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윤원창 경제과학부장
IMF관리체제 아래의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새삼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과학기술계를 면밀히 들여다 보면 상황이 더 심각하다. 민간연구소들은 재정난으로, 출연연구소들은 구조조정으로 그야말로 연구분위기가 최악의 상태다. 강창희 과학기술부 장관은 현재 과학기술계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학자들을 존중하는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장관은 『그동안 정부가 과학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은 사실』이라며 『새 정부 아래서는 과학기술자들이 당당히 대우받는 풍토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특히 부족한 국가연구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한 종합조정 기능을 가진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재임중에 반드시 만들어 과학기술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는 기틀을 다진다는 각오를 보였다. 강 장관은 출연연의 구조조정과 관련, 『일시적인 고통은 있겠지만 더 이상 정부가 출연연을 간섭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자신을 「과학기술계의 고용 사장」이며 「과학기술계의 주인은 국민」임을 강조하는 강 장관은 과학기술의 토대를 마련한 장관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과학기술행정의 수장으로 취임 1백일을 맞은 강창희 과학기술부 장관을 경제과학부 윤원창 부장이 만났다.
-장관으로 취임하신 지가 벌써 1백일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국가과학기술 행정을 이끌어 온 수장으로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1백일이 1백년은 된 것 같습니다. 국회 통신과학위원회에 있으면서 과학기술 행정에 대해 곁눈질은 했지만 막상 행정책임자 입장에 서니 어깨가 무겁습니다. 출연연, 대학, 기업부설연구소 등 현장을 돌아보면서 그래도 우리 과학기술계는 희망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현재 과학기술계의 문제점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는 지난 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이래 불과 30여 년의 짧은 기간에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일부 기술분야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국가경제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매우 큽니다. 그러나 아직도 경쟁국에 비해 크게 부족한 우리의 가용자원 여건을 감안해 볼 때 과학기술계에서도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곳곳에 산적해 있습니다. 예컨대 16개 부, 청이 참여하는 정부연구개발사업의 경우 종합조정체제 미흡으로 우선순위 및 자원배분 조정 등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IMF관리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궁극적인 방안은 결국 과학기술력 제고에 있음을 감안, 이 같은 비효율적 요소는 하루빨리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출연연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이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개혁의 기본방향과 최종 목표가 무엇입니까.
▲과기부 산하 20여개 출연연은 지난 70, 80년대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선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대내외 여건이 크게 변화하면서 출연연 또한 새롭게 변모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획예산위원회를 중심으로 마련중인 출연연 경영혁신의 기본원칙은 효율과 자율성을 확보해주는 것입니다. 현재 관련 법률의 제정작업이 진행중입니다만 우선 출연연과 주무부처의 소속관계를 해소해 인사, 예산의 편성 및 집행에 있어 자율성을 보장하고 민간연구소, 대학, 출연연간 경쟁을 통해 연구능력을 제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구능력과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 등 민간경영기법을 도입해 출연연 운영의 효율화를 꾀하되 정부는 출연금 조정 및 기관운영 결과와 연구실적 평가를 통해 출연연의 혁신을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같은 개혁의 최종적인 목표는 1만여명의 연구원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신명나는 연구분위기 속에서 연구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연구생산성을 높이자는 것입니다.
-지난 번 대통령 업무보고 때 국가 연구개발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 설치가 시급하다고 주장하셨는데, 국과위 설치 목적과 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자문회의)와의 차이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신설되는 국과위는 통치권 차원에서 과학기술 관련 시책들을 국가정책 목표에 부합되도록 수립, 조정해 과학기술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문회의는 각종 과학기술진흥 정책에 대해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측면에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한 순수 민간자문기구입니다. 그러나 자문회의 위원장은 국과위에, 자문위원은 국과위 산하의 총괄위원회 위원으로 각각 참여토록 하는 만큼 양 기구간 지원, 협조가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국과위의 사무국을 과기부가 맡고 또 과학기술계 출연연의 감독을 국과위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과기부가 비대해진 출연연 관리부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과기부 해체론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자연계 출연연은 인문사회계와 달리 기술적인 전문분야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므로 국과위에 소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또 과학기술 관련 정책과 연구개발 계획, 사업 조정 및 예산의 효율적 집행 등을 심의하는 국과위 설치목적처럼 출연연을 국과위 소속으로 두면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종합, 조정이 좀더 실효성있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리고 현재 출연연에 대한 지원, 육성업무는 과기부내 1개과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기부의 입장은 국과위의 사무국 기능을 수행하면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진흥 주무부처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자는 것입니다. 민간과 대학의 연구개발 활동이 확대됨에 따라 출연연의 기능이 축소되고 있으나 과기부의 행정영역은 오히려 확장되고 있습니다. 종합적인 국가과학기술 정책을 수립, 집행하기 위한 기술개발이나 부처간 관련정책 및 사업의 조정, 민간영역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공공기술개발, 우주, 해양 등 거대과학 및 미래원천기술의 개발, 인력양성 및 기초과학 연구기반의 확충, 그리고 과학기술 국제협력을 통한 국제사회에의 기여와 참여 등 그 업무영역이 다원화,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출연연에 대한 정부간섭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과 배치되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연합이사회는 출연연의 정원, 인사, 예산 등을 각 기관장에게 맡겨 개별연구소의 자율성을 보장토록 하면서 정부 부처의 간섭을 배제토록 되어 있습니다. 국과위는 연합이사회의 운영에 간여치 않고 연합이사회의 정부출연금에 대한 투자 우선순위 등 투자효율성 측면에서 종합하고 조정하는 것이므로 서로 배치된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투자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과학기술을 획기적으로 육성 발전시킨다는 취지로 시행되고 있는 과학기술혁신 5개년계획이 올들어 본격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가지 과학기술 육성 계획들이 있었지만 정치적인 논리에 밀려 매번 예산이 크게 삭감되는 등 용두사미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믿어도 되겠습니까.
