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때문에 이 규정중 하나 이상을 만족해야 벤처기업으로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어느정도 자리잡은 중소기업이 아닌 이상 현실적으로 아이디어와 기술 만으로 창업에 뛰어든 신생 기업이 이 조건을 충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정부에서 내놓는 벤처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벤처기업 확인 절차를 밟다가 벤처기업 범위에 들지 않아 실망만한 채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결국 벤처창업 촉진과 벤처기업 확대에 정책의 무게중심을 둔 정부가 스스로 수 많은 창업가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벤처정책 자금이 벤처기업의 현실을 등한시한 채 대부분 담보설정과 연계되는 것도 문제이다. 아무리 지원조건이 좋다해도 담보설정을 요구한다면 젊은 혈기만 믿고 거의 맨몸으로 창업의 길로 뛰어든 대다수 창업가들에게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다. 벤처기업가들은 『벤처기업을 상징하는 대표 개념이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ern)임에도 정부나 국내 벤처캐피털들은 벤처 투자에 경험이 없는데다 금융권의 구조조정에 밀려 안정적(?)투자에만 주력, 제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푸념한다.

벤처정책이 지나치게 창업 지향적으로 흐르는 것도 재고해야 할 대목중 하나다. 정부가 벤처기업 활성화 5개년 계획을 통해 2002년까지 2만개의 벤처기업을 육성하여 40만명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으나, 벤처기업이 활성화되는데 필수적인 토양조성의 구체적 방안이 미흡한 상태에서 이같은 정책은 양적 실적위주의 정책이란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실적으로 신규 창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존 중소기업의 벤처전환이다. 벤처기업 육성구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가운데 비교적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알려졌던 큐닉스, 태일정밀, 한글과컴퓨터 등 수 많은 업체들이 생사의 기로에 선 것이 이를 반증한다.

정보통신업체의 한 관계자는 『창업 중심의 정책이 오히려 경험없는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창업을 조장, 벤처기업에 자양분을 제공할 캐피털이나 투자가들의 관심을 돌려놓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전문가들도 지금까지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이 보다 먼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오로지 가시적인 효과만을 바라는 형태로 만들어져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진정한 벤처기업 육성은 「성공한 벤처기업」을 많이 배출하는 것입니다. 성공한 벤처기업이 많을 경우 자연히 창업지원자나 투자가들이 벤처기업에 관심을 끌 것이고 이로인해 벤처 저변도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벤처천국」이라는 실리콘벨리의 젊은 예비사업가들을 창업의 길로 끌어들이는 것도 결국 미국 정부의 지원정책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와 빌게이츠 같은 대성공을 거둔 기업과 기업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란 사실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무한한 꿈을 안고 실리콘벨리 진출을 추진중인 30대 초반의 한 젊은 사업가 내뱉는 말에서 벤처기업 지원 정책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듯 싶다.

<이중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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