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大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반도체업계가 3년째 공급과잉의 수렁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가운데 IMF체제의 극한 상황까지 겹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우리 업계는 소위 「칩들의 전쟁(Chip War)」으로 표현될 정도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불과 10여년 만에 세계 D램시장을 리드하는 자리에 우뚝 섰다. 이는 재벌기업에서 최고경영인이 오너일 때의 장점, 즉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일사불란한 조직체계를 통한 막대한 자본의 지속적인 투입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는 D램산업이 성숙되면서 공급과잉의 위험을 무시한 방만한 설비투자로 인해 외형 성장에만 부풀려져 왔다. 경영자들은 수익성 위주의 주주가치보다는 시장점유율 확대나 매출신장에 주력해 왔다. 결과적으로 우리 업계는 세계적인 D램시장의 침체와 과잉투자로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됐다. 충분한 장기 공급처를 확보하지도 못한 채 무조건 생산만 늘려 업계 전체가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이러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현실의 티끌 같은 이익을 채우려 하기보다는 향후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기 위해 생존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현재의 D램 가격으로는 어느 기업도 이익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기업간의 강력한 협력을 통해 기존 설비능력을 대담하게 줄일 수 있는 중대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D램시장의 회복을 위한 유일한 돌파구는 생산감축을 통한 공급통제 외에는 없음을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업계는 시급히 감산조치의 우호적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국내 기업간의 협력은 그동안 감산조치에 대해 다양한 수단으로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대부분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상대방 기업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너무 우려하거나 자사의 이익에만 집착해 상호불신과 기만이 생겨 제휴가 어렵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IMF체제를 극복하고 지난 3년간의 D램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출혈경쟁을 포기하고 과감한 공급규모 축소의 협력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물론 생산감축을 꺼리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반도체의 유통채널이 고정 거래처보다 현물시장으로의 비중이 높은 기업과 64MD램의 생산수율이 최근에 안정돼 이제야 생산비용 절감을 위한 대량생산을 시작하려는 기업이 그러할 것이다. 또한 어떤 기업은 우리의 감산이 오히려 대만 등 신흥기업들의 투자확대를 보장해 줘 장기적인 공급과잉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D램사업의 현 위치를 산업 발달과정의 연장선에서 볼 때 이미 성장단계를 지나 성숙단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상은 D램의 80% 이상을 소비하는 PC가 이미 새로운 수요창출보다 대체수요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통상 신제품의 도입기와 성장기에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해 시장을 선도하지만 성숙기에는 시장이 공급을 이끄는 것이 기본원리다. 또한 성숙기에는 각 기업의 기술수준도 상당히 높아져 기술격차가 크게 줄어들고, 공개된 기술과 인력이 많아 신규진입이 용이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D램 개발의 경우 이미 고집적화 개발경쟁은 무의미해졌고 현재 동작속도 개발경쟁으로 변모했다.
따라서 D램산업은 장기적으로 볼 때 시장이 다소 증가하겠지만 과거와 같이 급격한 수요신장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반면에 공급업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반도체업계는 메모리사업을 재구성해 D램부문을 적정수준으로 이끌면서 핵심역량을 플래시 메모리나 메모리 복합칩(MLD)으로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신화창조를 기약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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