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황제"와 "사기꾼"

김진호 골드뱅크 사장

마이크로소프트(MS) 빌 게이츠 사장에 대한 황제라는 호칭은 이제 낯설지 않다. 빌 게이츠의 말은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으며 그는 자신의 철학으로 21세기를 이끌어가려 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어메리칸 드림」을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심어주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빌 게이츠를 본받으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적을 막론하고 실리콘밸리에 몰려들고 있으며 세너제이는 첨단산업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다. 결국 빌 게이츠로 촉발된 벤처 드림이 우수인력을 실리콘밸리로 끌어들이고 이들을 붙잡으려는 건강한 자본 역시 실리콘밸리로 집중되는 실정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지난 2월 6일 모든 일간지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벤처기업인 큰사람정보통신의 이영상 사장이 허위 사업계획서를 작성, 공공자금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사기를 쳤다는 것이었다.

빌 게이츠와 이영상 사장과는 공통점이 많이 있다. 학생 신분으로 창업했다는 것과 아이디어와 기술력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공통점은 새로운 시장을 열어 시장에서 표준을 만든 사람이라는 점이다. 빌 게이츠는 운용체계를 도스에서 윈도로 정착시켰으며 이영상 사장 또한 「이야기」라는 통신프로그램으로 국내 범용 통신프로그램 시장의 지평을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은 황제로 불리고 있으며 다른 사람은 비록 혐의가 벗겨졌다 하더라도 잠시나마 사기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결과를 낳게 됐다.

이 극단적인 차이는 결코 개개인의 도덕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이영상 사장의 도덕성과 신념, 헌신성은 빌 게이츠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 정부의 지원부족 탓도 아니다. 미국 정부의 벤처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거의 전무한 반면 우리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에 아주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몇 천억원 단위의 지원대책이 계속 나오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우리 사회의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우선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두 나라의 자세에 큰 차이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철저히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으며 성장했다. 미국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국부 차원으로 격상시켜 미국시장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도 철저히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과의 지배권을 둘러싼 무역 마찰이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의 불법복제를 막기 위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큰사람정보통신의 경우는 정반대다. 애써 개발해 놓으면 록(Lock)이 풀렸으며 시장에는 복제품이 나돌았다. 돈주고 사면 바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으며 복제해서 쓴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불감증이 팽배하다. 이런 상황에서 상품을 판매해서 자본을 확보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없다면 모든 지원대책은 공염불일 뿐이다.

다음으로 자금조달 방식의 차이를 들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나스닥 시장이 활성화해 누구나 자유롭게 자금을 투자할 수 있으며 벤처기업들 역시 쉽게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나스닥을 통해 자금을 확보했으며 투자자들 역시 이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뽑아냈다.

국내의 경우 벤처캐피털은 그 힘을 잃은 지 오래며 정부의 지원은 생명 연장책에 지나지 않는다. 큰사람정보통신뿐 아니라 거의 모든 벤처기업들이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업의 성장기에는 자금과 사람이 모이고 이는 사업을 성장시키는 상승효과를 거두게 된다는 빌 게이츠의 말은 사실 우리의 경우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이같은 구조적인 문제는 결국 출발이 비슷했던 두 사람을 황제와 사기꾼으로 갈라놓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여겨진다. 정보통신의 미래는 벤처기업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시대의 화두이며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이 그 짐을 질 각오가 돼 있다. 직접적인 지원보다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벤처기업 전용의 자본시장을 형성시켜주는 것이 황제를 양산할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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