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7주년 특집] 전자신문의 어제와 오늘

4월 1일은 전자신문이 일간으로 전환한 지 7주년이 되는 날이다. 82년 창간 이래 16년간 쌓은 전자, 정보통신 전문지의 전통 위에 「성공한 전문일간지」로서 일곱 줄의 나이테를 새겨 넣게 된 것이다.

91년 4월 1일 모든 것을 일신한 일간지 창간 1호(지령 제797호)를 발간했을 때 전세계 언론계와 독자들은 놀라움과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일본에는 이미 전자산업 전문지 「덴빠신문(電波新聞)」이 있었지만 산업규모나 두텁지 못한 신문 독자층을 감안할 때 한국에서 전자신문과 같은 일간지가 발행된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는 불가사의이기도 했다. 특히 전통적인 매체의 틀에 익숙해져 있던 국내 기존 언론계에서 전자신문 창간을 보는 시각은 차라리 냉소에 가까울 정도였다. 이단자라는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냉혹한 신문경영 현실에서 살아 남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자신문은 이같은 우려와 걱정을 불식시키고 양적 질적으로 고속성장을 거듭하는 신화를 만들어 내면서 한국언론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96년 9월 20일 한국신문협회 정식회원사로 가입한 것이 그것이다. 전문 일간지로서는 최초였으며 가입 회원사로는 49번째였다. 이로써 전자신문은 명실상부한 일간 전문매체의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 여기에는 전자신문을 아끼는 독자들의 격려와 질책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정보사회를 대비하는 21세기형 매체로 출발(재창간)한 전자신문은 편집방향 역시 정보사회 구성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전달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일간화 이후 해를 거듭하면서 전자신문의 구독자 층이 기업독자 중심에서 개인 및 가정으로 크게 확대된 것도 바로 이러한 방향이 독자의 요구와 맞았기 때문이다.

전자신문이 일간 7년 만에 언론계 정상에 설 수 있었던 요소로 언론학자들은 첫째 정보시대의 독자요구가 무엇인가를 간파한 신문 재창간 기획, 둘째 기존 전자시보 시절의 특수 산업전문지라는 협소한 이미지에서의 탈피, 셋째 정보시대를 읽고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심층분석기사의 적절한 배치 등을 꼽고 있다.

우선 전자신문이 일간으로 전환한 90년대 초반은 세계적으로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전이해 가던 시기였고 두 유형의 사회가 중첩되는 상황에서 독자들은 정보의 공황과 방향감각의 상실이라는 아노미를 겪던 때였다. 91년 일간화 이후 개인기업과 가정의 독자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93년 2월부터 매주 금요일에 발행하기 시작한 「정보생활」섹션(현재는 토요일 발행)은 엄청난 독자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기존 신문사들에게 「정보과학」 또는 「정보통신」이라는 명칭의 지면 할애 경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93년은 PC와 멀티미디어기기 등 개인용 및 가정용 정보기기의 대량보급이 이뤄지기 직전의 시기였다. 전자신문은 「정보사회의 대변지」라는 일간화 정신에 입각하여 개인이 정보기기를 활용해서 원하는 정보를 스스로 획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주 16면 체제의 「정보생활」을 발간함으로써 안팎으로 정보산업의 확대발전과 함께 본격적인 정보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협소한 언론사 이미지를 탈피했다는 평가는 일단 한국적인 신문사 경영현실에서 소규모 언론사의 뉴스들이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정보의 불확실성」이나 「객관성의 결여」 같은 불완전한 이미지를 제거하는데 크게 기여했음을 뜻한다. 전자신문이 양적인 확대발전과 내적 견실성의 강화를 통해 정보가 물 흐르듯이 흐르는 정보시대에 대한 대응체제를 갖췄다는 점은 독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층기사의 적절한 배치 평가는 전자신문이 제공하는 정보의 질과 효율성을 뜻한다. 제공된 정보의 질과 효율성은 나아가서 개인, 기업, 정부 등 여러 계층의 독자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그런 점에서 재단법인 한국정보문화센터가 지난 96년 개인의 정보화, 기업의 네트워크화, 국제화 등을 선두에서 이끈 공로를 인정하여 전자신문에 정보문화대상을 수여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자신문의 정보는 정부의 정책수립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는데 예컨대 96년 말 정부가 소프트웨어를 21세기 국가전략산업으로 선정, 적극 지원키로 한 것은 같은 해 전자신문이 연중시리즈로 매주 전면을 할애하여 내보냈던 기획물 「소프트웨어산업을 살리자」가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자신문은 이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세계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하는데 힘을 쏟아 왔다. 국내 최대 컴퓨터 SW전시회인 「SEK」을 주최하고 「신SW상품대상」 「대한민국게임대상」제도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전자신문이 미래지향성을 내건 만큼 7년간의 도전은 예단과 편견, 구각과 구습을 깨뜨리는 혁신의 새 바람으로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출발이 늦은 만큼 걸음이 빨랐고 지켜야 할 권위와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웠기에 창조가 가능했다. 산업계의 동향과 미래 변화상을 담은 기사를 과감하게 1면에 싣는 이른바 「종합편집」의 개념을 일간신문으로는 처음 도입했다. 전자신문은 지면의 참신성과 기사의 전문성이 장점이다. 지면을 처음부터 정보통신, 부품, 가전, 유통, 국제면 등으로 섹션화했고 부서도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지면별 독립부서로 설치했다. 정보서비스의 전문화를 지향하는 것은 바로 기사의 전문화, 기자의 전문화로 연결된다. 이같은 혁신은 독자의 정보욕구와 수요에 부응하는 「독자 제일주의」의 표현이었고 이는 지금까지 전자신문 제작의 일관된 기본이념이다.

또 개혁과 창조도 있었다. 이는 신문제작의 기술부문에서 두드러졌다. 기사작성에서부터 지면제작에 이르기까지 모두 컴퓨터로 작업하는 최첨단 컴퓨터제작시스템(CTS)을 도입, 일간신문사로서 처음부터 납활자가 없이 신문을 만들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94년부터 PC통신을 통한 뉴스 서비스를, 96년 4월부터는 인터넷 전자신문도 서비스하기 시작, 정보화,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언론사로 부상했다. 인터넷 전자신문 서비스는 모두 자체기술로 이뤄낸 개가였다.

기술혁신은 전자신문 개혁의 한 부분일 뿐이다. 더욱더 크고 중요한 신문의 개념을 바꾸는 혁신이 끊임없이 추진됐다. 그중에도 96년 4월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간 가로쓰기 편집은 그 결정판이다. 자칫 딱딱하기 쉬운 전문기사를 좀더 읽기 쉽고 보기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명제에 한발 다가선 것이다. 우리나라 신문의 「틀」로 인식돼온 세로쓰기 체제를 탈피하고 컴퓨터세대, 한글세대에 맞게 「21세기형 신문」으로 탄생한 것이다.

전자신문은 이제 전자와 관계된 일을 하거나 검퓨터를 활용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닌 대중을 위한 전문지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풍요로운 정보사회 건설의 한 축이 되는 필수 교양지로서 몫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김성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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