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

20세기 말은 아날로그 중심의 산업시대가 디지털 기반의 정보시대로 그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다. 정보시대에 적응하고 이를 인류생활을 주도하는 보편원리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는 마인드와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마인드와 가치관의 변화는 기존 산업사회가 보유했던 문화의 양태가 정보시대에 적합한 문화로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은 지난 31일 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이화여자대학교 이어령 석학교수를 초청, 「문화와 정보화」를 주제로 특별강연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교수는 정보시대는 과거 데카르트적인 합리주의나 뉴턴이 이끌어낸 분석주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감성적(Emotional)」이고 「나눔(Sharing)」을 위주로 한 상생원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특별강연회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편집자>

이어령 석학교수 "문화와 정보화" 주제

문화, 문명의 패러다임 변화가 정보통신분야에는 어떻게 적용되는가. 이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서는 우선 「정보」라는 용어부터 정리해야 한다.

현재 정보통신분야에서 왜 정보통신을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무수히 쏟아지고 있지만 무엇을 하느냐에 대한 물음은 거의 없는 상태다. 이 상황에서 정책이 결정되고 정보마인드 제고를 위한 각종 구호가 난무하고 있지만 모두 애매한 개념들뿐이다. 관련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해석방식을 갖고 있어 정확하고 통일적인 의미부여만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정보화의 「정보(Information)」는 과거 산업시대의 「정보(Intelligence)」와는 개념이 다르다. 국내에서 권위주의로 대변되는 60년대 산업사회의 정보는 비밀스러운 것이며 독점적이고 교류를 불허하는 것을 가리켰다. 그러나 오늘날 정보통신사회의 정보는 과거 산업정보, 군사정보와는 달리 개방적이고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한발 더 나아가 현대 정보시대의 정보는 이러한 것이 디지털화하는 것을 뜻한다.

개방, 디지털화 가속 현대 정보는 정보통신의 새로운 기술혁신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산업사회의 정보와 정보사회의 정보는 결국 정반대되는 의미다. 이것은 정보화를 바라보는 의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이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올바로 직시하는 일이다. 정보의 가치와 의미를 모른 채 이분법적인 산업주의체계로 정보화를 바라보는 것은 실패로 연결된다.

최근 국내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을 다양한 형태의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나는 괜찮다(I`m fine)」와 「나는 싸우고 있다(I`m fighting)」라는 낙관론적인 문장과 「나는 낙제다(I`m F)」 「나는 해고됐다(I`m fired)」 등 비관론적인 문장이 그것이다. 이같은 이분법적인 사고는 산업시대의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 동남아지역의 해석법은 다르다. 그들은 IMF를 「나는 여우다(I`m fox)」로 해석한다. 상황에 따라 변신하고 주변여건을 적절히 이용하는 여우처럼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나가자는 뜻이다.

이것은 「제3의 시선」이다. 낙관론과는 거리가 멀다. 비관론과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창조적 마인드로부터 나온다. 논리적인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하고 획기적인 발상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같은 시각은 정보화를 해석하고 정보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견지해야 하는 자세다. 정보는 법칙이나 원칙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는 꽉 짜여지고 1백% 예측가능한 사회에서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반대로 혼돈상태에서도 존재하기 힘들다. 산업주의적이고 양자 택일적인 구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가 통용되는 사회에서 정보는 가치를 갖는다. 무질서한 환경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고자 할 때 정보는 의미가 있다.

정보사회는 정보가 지배하는 사회를 일컫는다. 산업시대의 정보는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녔다. 그러나 개방성이 강조되는 정보시대에서의 정보는 교환하고 공유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정보 자체로서는 중요성을 가지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사회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데에는 마인드와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열린 사회로 특징지어지는 정보사회에서는 서로 마음을 나누고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요구된다. 폐쇄적이고 비밀이 우선시됐던 산업사회와는 다르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21세기는 새로운 문명환경이다. 정보사회로 대변되는 이 시대에는 감성적(Emotional)이고 통신이 가능한(Communicative)한 환경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정보의 「정」은 따뜻하고 감정이 흐르는 「情」을 일컫는다. 따라서 정보는 감성적인 것에 기초하며 서로를 나누는 것에 다름 아니다.

창의적 조직만이 생존 정보는 또 물이나 광석이 아니다. 그동안 산업사회에 살았던 우리는 정보와 관련해서 「정보를 흘렸다」 「정보를 막아라」 「정보를 캐와라」 등의 말을 애용해왔다. 이같은 정보의 액체론, 정보의 고체론은 정보를 정확하게 정의한 것이 되지 못한다. 이같은 정의는 정보를 산업사회의 관점에서 해석함에 따라 대두된 잘못된 견해다.

정보는 공기다. 서로 나눔으로써 가치를 갖는다. 서구 산업사회는 지금까지 이처럼 폐쇄적이고 직선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개인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을 생산을 위한 도구로만 인정했던 것이다.

현대 정보사회는 이러한 생각이 바뀌기를 요구한다. 관료조직이 아닌 창의적이고 사고하는 조직이 정보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동양적인 사고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동양적인 사고방식은 나눔에 의지한다. 이 나눔은 단순한 구분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한 나눔이다. 이것의 기초는 믿음이다. 정보가 지배하는 정보사회는 믿음을 매개로 할 때 발전 가능하다.

한국의 문화는 이런 의미에서 보면 정보사회에 가장 적합하다. 한국의 독특한 문화는 「그냥∼」으로 대변된다. 우리 국민들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했을 경우에도 「그냥∼! 했다」는 식으로 답변한다. 상대방 역시 그같은 의미를 곧잘 알아듣는다.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서로의 의사소통이 스스럼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의미가 잘못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충분하게 의미를 찾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한국이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어떤 질서를 찾아가는 정보시대의 특징에 부합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의 문화는 정보자원이 충분하다. 이를 캐는 작업은 한국의 문화와 정보화를 상호작용시켜 나눔이 있는 미래사회를 만드는 과정이다.

정보사회는 정과 믿음으로 다져진 패러다임이다. 나아가 세계로 나아가는 도구다. 이같은 과정은 자신의 것만을 중요시 여기는 맹목적인 애국주의를 기반으로 해서는 안된다. 국수주의(쇼비니즘)를 기반으로 한 천박한 애국주의여서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유교시대의 거성인 공자는 『아는 것은 좋아함에 미치지 못하고, 좋아함은 즐기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설파했다.

이를 현대 정보사회에 적용시켜 해석하면 정보사회는 각 개인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사회여야 함을 뜻한다. 최고의 정보사회는 즐거움으로 귀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귀결점은 개인의 즐거움 그러나 정보사회는 이를 만드는 사람들이 떠들어서는 올바르게 구축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정보통신 관련업계의 종사자들만이 정보화를 외치고 정보사회를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것은 호미나 괭이를 만드는 대장장이가 농사를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농사는 농사꾼이 얘기해야 한다. 정보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정보와 정보화, 정보사회에 대해서는 일반인이 관심을 갖고 꾸준하게 필요성을 주문함으로써 올바르게 형성되는 것이다.

인터넷, 컴퓨터 등 각종 정보통신 수단을 통해 정보시대는 발전한다. 이같은 이기를 통해 세계 각국과 연결돼 글로벌한 정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이것은 교육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재 국내의 컴퓨터 교육은 거의 불모지 상태다. 최근 새 정부가 컴퓨터교과를 필수과목으로 채택한 것은 대단히 긍정적인 일이다. 올바른 조기교육을 통해 정보사회가 필요한 개인을 길러내고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정보사회를 형성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과제다.

<정리=이일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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