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CPU] 64비트 CPU시장 전망

「64비트 CPU시장이 통일될 것인가.」

올해 64비트 CPU시장은 폭풍전야의 적막이 흐르는 양상이다. 32비트 CPU시장의 절대강자인 인텔이 출시하는 최초의 64비트 CPU인 머세드의 출시가 1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64비트 CPU시장은 IBM의 「RS64」, 디지털의 「알파칩」, HP의 「PA-RISC」, 선의 「울트라 스파크」, 그리고 실리콘그래픽스의 「밉스칩」 등이 독자OS를 고수하면서 분점하는 춘추전국시대였다. 그러나 지난해 중반부터 머세드의 베일이 하나둘씩 벗겨지면서 기존 64비트 CPU 업체들은 앞으로 진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됐고 그 결과 독자 칩 고수 방침에서 어떤 식으로든 인텔과 협력하는 일대 방향전환을 꾀하고 있다.

<편집자>

HP는 독자칩 솔루션을 가져야 한다는 기존관념을 깨고 아예 지난 94년부터 인텔의 머세드 개발작업에 참여해 관련업계를 놀라게 했다. HP는 머세드의 특허권과 제조권을 전적으로 인텔에 이양, 불평등 계약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공동 개발참여로 타업체보다 먼저 머세드 기반의 서버나 워크스테이션 시스템 사업에 진출할 수 있어 결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또 머세드에 x86코드와 PA-RISC코드가 함께 심어져 있어 기존 HP의 애플리케이션이 인터프리터 없이 실행된다는 점도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알파칩 제조업체인 디지털은 지난해 10월 자사의 FAB시설을 인텔에 7억달러를 받고 전격 매각해 충격을 던졌다. 디지털은 인텔과의 특허소송 해결조건으로 이러한 빅딜을 성사시켰으며 알파칩 관련 연구인력은 그대로 유지, 개발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었으나 최근 디지털이 컴팩에 인수되면서 이 부분도 불투명해졌다. 컴팩이 예전부터 인텔의 머세드칩을 자사의 차세대 서버나 하이엔드 워크스테이션에 채용하겠다고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64비트 독자 CPU 고수를 천명했던 선사도 지난해말 머세드에 자사 유닉스 기반의 OS인 솔라리스를 이식하고 또한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스템, 그리고 소프트웨어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무상 특허 상호이용(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인텔과 체결했다. 디지털도 선사에 이어 시퀀트와 공동으로 머세드 기반 64비트 0S인 디지털 유닉스를 개발하기로 올초에 발표했다. 이에 반해 아직 IBM과 실리콘그래픽스는 머세드에 관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업체들이 독자 솔루션을 포기하고 방향전환을 서두르는 것은 인텔의 머세드칩이 예상보다 강력한 성능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세드에는 인텔의 복합 명령어 처리방식(CISC)과 HP의 명령축약형컴퓨팅(RISC) 기술이 결합된 에픽(EPIC) 이라는 기술이 들어 있다. EPIC의 주요 기술은 VLIW(Very Long Instruction Word)와 슈퍼패럴랠로 대변될 수 있다.

슈퍼패럴랠은 기존 RISC칩이 하나의 사이클에 4개의 명령만을 실행하는 슈퍼스칼라인데 비해 이를 8개나 16개 이상까지 명령을 실행할 수 있도록 컴파일러 부분을 개선한 것이다. 이 방식은 CPU내부의 복잡한 컨트롤러 부분을 소프트웨어로 대체, 칩 효율을 높임으로써 클록스피드를 높여 데이터 처리속도를 개선할 수 있다. 여기에 VLIW기술이 슈퍼패럴랠 기술을 지원, 병렬로 명령어가 처리되도록 인스트럭션 구조를 제공하고 여러 CPU를 동원, 일련의 명령어를 하나의 문장으로 인식함으로써 정지 없이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성능적인 요소와 함께 수조원에서 수십조에 달하는 개발비 부담도 기존 CPU업체들이 인텔과의 협력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현재 CPU 하나를 개발해서 생산하는 데 최소 5조원 이상 드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비용도 해가 거듭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경제성 측면에서 9천만개의 칩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인텔과 경쟁이 안된다는 얘기다.

이같은 업계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기존 CPU 업체들은 외양적으로는 독자칩 솔루션을 계속 고수, 발전시켜 간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 머세드 시제품이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일부에서 나오고 있고 독자 솔루션에 대한 매력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 기술력으로도 인텔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내부 판단도 주효하고 있다.

