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중소기업] "무너진 경제" 우리가 세운다

『하반기부터 기존처럼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직접 1조8천억원을 중소기업에 대출해주도록 하겠다』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열린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정부가 결정한 사항이다.

바로 다음날 정보통신부는 대학 인력의 창업을 활성화 하고 기업들의 창업기반 조성을 지원하기 위해 연세대와 광운대 등 10개 대학의 정보통신창업지원센터에 모두 5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시가 지역내 중소기업들에게 운전자금을 5백억원정도를 하반기에 추가 지원하기로 하는 등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앞다퉈 중소기업 지원에 나섰다. 서울은행은 지난달말부터 임원과 본부장별로 3억∼40억원의 한도를 배정해 3천억원을 중소기업에 대출해주기로 했고 상업, 조흥은행도 기술신용보증기금과 책임분담혁약을 맺어 우수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각각 5천억원과 3천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를 비롯 지자체, 은행 등이 국제통화기금(IMF)태풍에다 기업, 금융구조조정으로 인한 지금경색과 내수위축으로 붕괴 위기에 놓인 중소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지난 6월과 7월중 결정한 중소기업 지원시책들이다. 하나같이 「중소기업을 살리고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의지를 밝힌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초기부터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특히 21세기를 주도해 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벤처기업을 현재 2천여개에서 오는 2002년까지 2만개로 늘려 나가겠다는 청사진까지 제시한 상태다. 이를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중소기업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중소기업 육성책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기도 하다.

정부나 은행들이 중소기업을 육성하자는 이유는 자명하다. 우선 IMF이후 하루에 1백여개 기업이 부도로 쓰러지는 상황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중소기업의 제조기반이 무너지고 여기서 실업자가 쏟아지면 한국경제호 자체가 침몰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선진국의 수입규제나 경기에 민간한 특성을 지닌 대기업, 소수상품, 물량위주인 우리의 수출구조를 중소기업, 다품종, 고부가가치위주의 수출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데 있다. 다시말해 반도체나 자동차가 한국 수출의 운명을 좌우하는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살아야만 우리나라 경제가 튼튼해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튼튼한 경제는 수출확대에 있고 이는 수출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특히 기술력과 창의력을 갖춘 벤처기업들이 살아야만 산업고도화나 고부가가치 산업 위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대만이 불황을 타지 않는 이유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튼튼해서다. 대만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남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로 경제적 파국에 몰려 있는 현 상황에서도 흔들림없는 경제구조를 자랑하고 있다. 대만경제가 이처럼 견실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책이 체계적이면서도 자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됐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대만정부는 민생과 안정을 중시하는 경제철학의 기초하에, 양적 지표보다는 삶의 질적 제고를 우선하며 시장원리에 충실한 경제정책을 운용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시켜 왔다. 산업전체의 경쟁력 강화와 국가경제 체질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규제나 보호가 아닌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하는 경쟁여건의 조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내놓은 시책은 구조개선사업, 협동화사업, 공장입지 지원, 기술혁신개발사업, 회생특례자금 지원, 신용보증지원제도, 수출금융애로타개를 위한 수출보험 특별지원대책 등 이루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이같은 중소기업 지원정책에는 함정이 많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나치게 중소기업 지원을 강조하다보니 정책은 많은데 정작 실효성은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현재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그야말로 제로상태라는 게 중소기업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 때문에 돈을 이곳저곳에서 빌려 고사위기에 있는 중소기업이 수 없이 많다. 최근 단행된 5개 은행의 퇴출로 이들 은행과 거래하던 5천여개 중소기업은 도산의 위기에 직면하는 등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시, 도지사가 지역별로 설립중인 「중소기업 종합지원센터」는 단순히 중소기업 지원기관을 한 건물에 집중시킨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수출중소기업이 2만5천개에 이르지만 무역협회나 KOTRA, 중진공 등 각종 지원기관의 수출지원인력은 겨우 5백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IMF의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오히려 사업을 확장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중소기업들도 많다. 수정진동자용 베이스를 생산하는 제원전자는 IMF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쓰러지고 있는 와중에도 일본시장에 대한 공략을 강화, 전체 생산량의 25%선인 월 4백만개 정도를 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중 수출선을 더욱 늘려 월 1천만개씩 수출한다는게 목표다. 랜디스기어코리아는 요즘 동종업체들이 사업을 축소하는 분위기속에서도 공장과 연구소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관련업체 인수합병(M&A)과 신규 사업 개발에 여념이 없다. 공장자동화(FA)용 소프트웨어 전문업체인 한국디지탈콘트롤도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슬로바키아 등에 8억원 이상의 솔루션을 수출한 데 이어 올해를 기점으로 미국, 유럽, 동남아 등지로 진출할 계획으로 있다.

하루에 1백여개의 중소기업이 부도로 쓰러지는 현실 속에서 이들 기업의 상황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독야청청」할 수 있는 여유는 무엇인가. 랜디스기어코리어의 석진철 사장은 『1년 전부터 조직 정비와 사업구조 조정에 박차를 가하는 등 사전준비가 철저해 IMF 한파 등 남들이 말하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또 기업을 경영하는 최고 책임자는 기술개발이나 제품 경쟁력 제고, 영업 효율 극대화를 위한 각종 대안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길게는 10년, 짧게는 1~2년 앞을 내다볼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디지탈콘트롤의 이용해 사장은 『제품이 갖춰야 할 덕목 중 품질(Quality)을 최상위의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정부와 은행의 지원이 없기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고 원망의 소리를 높이고 있을 때 IMF를 이겨낸 이들 중소기업들은 지속적인 기술개발 투자와 조직 정비 등 뼈를 깍고 살을 도려내는 노력을 자발적으로 해온 것이다. 물론 정부나 대기업등의 지원 없이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자생력을 갖고 기업을 키워나갈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경제여건이다. 그러나 정부와 은행의 지원이 당장 급한 불을 끄게 해 줄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준다거나 체질을 변화시켜 줄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결국 중소기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인 스스로가 변화하고 노력해야 한다. 더 이상 정부나 은행, 대기업에 기대어서 지원금을 받거나 물건을 납품해서 기업을 꾸려나가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이 현재 상황에서 살아남는 길은 수출 뿐이라고 강조한다. 어차피 내수시장에서 제품을 팔아 공장을 정상가동하기 어려운 현실인 만큼 70년대 처럼 「수출제일주의」기업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외환수수료 등 수출관련 부대비용을 줄여줘야한다. 또 무역금융지원을 확대해 수출업체가 자금부담없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기업체 나름대로의 노력도 필요하다. 첨단기술은 아니어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으면 해외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갖고 기술개발투자를 강화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제품 품질경쟁력과 거래선과의 신뢰구축도 중요하며 수출시장의 상품에 대한 구매변화를 예측하고 발빠르게 대응제품을 개발하는 정확성과 신속성을 갖추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이 수출시장을 읽고 예측하여 해외마케팅을 벌이기란 쉽지 않지만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종합상사의 해외마케팅능력과 정보력을 이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봄 직하다.

<김병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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