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국제 의료기기전] 순국산 메스로 "IMF 적자병" 대수술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가 장기화될 경우 얼마나 많은 병원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리스로 들여온 외국산 고가 전자의료기기의 환차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각종 의료용구 및 의약품 부족이 심화되는 반면 환자 수는 급감, 법정관리나 화의를 신청하는 의료기관이 급증하고 있다.

<편집자>

국내시장 현황

실제로 지난 1월 초 경북 영천의 성베드로병원이 화의를 신청한 데 이어 최근 서울 전농동 소재 청량리성모병원이 화의를 신청하는 등 의료기관의 연쇄부도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환율이 달러당 1천5백원일 경우 서울대병원이 올해 약 3백50억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1백90억원, 서울삼성병원은 리스료 96억원과 진료재료비 25억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또 한양대병원은 리스료 30억원, 이화여대 목동병원은 리스료 10억원과 의료자재비 60억원을 더 지출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 수는 많게는 50% 정도 줄었다. 한국보건의료관리연구원이 지난 1월 종합병원과 병원 등 의료기관 6백92곳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년보다 입원환자는 8.9%, 외래환자는 14.7%가 줄었다.

종합병원의 경우 1백병상을 기준으로 할 때 외래환자수는 4천4백46명에서 3천6백76명으로 17.3% 감소했다. 경희대의료원에서는 최근 들어 하루평균 외래환자 수가 지난해 말의 5천여명에서 4천여명으로 20% 가량 줄었으며 종전에는 3∼10일씩 기다려야 입원할 수 있었으나 요즘은 곧바로 입원할 수 있다. 이대목동병원의 외래환자 수도 지난해 말 하루 1천9백여명에서 1천7백여명선으로 10.5% 줄었다. 특히 규모가 작은 병원이나 의원들이 겪는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크다. 환자들이 값싼 보건소를 찾거나 곧바로 대형병원으로 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대다수 병원이 휴일 정상근무, 야간진료, 친절교육 강화, 신규 의료기기 도입 억제 및 국산 사용 확대, 중고 의료기기 수리사용, 필요없는 제품 교환사용 등 IMF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경영난을 해소하려고 애쓰고 있다. 고려대의료원은 「경영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해 신규 의료장비의 도입과 신규 교직원 채용을 억제하는 등의 자구책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기로 했으며 고려대의대 이비인후과교실의 경우 「2배 뛰고, 2배 벌고, 2배 베풀자」 운동에 착수해 의료소모품 재활용, 국산 의료장비 개발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현재 진행중인 의료영상 저장전송시스템(PACS)장비 등 전산망 구축 및 개발사업과 승압공사, 발전기 구입 등 9개 시설보완사업의 집행을 유보했으며, 교수의 진료수당 50%와 일반직 직원의 임금 5∼10%를 삭감키로 했다.

한림대의료원도 지난 1월 26일 「경영위기극복 추진기획단」을 구성하고 각종 경비절감에 팔을 걷어 붙였으며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은 전화요금을 절감키 위해 114 문의전화가 연결되지 못하도록 전화기를 조작해놓기까지 했다. 또 한림대의료원은 재활용창고를 새로 설치했으며, 서울대병원은 종이컵 대신 개인컵 갖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아예 병원규모를 축소하는 곳도 있다. 몇몇 대학병원에선 심각한 경영적자로 인해 병동 일부를 축소했으며, 중소규모 병원에선 진료과를 축소한 뒤 의사를 내보내거나 아예 병원 문을 닫고 원장이 단독으로 개원하는 경우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병원계에선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의료용 재료대 가격의 급상승과 수급 차질까지 겹쳐 의료계 일각에서는 진료공황을 의미하는 모라토리엄이 현실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같은 의료계의 이른바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운동」은 경영난의 근본원인 치유와는 거리가 멀어 곧 한계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의료계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의 경비절감에도 나서고 있다. 환차손 우려가 없고 가격이 싸며 품질도 쓸 만하고 애프터서비스도 원활한 국산 의료기기를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경북대병원은 지난달 하루만에 수술을 마치고 입원없이 곧바로 퇴원할 수 있는 「1일 수술실」을 개설하면서 연면적 1백46평의 수술실 3실과 회복실 2실 등에 들어가는 수술실 장비를 대부분 국산으로 구입했다.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도 의대내 동물실험실을 새 건물로 이전하면서 기존 외산 장비를 국산으로 일괄 대체할 것을 검토중이며 고가 전자의료기기도 국산으로 대체할 것을 적극 검토중이다. 이밖에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이 국산 C-Arm을 도입한 데 이어 각종 의료기기의 국산 구입을 확대하기로 했으며 경북 왜관 소재 혜원성모병원과 김천 소재 제일병원 등 상당수 신설 준종합병원급 의료기관도 국산 의료기기를 대거 구입했다. 예전에는 이 정도 규모의 의료기관에 국산 의료기기를 납품한다는 것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뉴스거리」로 통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은 메디슨과 공동으로 3.0 테슬라급 자기공명 영상진단장치(MRI)를 국내 최초로 개발, 조만간 진료에 활용할 예정이고 삼성서울병원도 식도용 스텐트를 개발, 수출까지 하고 있으며 가톨릭대 여의도 성모병원 외과도 담낭결석 제거나 위양성 종양 절제가 가능한 수술장비를 개발, 외산의 3분의 1 수준으로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등 아예 필요한 의료기기를 병원 자체 의료진이나 업체와 연계해 개발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또한 삼성서울병원, 현대중앙병원, 한강성심병원이 병원 구내에서 국산 의료기기 사용 확대를 위한 전시회를 별도로 가진 데 이어 마산삼성병원, 조선대병원 등 상당수 의료기관이 국산 의료기기 품평회를 겸한 전시회를 조만간 가질 예정이다.