그 선봉에는 IBM과 디지털이 나서고 있다. IBM과 디지털은 클록스피드 1㎓의 장벽을 돌파한 파워PC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알파 프로세서를 개발, 오는 2000년 출시할 예정이라고 잇따라 발표했다. IBM은 지난 2월 최신 「구리 칩 제조기술」을 적용한 64비트 1㎓ 파워PC프로세서를 개발, 오는 2000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IBM이 개발한 1㎓ 파워PC 프로세서는 칩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한편 성능을 강화한 구리 칩 제조기술을 도입한 것이며 동시에 기존 0.25 「CMOS 6X」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이는 인텔의 클록스피드 3백㎒인 펜티엄 프로세서보다 3배 가량 빠른 것이며 최근 발표한 디지털의 5백㎒ 알파칩보다도 2배 이상 빠른 것으로 컴퓨터 시스템, 애플리케이션과 솔루션, 시스템 제조기술, 물리학, 수치연산, 과학기술, 멀티미디어 영상 등 관련 분야 발전에 혁신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IBM은 지난해 기존 알루미늄을 사용했던 반도체에 구리를 적용, 전자 이동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디지털도 오는 2000년까지 클록 스피드가 1㎓를 뛰어넘는 64비트 알파프로세서를 선보일 예정이다. 또 지난해 말 기존 21164와 비교해 2배 이상 성능이 뛰어난 21264를 발표하고 올 상반기부터 본격 생산에 착수, CPU성능에 있어서는 알파가 최고라는 기존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백㎒의 알파칩을 발표, 알파칩이 클록스피드로는 최고 성능임을 증명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스는 지난해 제3세대 고성능 울트라스파크 제품군인 64비트 울트라스파크Ⅲ 마이크로프로세서 제품군을 발표하고 올해 중반부터 샘플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제품은 6백㎒ 동작주파수를 구현, 64비트 CPU 가운데 가장 처리속도가 빠른 DEC의 알파칩보다도 처리속도를 향상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인텔의 MMX기술과 흡사한 비주얼명령세트(VIS)를 사용하고 1천개 이상의 멀티프로세서 시스템을 지원, 뛰어난 확장성을 제공한다.

실리콘그래픽스는 자사의 64비트 CPU인 R10000을 올 상반기에 명령어 수를 늘리고 분기 캐시를 새롭게 추가한 R12000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칩은 클록주파수를 3백㎒까지 지원하며 분기 예측 테이블 수를 대폭 증가, 예측 기능을 크게 향상시킨 제품으로 알려졌다. 실리콘그래픽스는 이 칩의 클록주파수를 내년 초까지 5백㎒로 향상시키고 내년에는 5GB/s의 메모리 대역폭을 보장하는 H1 CPU도 함께 양산할 예정이다.

인텔과 머세드를 함께 개발중인 HP도 올해말 현재의 CPU인 PA-RISC 8200을 개선한 PA-RISC8500을 선보인다. 2백20의 클록속도를 지닌 이 제품은 종전보다 캐시용량을 5배 향상, 동영상 처리나 자동설계 능력을 높였고 정수연산과 부동소수점 연산능력을 각각 25~30% 향상시켰다. 그리고 PA-RISC 8500의 다음 버전인 8700은 머세드의 반응을 지켜보고 출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CPU업체들이 이처럼 독자 솔루션 개발과 인텔과의 협력을 병행하는 것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인텔의 머세드에 자사의 OS를 포팅하기로 결정한 시점이 최근이어서 머세드가 나올 시점에 자사 OS의 완벽한 지원이 어렵다는 측면이 지적된다. HP의 한 관계자는 『머세드는 하드웨어 기능의 일부를 OS에 들어있는 컴파일러가 처리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컴파일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라며 『컴파일러가 완벽하지 않으면 칩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머세드용 OS를 완벽하게 개발하기 전까지는 독자 솔루션을 채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또 머세드가 출시되면 64비트 CPU시장 경쟁대열에서 몇개 업체가 탈락할 것이고 이때 살아남은 업체는 이를 계기로 시장점유율 확대를 꾀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는 점도 독자 솔루션을 고수하도록 하는 요인이다. 물론 머세드가 기대 이하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머세드 출시를 1년 앞둔 올해 64비트 CPU업체들은 「머세드를 동반자로 삼을것인지 아니면 독자솔루션을 고수할 것인가」를 두고 일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유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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