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晉球 미디어밸리 대표이사
지금 실리콘밸리는 9만개의 일자리를 채울 사람이 없고, 불황이라고 하는 일본 정보통신업계도 1만개의 일자리가 비어 있다고 한다. 반면에 얼마 전에 우리는 실업자 1백50만명을 돌파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왜 이럴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가진 것이 없다. 넓은 국토와 가치있는 자원을 많이 갖고 있는 것도 아니요, 쌓아 놓은 국부가 있는 것도 아니다. 환율이라는 고단수 수법으로 우리도 인도네시아나 태국과 다름없이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면 우리의 현실을 알법하다.
결국 이때까지 우리는 솜씨 좋은 노동력으로 원자재를 들여다 가공, 수출을 거쳐 부가차익을 즐겨온 가공생산국이며, 따라서 이러한 가공생산을 주도하는 기업이 비싼 노동력과 기타 여건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면 그들은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해외 기업이 성공하는 것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영어가 잘 통하지도 않고 각종 인허가 중에는 몇 십개가 넘는 서류에 몇 달도 더 걸리는 것도 있다. 또 노동생산성은 떨어지면서 임금은 높고 노사분규는 잦다. 금융, 세제 등 산업부대시설이나 제도 역시 불편하다. 이러니 해외 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잘한다면 이상한 일이고 기적인 것이다.
세계는 지금 자유투자 지역이나 첨단 산업단지를 만드는 열기로 뜨겁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미국 번영의 터전이 된 것처럼 남부 프랑스 니스 근처에 있는 소피아 앙티폴리스가 성공했고, 영국은 밀튼 케인스, 실리톤글랜 내 선진국들의 반도체공장이나 첨단 컴퓨터 및 통신 생산시설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인도의 STPI, 싱가포르의 싱가포르원, 대만의 신추, 말레이시아의 MSC, 심지어 중국의 포동지구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정학적 위치와 잠재력 측면에서 우리와 주요하게 경쟁하게 될 중국의 포동지구에 대해서 좀 더 들여다보고자 한다. 포동지구는 상해를 가로지르는 황포항의 동쪽지구를 말하는데 그 넓이는 1.6억평의 달하고 총 9개 지구로 나누어 개발중인데 95년 말 현재 개발면적은 약 1천만평이고 입주기업은 2천93개, 유치자본은 약 1백억 달러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특히 외국 기업의 투자를 보면 외국인 투자 자유지구는 44개국, 1천3백80개사가 25억 달러를 투자했고, 금융무역지구에서는 70개사에서 38억 달러를, 가공수출 지구에서는 18개국의 기업이 35억 달러를 투자했거나 진행중이다.
포동지구는 크게 3단계로 개발추진되고 있는데 1단계는 이미 지난 95년에 완료됐고 2단계인 현재는 인프라 확장에 집중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시행될 3단계에서는 포동을 완전한 정보산업 중심의 첨단 산업단지, 금융, 무역, 기술, 문화의 중심지로 육성하도록 돼 있다.
우리는 뒤늦게나마 최근의 IMF사태의 원인을 반추하고 해외자본과 기술의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위에도 이미 언급했지만 결국 정답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높은 생산성의 인력과 환경을 제공하고 세계와 자유롭게 통할 수 있으며 편리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금융, 세제 등 산업부대시설과 제도가 편리하며 또 통신 및 교통이 편리하도록 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우리나라 전체를 이런 환경을 갖추어 주면 좋은데, 그것이 한꺼번에 하기가 어렵고 검토해야 할 것도 많고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면 일부 지역이라도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서 외국의 기술과 자본을 유치함으로써 우리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첨단기술을 습득토록 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겠다.
우리나라도 지난 93년부터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 5단체에서 이러한 견지에서 국가경쟁력강화민간위원회를 만들어서 전국을 초고속망으로 연결해 인프라면에서 국가경쟁력을 갖추는 것과 일부 지역을 선정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부가가치가 높은 정보지식산업을 유치하는 산업단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것이 바로 「미디어밸리」다.
그래도 아직 갈 길은 멀다. 이런 특수 지역을 만들기 위해서 입주기업들의 지원 부문을 검토하는 과정은 마치 험한 산맥을 타는 것 같다. 단지조성 부문에는 산단법과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세제 부문에서는 조세감면규제법의 위용이 버티고 있고, 입주기업들의 외국인 종사자의 「노 비자(No Visa)」를 검토하다 보면 안보논리가 더 이상 토론을 할 수 없게 한다. 또 정보지식산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지원을 해야 한다고 하면 WTO체제하의 한계성과 형평성을 거론하면서 말문을 막는다.
이제 세계는 글로벌시대다. 우리 땅에는 우리 기업만이, 국수주의자가 애국자라는 등식은 더 이상 진리일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문을 활짝 연 상태에서 외국 기업과 우리 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있는 현실에서 수십년 전 산업시대의 논리가 더 이상 통할 수가 없다. 우리의 나아갈 길이 「고부가가치 정보지식산업으로의 구조전환과 정보화를 통한 기존 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결론을 뒤집어 엎을 수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해외자본과 기술의 유치 그리고 그들을 위한 투자환경의 조성, 시장의 창출과 기회의 제공에 대해서 정부와 기업,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비선진국의 선두주자가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차세대 산업인 소프트웨어산업에 있어서 인도에 뒤졌고, 정보통신산업 유치에서는 중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 뒤졌다. 이제부터라도 「OECD 가입」과 「국민소득 1만불」이라는 「오만」에서 떨치고 일어나 한반도의 기업천국화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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