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99)

맑은 날씨.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하늘이 무척이나 맑고 쾌청했다. 현미는 밖의 날씨와는 달리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리지어.

향기라고 해야 하는가. 현미는 바로 옆 혜경의 자리에서 풍기는 프리지어의 진한 향기에 고개를 돌렸다. 혜경의 죽음. 돈.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고, 그 안타까운 상황을 프리지어 향기가 현실화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현미 씨, 김 차장께서 찾아요.』

김 대리였다.

『지금 고객상담실에 계십니다.』

현미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도 프리지어의 향기에 곤혹스러워 했다. 벌거벗은 채 침대에 누워 죽어있던 혜경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후비는 독수리의 발톱이 자신의 가슴을 헤집는 듯 느껴졌다.

『현미 씨, 맨홀에 불이 나던 날 정말로 별일 없었나?』

『김 차장님, 없었어요. 전산망이 오프라인으로 된 후부터 혜경 씨가 작업한 것은 없었어요. 단말기 자체가 죽어 있었어요.』

『지점장님한테 연락이 왔어. 본점의 조사부에서 조사를 해보았는데, 본점의 전산실에서 작업한 것이 아니라고 확인되었대. 혜경의 단말기에서 입력된 것이 확실하게 나타났대. 그날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않았나?』

『전혀 없었어요. 전산망이 오프라인으로 된 상태에서는 온라인으로 되기를 기다렸고, 불길이 치솟을 때는 잠깐 불구경을 나갔어요. 그리고 은행으로 불이 번질지 모른다고 해서 급하게 들어와 서류정리를 했을 뿐이예요.』

『불구경 나갔던 시간이 언제였지?』

『불이 나고 한참 시간이 지난 때였어요. 네시가 넘은 시간이었을 거예요.』

『그래? 이 데이터를 한번 보자고.』

김 차장이 내보인 자료에는 타 은행으로 입금된 시간이 일일이 기록되어 있었다. 15:50부터 16:00 사이에 모든 작업이 이루어져 있었다. 그 이후에는 수행된 작업이 없었고, 에러 표시가 되어 있었다.

『현미 씨의 말이 맞아. 혜경이 밖으로 나갔을 때는 이미 작업은 끝난 후였어.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혜경이도 작업을 하지 않았고, 본점 전산실에서도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야.』

『차장님, 어제 돈이 인출된 시간은 확인되었습니까?』

『응. 확인되었어. 한 사람이 찾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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