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패커드벨NEC(PB-NEC)에 대한 일본 NEC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95년 패커드벨 자본 참여 이후 지금까지 1천5백억엔 이상을 출자, 융자하고 있는 NEC가 최근 경영상의 발언권을 높이는 것은 물론 PB-NEC 통신판매 브랜드를 NEC로 통일하는 등 제품의 NEC화 작업에도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NEC의 움직임을 놓고 일부에서는 PB-NEC를 자회사화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의 일환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PB-NEC는 97회계연도 결산 결과 손실이 다소 줄어들기는 했으나 5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NEC는 당초 이 회사를 올해 안에 적자 경영에서 탈피시켜 올해 말께에 주식을 공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어쩔 수 없이 이 계획을 미루게 됐다. 게다가 주력 사업인 가정용 PC시황이 악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업무용 PC 사업 체계 확립도 당초 예상보다 오래 걸려 획기적인 처방이 없는 한 흑자화는 다소 요원한 상태이다.
지난 87년 설립된 패커드벨(PB)은 95년까지만해도 잘나가는 미국 PC업체 가운데 하나였다. PB는 경쟁업체들이 기업과 교육시장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동안 초보자 중심의 가정용PC 시장을 타깃으로 성장을 구가했다. 특히 95년 7월 NEC가 자본 참여할 당시 NEC와 PB를 합친 세계 시장 점유율은 10%를 넘어 세계 최대 규모의 PC연합이 탄생했다며 자축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재무구조가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PB는 NEC가 투자한 바로 그 해 말에 자금 사정이 크게 악화됐다. NEC는 PB를 지원하기 위해 다음해인 96년 자사 해외사업부와 PB를 통합시켜 PB-NEC를 발족시켰으나 그후에도 컴팩컴퓨터, 휴렛패커드(HP) 등에 밀려 고전을 거듭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NEC의 시장 점유율도 계속 하락세를 보이면서 두 회사를 합친 세계시장 점유율은 10% 미만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NEC는 95년 7월 최초의 자본 참여 이후 여러번에 걸쳐 PB-NEC에 대한 출자를 계속해 지난해 6월에는 의사결정권이 없는 무의결권 우선주를 포함한 출자비율이 51%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B-NEC의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NEC는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3억달러의 운영자금을 융자 형태로 지원하는 동시에 전체 주식 가운데 약 30%를 의결권 보유 주식으로 변경해 의결권 주식 비율을 49%까지 끌어올렸다. 즉 기존의 「자금은 지원하되 경영 간섭은 피한다」는 자세에서 「돈을 낸 만큼 목소리도 키우겠다」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NEC가 당시 경영 간섭을 본격화 하면서도 의결권 보유 주식의 비율을 49%선에서 억제한 이유는 올해 말로 계획했던 PB-NEC 주식 공개시 「미국 회사」라는 이미지가 도움을 줄 것이라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올해 말 주식 공개는 물건너간 이야기가 됐고, 현재로서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회사를 흑자화하는 것이 선결과제가 되고 있다.
NEC는 이를 위해 올해 들어 공장 통폐합 및 사원 4백명 감축, 인텔 호환칩 채용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공전의 히트상품이 나오기 전에는 흑자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NEC는 의결권 보유 주식을 2%만 늘리면 PB-NEC를 언제든지 자회사화할 수 있다는 최후의 카드도 갖고 있다. 물론 NEC는 PB-NEC가 독립된 별도 회사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PB-NEC에 대한 NEC의 움직임이 변화하면서 자회사화가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같은 관측의 근거로는 PB-NEC의 노트북PC 개발 부문을 일본 NEC와 완전 통합한다든가 미국 업무용 및 가정용시장 통신판매제품의 브랜드를 모두 「NEC」로 통일한다든가 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손꼽히고 있다. 이 밖에도 PB-NEC내 담당부서명을 NEC-CSD로 변경해 PB라는 단어를 없애는가 하면 신제품 발표와 인터넷 홈페이지 등도 모두 NEC의 독자적 색채가 강조되도록 해 PB라는 이미지를 없애려는 작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도 자회사화를 기정사실화 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PB-NEC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어떤 속단도 할 수 없다. 단지 분명한 것은 PB-NEC의 운명을 전적으로 NEC가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NEC의 적극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PB-NEC는 실적면에서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NEC의 적극 개입은 최근 본격화한 것으로 아직은 눈에 띨만한 성과를 기대할 만한 시기가 아니다. 일본 최대업체라는 이름값 만큼 무수하게 많을 NEC의 경영 노하우가 앞으로 어떤 형태로 PB-NEC에 반영될지, 그리고 결국은 PB-NEC가 NEC 자회사의 길을 걷게 될지 여부를 놓고 세계 PC업계는 PB-NEC의 행보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심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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