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다국적기업] 다국적기업 진출의 명암

다국적 기업의 한국진출이 이뤄진 것은 60년대 초반 차관과 다국적 기업 유치 등 외자를 기반으로 한 제1차 경제개발계획(62∼66년) 추진시기와 일치한다.

정부가 62년부터 5년 동안 도입한 외자는 모두 3억6천5백만달러로 1차 경제개발계획에 투자된 전체 자금의 57.3%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였다. 그러나 외자 대부분(87%)은 IBRD나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의 차관에 의한 것이어서 차관기업들의 금융부담이 갈수록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65년 합리적인 외자도입과 사후관리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외자관리법 개정을 통해 금융부담이 없는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 권장하는 한편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을 대상으로 외자 도입선의 다변화 정책을 펴게 됐다. 그 결과 67년부터 71년까지 5년 동안 30개 업종에 걸쳐 차관을 제외한 외국인 투자가 3백여건 2억1천8백만달러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주종을 이룬 전자업종에 60여건 4천5백만달러(21%)가 몰렸다.

전자부문 진출 1호는 65년 9월 중앙상역 지분의 60%에 해당하는 8만8천달러를 투자한 미국 TV/라디오 제조회사 로열 팩(Royal Pac)이 기록했다. 이어 외자관리법이 개정되면서 페어차일드, 시그네틱스, 모토롤러, 코미, USKM, 도시바, 산요(이상 반도체), IBM, 컨트롤데이터, 스페리, 어플라이드 마그네틱스, 페라이트, 교에이(이상 컴퓨터), 오크 일렉트로네틱스, 알프스, NEC, 스미토모(이상 전자부품), 니코, 크라운, 마벨(이상 가전), 지멘스(통신) 등 64개사가 잇따라 직접투자(외국인 1백%) 또는 합작투자 형태로 국내에 진출했다.

전자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몰린 것은 정부가 세제상의 특혜와 행정지원 등을 통해 제2차 경제개발계획 기간(67∼71년) 중에 전자공업을 수출전략 산업으로 집중 육성하려는 시책과 크게 맞아떨어진 경우였다. 이 때 나온 관련정책들이 전자공업협동조합의 발족(67년), 전자제품 수출 5개년 계획(67∼71년), 전자공업진흥법(68년), 전자공업진흥 8개년 계획(69∼76년) 등이다. 정부가 당시 전략산업으로 꼽은 업종으로는 이밖에 석유, 비료, 기계, 섬유분야가 있었다.

외국인 투자가 금융부담만 가중시키는 단순 차관에 비해 훨씬 유리하고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직시한 정부는 73년 외자관리법을 보다 확대한 외자도입법을 제정하고 더욱 많은 외자 유치에 나서 81년까지 전자분야에서만 2백20건 2억2천8백60만달러의 외국인 신규 투자를 유치해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성과는 전자산업이 80년대 이후 한국 경제를 받쳐주는 가장 확실한 축으로 자리잡게 해준 양분 역할을 했다.

80년대 들어 전자분야 투자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88올림픽 개최에 따른 해외홍보와 개방정책이 절정을 이뤘던 87∼88년 2년 동안은 80년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1백34건 4억7천4백만달러를 기록, 국가 정책에 따라 외국인 투자분야와 그 내역이 달라질 수 있음을 입증했다. 같은 선상에서 보면 역대 최고 규모인 4억3천5백만달러를 기록한 96년 역시 정부가 세계화 정책을 적극 추진했던 해였다.

90년대 들어 유통시장 개방 등에 따라 도소매업, 숙박업 등 서비스분야에 투자가 몰리면서 한동안 주춤거린 전자분야의 외국인 투자는 95년부터 회복돼 이 해 2억2천8백만달러, 지난해에는 2억9천1백만달러를 기록했다. 올해는 IMF 구제금융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유치 정책에 힘입어 지난 1월과 2월 두달 동안에만 5천만달러(전 산업분야 총액은 3억3천만달러)를 기록했다.

80년대 이후 외국인 투자의 공통점은 신규 투자보다는 기존의 생산시설과 판매경로를 확장하기 위한 투자확대가 대세를 이뤘고 규모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해가 거듭될수록 다국적 기업에 대한 특혜가 많아지고 각종 행정규제는 완화되거나 철폐된 데 따른 것이었다. 다국적 기업에 내수판매를 불허하던 규제가 외자도입법 제정과 함께 70년대 초 완화되면서 합작투자 업체에 한해 허용되는 수순을 밟다가 88올림픽을 앞둔 86년에는 1백% 투자 다국적 기업에까지 확대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각종 규제가 완화될수록 다국적 기업에 대한 토종기업과 일반인의 거부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경제주권의 상실, 노사문제, 과실송금, 환경 공해문제 등이 불거져나온 것도 이때부터였다. 치외법권적 특혜로 설립된 다국적 기업의 제조시설이 대부분 원료의 독점 공급을 전제로 한 조립생산공장으로서의 역할에 그침으로써 기술이전에 극히 인색하다는 불만도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90년대 들어 다국적 기업들은 세계적으로 기존의 폐쇄적 기업경영 방식에 대대적인 메스를 가하게 되는데 여기서 얻어진 핵심전략이 바로 기업 현지화다. 과실송금이나 원료 독점 공급 등 모회사의 이해관계에 따른 경영보다는 기업 본연의 정체성과 경쟁력 확보 노력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진출 다국적 기업 사이에서도 한국에서 번 돈은 한국에 재투자, 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나아가서는 산업발전과 고용안정에 일익을 담당함으로써 「한국기업」으로 뿌리를 내리려는 변신 움직임들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문화와 예술 등 비경제적인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짐으로써 탈국적화 또는 속지주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홍보전략도 이때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이후 나타난 다국적 기업들의 변신노력을 보면 컴퓨터 한글화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마이크로소프트), 한국 협력사로부터의 반부품 구매사업 및 한국 전통문화 지원사업(IBM), 국산 통신기술 구매사업(모토롤러) 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노력은 궁극적으로 기업이미지나 제품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투자의 한 방법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과정을 보면 오히려 토종기업들의 투자보다 훨씬 진지하며 산업 연관효과나 기여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시각은 이제까지 경제식민주의 또는 기술독점주의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 일변도였다. 다국적 기업 스스로 그런 원인들을 제공한 측면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을 바라보던 한국인의 시각이 동전의 일면에만 국한돼 있었던 측면도 없지 않았다. 늦었지만 IMF 구제금융 상황을 계기로 동전의 다른 한 면을 발견하게 된 것은 경제의 장기번영을 위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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