▲과기혁신계획은 우리가 후손을 위해 제대로 추진해야 할 의무사항입니다. 지난 4월 제3회 과학기술장관회의에서 98년도와 99년도 추진계획을 심의, 의결한 바 있고 현재는 확정된 계획내용을 차질없이 수행하기 위해 예산확보 등 후속조치를 관계기관과의 협의하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어려운 재정으로 인해 98년도 연구개발 예산이 97년에 비해 1.4% 감소하는 등 과학기술혁신 5개년계획의 원활한 추진에 다소 어려움은 있지만 주어진 예산의 범위내에서 효율성을 제고한다면 당초의 목표달성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벤처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습니다. 어떤 철학이 있으십니까.
▲아시다시피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은 새로운 지식 및 연구개발 결과물을 상업화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종업원 20명 이하의 신기술 기업이 전체 하이테크산업 고용의 약 25%를 차지하고, 일본의 경우 93~94년간 중소기업 고용증가율 5% 중 2분의 1이 2백여개의 신기술기업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우리 부는 「기술이 있는 곳에 창업 있다」는 인식 아래 산하 출연연구기관 연구원들의 창업 및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을 활성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과학기술진흥기금 중 일정액을 신기술사업에 대한 투자로 전환하고 기술신용 담보대출을 확대해 창업 초기의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1사, 1연구원 전담제도를 통해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및 기술개발 등 실질적인 도움을 줄 생각입니다.
-IMF체제 이후 국가적인 위기탈출을 위해서는 국가연구개발 우선순위도 조절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원천핵심기술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국가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이른바 개량형 기술개발에 치중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근의 어려운 경제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가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개량기술을 개발해 세계에서 가장 구매력있는 상품을 만들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신기술과 무역역조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부에서는 단기적으로 경제난 극복에 직접 기여하는 현안과제에 97년보다 75% 증액된 6백18억원 규모의 연구비를 집중 지원할 계획입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투자의 78%를 차지하고 있는 민간의 연구개발활동이 최근의 경제위기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들 기업의 연구개발활동을 향상시킬 복안이 있습니까.
▲우선 정부, 민간 공동연구사업에 참여할 경우, 이제까지 대기업은 연구비의 50%, 중소기업은 연구비의 20%를 자체부담토록 했으나 올해 기업의 어려운 자금난을 감안, 중소기업의 부담률을 10%로 하향 조정하고 총연구비의 10%를 현금으로 부담하던 것을 현물로 대체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며 대기업에 대해서도 자체부담률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종합기술금융주식회사(KTB)를 통한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자금 지원규모를 지난해 1조3천7백억원에서 금년에는 1조5천억원으로 확대, 지원해 나갈 것입니다.
-방향을 바꿔 대덕에 가보시면 알겠지만 출연연의 경영혁신과 관련, 인원감축이다 뭐다 해서 상당히 어수선하고 연구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출연연 경영혁신 작업이 조속한 시일내에 마무리되지 않으면 올 한 해 허송세월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추진중인 경영혁신 방안도 결국 연구원들의 연구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운영, 관리측면에서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연구소 운영에 최대한 자율권을 보장하고 능력과 성과 위주의 운영체제를 갖도록 해 이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특허권의 일정 지분을 연구자에게 귀속시키고 개발기술의 창업시에 기술료 면제, 창업자금 지원 등의 혜택을 부여토록 함으로써 실력있는 연구원들이 마음놓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작정입니다.
-IMF관리체제 이후 국내 과학기술 두뇌들의 해외유출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경기회복 이후에 대비한 인력양성 계획은 있으신지요.
▲과학기술의 발전은 결국 과학기술인에 달려 있음을 감안해 「창의적인 인력양성과 과학기술자 우대방안」을 중점 추진할 계획입니다. 「한 사람의 과학기술자를 배출하는 데 드는 비용은 그 사람의 몸을 금으로 만드는 만큼 든다」는 말처럼 과학기술인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훈, 포장제도 신설, 인센티브제도 강화, 그리고 과학자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과학기술문화를 조성토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창의적인 과학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한국과학기술원을 세계 10위권의 연구중심 교육기관으로 육성할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또 정보통신, 신소재, 환경, 가전공학, 생명과학 등 첨단분야의 과학기술혁신을 선도할 우수과학기술 인재양성을 위해 95년부터 광주과학기술원을 설립, 운영해 작년에 2백여명의 석사를 배출했고 현재 4백여명의 석, 박사 학생이 재학중입니다. 국내 이공계 대학에 우수연구센터 59개를 지정해 연간 5백3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 대학원생들이 연구참여를 통해 우수연구인력으로 양성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정리=정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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