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화국 당시 유행하던 우스갯소리 가운데 「박사 위에 육사(陸士) 있고 육사 위에 여사(女史) 있다」는 말이 있었다. 당시의 권력 구조를 빗댄 이 말은 굳이 설명을 따로 붙이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 하!」하고 수긍했다.
세월이 바뀌어 6공화국 이후에는 「도덕 위에 법 있고 법 위에 권력 있다」는 말이 탄생하더니 이윽고 「권력 위에 정서(情緖) 있다」라는 내용이 추가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격변기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원칙이나 논리보다는 국민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정서」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빗댄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가장 무서워하기도 하고 거꾸로 제일 잘 이용하는 말이 바로 「국민적 정서」이다. 비단 정치인뿐 아니라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공무원, 심지어 기업 최고 경영진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상품을 국민들에게 선보일 계획을 세웠더라도 그것이 국민정서를 거스르거나 부합되지 않는다면 시행에 나서기도 전에 거센 여론의 질타를 받고 좌초한 사례를 우리는 보아왔다. 온탕 냉탕을 왔다갔다 한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일시적 모면책에 불과할지라도 국민정서에 영합하는 것이라면 일단 「박수」를 받지만 결국엔 실패로 끝나기도 했다. IMF체제를 불러온 전 정부의 외환정책이나 기아 처리문제가 그런 사례이다.
「한글」 및 한글과컴퓨터 처리 문제에 대한 정보통신부의 고민도 따지고 보면 시장원리나 경제상황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국민정서」에서 비롯됐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경쟁에서 탈락한 기업이나 상품이 퇴출되는 것은 시장원리상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이것이 국민정서상 용납되지 않는 케이스여서 논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의 현 경제여건이 다급기는 하지만 이런 때일수룩 국민들은 「시장원리」보다는 「정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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