이들 의료기관의 공통점은 전 의료기기의 90% 이상을 외산에 의존해 왔던 곳으로 환율상승으로 인한 환차손이 현재 병원 경영난의 주범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의료계가 타 업계보다도 더 혹독한 IMF 한파를 겪는 것은 불합리한 의료보험 수가에다 환율상승으로 인한 진료재료, 소모품, 약품 등의 원가상승과 환율 및 금리 상승에 의한 차입자금 부담 가중, 리스사용에 따른 환차손 급증, 전반적인 경기악화로 인한 환자감소 및 제반비용 상승까지 겹친 구조적 요인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신규투자와 병원확장을 위해 각종 차관을 이용했던 병원들과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비보험 상품 개발을 위해 대당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고가 의료기기를 무분별하게 도입해 온 병원들은 한순간에 빚더미 위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국가경제적으로 보면 국산 초음파 영상진단기, X선 촬영장치, 전자혈압계, 마취기, 소독기, 인큐베이터 등 불과 몇만원짜리에서부터 많아야 몇천만원짜리 제품을 부지기수로 팔아도 이같은 외산 양전자방출 단층촬영장치(PET)나 MRI 같은 장비 몇 대 사면 남는 게 하나 없다는 얘기다.

일이 이쯤되면 의료기기업계도 결코 경영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의료기기의 최종 수요처는 의료기관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입 의료기기 업체들은 환율상승으로 인한 가격경쟁력 저하로 일부 독점품목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영업을 포기한 상태다.

이에 비해 제조업체들은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해외시장 진출 확대를 통해 내수시장에서의 부진을 만회하는 한편 외산이 독차지해 온 대학 및 종합병원급 의료기관 진입도 활발하게 전개, 시장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린다는 방침이어서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올들어 메디슨, 중외메디칼, 동아엑스선기계, 한신메디칼, 자원메디칼, 로얄메디칼, 대화기기 등 의료기기 제조업체들은 새로운 신제품 개발 및 성능 개선, 애프터서비스 강화, 금융상품 개발 등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마련하고 본격 내수시장 쟁탈전에 돌입했다.

전시회

이같은 시점에 열리는 국내 유일의 국제 의료기기전시회(KIMES 98)는 병원에게는 「IMF 여파를 탈출하는 유일한 비상구」로 불리는 국산 의료기기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는 정보의 보고로, 제조업체들에는 첨단제품 소개를 통한 회사 인지도 제고와 상담 및 계약이 이뤄지는 마케팅 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9일부터 4일간 한국종합전시장(KOEX) 3층 대서양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국내업체 98개사(대리점 54개사 제외)와 도시바와 히타치 등 총 22개국 3백57개사가 참여, 초음파 영상진단기, 전산화 단층촬영장치(CT), MRI, PACS 및 의료정보시스템, 전자혈압계 등 4백여종 6천5백여점의 각종 첨단 의료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역대 전시회 중 국내업체의 참가비중이 가장 높아 외국업체들의 들러리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과거의 자괴감을 상당부분 희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주관하는 한국의료용구공업협동조합 장건오 상무는 『IMF 한파는 제조업체 입장에서 볼 때 내수는 물론 수출도 크게 늘릴 수 있고 수입품 위주의 비뚤어진 유통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호기가 될 수도 있다』며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가격경쟁력뿐만 아니라 품질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도록 R&D를 강화하고 핵심부품 국산화율을 높이는 한편 수출총력체제로 돌입, 국산 의료기기의 세계 시장점유율 및 인지도를 제고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회 기간 중 서울특별시 방사선사 학술대회 및 태원정보시스템이 주관하는 「PACS를 위한 ATM망 설계 및 구축사례 발표」를 포함한 10회의 학술 및 기술세미나가 동시 개최, 최신 의료기기 및 의료 관련 정보를 한 자리에서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효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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