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순수 민간차원의 최고 석학들로 구성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과학기술부문 현안들에 대해 산, 학, 연, 정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심도있는 토론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한림원탁 토론회를 매월 지상중계한다. 올해 처음 열린 한림원탁 토론회는 강창희 과학기술부장관을 초청, 「국민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을 주제로 지난 29일 오후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1백여명의 한림원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번 토론회에는 김정욱 고등과학원 원장, 김창수 LG종합기술원 원장, 김호기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김훈철 한국과학기계연구원 연구위원, 배병휴 매일경제신문 주필, 장수영 포항공대 총장, 조장희 캘리포니아대학/어바인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석해 3시간여 동안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편집자>
△김정욱(고등과학원장)=새 정부가 과학기술정책을 최우선 정책으로 한다는 데 대해 과학자의 한사람으로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는 달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출연연구소들에 대한 경영혁신 방향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연구원들의 처우를 개선한다고 하면서 연구원의 봉급을 일률적으로 20%씩 삭감하는 것은 무리다. 능력별 메리트시스템을 적용해 잘하는 연구원은 충분히 보상해줘야 한다. 연구원들의 정년을 61세로 정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같은 정책으로는 고급 연구인력의 해외유출이 우려된다. 정부의 대책은 무엇인가.
△조장희(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대학 교수)=국가나 기업이나 연구개발은 국제간 경쟁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는 상당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경쟁력에서 크게 뒤져 있다. 이는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고급 연구인력을 제대로 정부가 공급해주지 못하고 있는 데도 원인이 있다. 대학이나 출연연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고급인력을 양성해 기업체에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과학기술부는 적어도 고도의 기초 핵심연구를 전담하고 고급인력 양성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지원이나 중소기업,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 등 모든 일을 다하려 해서는 안된다.
△강창희(과학기술부 장관)=현재와 같은 국가위기 상황에서는 부족한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 필요하다. 계획하고 있는 과학기술 계획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안타깝지만 IMF 현실을 직시하고 수용해야 한다. 민간부문의 연구인력 감축으로 고급인력의 해외유출이 심각한 수준으로 이러다가는 자칫 기술공황이 우려된다. 지역협력연구센터 등을 돌아보며 사립대학들의 연구개발투자와 인력양성 등이 활발한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정년이 지난 연구원들의 활용방안을 강구중이다.
△배병휴(매일경제신문 주필)=국민의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과학기술 입국에는 반론이 있을 수 없다. 다만 거창한 과학기술육성 계획들이 번번이 예산확보에서 밀려온 것을 감안하면 현재와 같은 국난에서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기상황에서 평범한 논리로 예산을 확보하려 든다면 예산은 오리려 삭감당한다. 과기부는 어떤 논리로 과학기술 예산을 확보해야 할 것인가를 모색해야 한다. 국민들의 정서는 뜬 구름 잡는 식의 과학기술 투자보다는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예산확대를 더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과학기술 예산이 매년 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기술개발 성과가 미진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부로 승격되었다고 모든 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강창희 장관=예산확보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자 어려운 문제다. 과학기술은 손자가 어른이 되었을 때 과일을 따 먹을 수 있도록 나무를 미리 심는 것과 같다. 신설될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제대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예산 선심의권, 예산 우선 배정권 등이 필수적이다. 협의해야 할 사항이지만 반드시 관철시킬 작정이다. 부 승격이후 과기부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심각히 논의되고 있다. 과거 출연연 관리청이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설치되면 국가과학기술정책 전반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출연연은 철저하게 연합이사회에 맡길 생각이다.
△김창수(LG종합기술원장)=우리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과학기술투자 효율성 문제이기도 하지만 연구개발 주체간 연계성이 더욱 문제다. 출연연이나 국책연구소들의 연구결과를 산업체에 연계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연구개발의 결과를 애타게 찾는 고객은 산업체인데 출연연들의 연구가 대부분 고객들의 수요에 맞지 않고 있다. 정부의 연구개발정책도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서비스정신이 필요하다.
△강창희 장관=기술 수요자와 공급자간 관계를 제대로 구축해야 연구개발 효율성이 높아진다. 대기업들은 정부의 기술공급이 성에 차지 않아 대규모 연구소를 설립해 자급하지만 중소기업들은 그렇지 못하다. 대학과 지역산업체, 지방자치단체 등이 모여 기술수요에 맞게 연구하는 지역협력센터의 경우 연구개발 효율성과 연계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현장을 방문해 실질대책을 수립하려 한다.
△장수영(포항공대 총장)=창의적인 인력양성을 위해서는 한국과학기술원,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과학원 등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인력양성은 교육부의 몫인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육예산이 정부예산의 25% 선에 육박하지만 90%가 초, 중등 교육에 배정되고 있고 48개 국립대학교의 총예산이 일본의 동경대학 하나만도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교육부에 어떤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교육부의 고등교육분야를 분리해서 과기부와 통합한 새로운 부 신설이 시급하다. 그렇게 되면 학술진흥재단과 한국과학재단 등 대학연구를 지원하는 창구도 일원화돼 요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정부는 오는 2002년까지 현재 75개의 우수연구센터를 1백50개로 늘린다고 했는데 외형적인 성장보다는 센터수를 줄이더라도 센터당 연구비를 증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센터사업만 강조하다보면 개인적인 연구비는 지나치게 줄어들 위험이 있다.
△김훈철(한국기계연구원 연구위원)=개방된 국경없는 세계에서 과학기술이 중심이 된 새로운 형태의 경쟁이 국가경영의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는 지적은 매우 적절하다. 미래의 준비는 과학기술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21세기를 준비하는 우리의 처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연구개발 투자에 비해 성과가 없다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개방된 시스템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해외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에서는 박사급 고급인력이, 일본에서는 중소기업의 직접 합작투자가, 중국에서는 방대한 자원이,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수많은 「이삭기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에서 국제협력은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김호기(한국과학기술원 교수)=대학교수나 연구원 등 고급인력의 벤처기업 창업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겸직 및 휴직 제도 등 제도를 완화하고 연구기관 보유기술이전 등 벤처기업 창업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특히 대덕연구단지의 과학산업연구단지화를 적극 추진해달라.
<정리=정창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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