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수출로 전자산업 "弗길" 끈다 (11);가전-AV부문

지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전자제품 수출의 대명사 역할을 했던 가전제품은 반도체 및 통신기기 수출이 급속히 늘어나는 바람에 전체 비중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수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IMF지원체제에 돌입한 이후 국내 가전산업계의 수출의지는 70년대의 수출 드라이브 시대를 방불할 만큼 비장한 각오다.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국내 주요가전업체는 올해 지상과제를 한결같이 수출 확대로 설정하고 목표달성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가전3사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수출비중을 70%이상으로 높이고 사장단이 직접 해외시장에 나서 수출을 독려하는 등 수출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해 연말이후 치솟은 환율로 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살아나 그동안 중국, 동남아산의 가격공세와 일본제품의 텃세에 밀려 해외시장에서 상실했던 실지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긴데다 2년째 역신장을 하고 있는 내수시장에서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수출밖에 없다는 국내 업체들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수년간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백색가전제품 수출이 괄목할 만한 신장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컬러TV와 VCR, 오디오를 비롯한 AV제품은 상대적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독립국가연합(CIS), 중남미, 동남아 등 신시장에서 각종 수출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경기가 위축되면서 그동안 급신장세를 보였던 이 지역에 대한 수출에 제동이 걸렸고 경쟁력이 강화된 중국 및 동남아산의 추격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또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플레이어, 디지털 위성방송수신기 등 새로운 유망품목으로 떠 오른 정보가전 제품도 선발주자로 나선 도시바, 마쓰시타, 소니 등 일본업체들의 등살에 밀려 제대로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전업체들은 올해를 계기로 지난해의 부진을 말끔히 씻고 AV수출을 다시한번 정상궤도에 올려놓겠다는 당찬 각오를 보이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수출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한 국가에서 최소한 한개 품목을 시장점유율 1위로 올려놓겠다는 「세계 1등화」전략을 발표하면서 러시아의 컬러TV시장에서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대우전자는 올해 컬러TV 생산능력을 연간 1천2백25만대로 높여 일본의 소니를 제치고 세계 제1위의 TV메이커로 부상하겠다는 야심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대우전자는 이를 위해 기존 멕시코 공장은 연산 3백만대 규모로 증설하고 인도와 모로코에 각각 연산 20만대와 1백만대 규모의 컬러TV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LG전자는 기존의 신시장으로 설정한 지역은 물론 지난해 부터 본격적인 공략에 나선 모로코, 알제리 등 아프리카지역과 인도, 파키스탄 등 서남아시아 등지에서의 신시장을 개척하는 등 TV수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품목별로도 25인치 이상 대형TV의 비중을 높여 수출의 부가가치를 높임과 동시에 그동안 주력품목에서 소외된 20인치 이하 중소형 제품의 수출에도 적극나서는 전방위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 4분기부터 디지털 지상파 방송을 개시하는 미국시장을 겨냥해 디지털 TV를 수출에도 착수해 디지털 시장 선점에 나선다는 포부다.

VCR의 경우 지난 2년간 수출실적이 연평균 40%가량 줄어드는 부진을 면치 못했으나 올해를 기점으로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상승세로 반전시키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가전3사는 여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호경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시장과 유럽시장 등 선진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해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하고 동시에 내수침체를 타개해나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인도네시아로 이전하려고 했던 VCR 생산라인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으며 LG전자와 대우전자도 각각 평택과 구미의 내수용 생산라인 일부를 수출용으로 전환하면서 수출에 피치를 올리고 있다.

DVD플레이어, 디지털 위성방송수신기, 인터넷TV를 비롯한 정보가전제품의 수출도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만 수출에 나섰던 DVD플레이어의 경우 LG전자가 새롭게 등장한 「DIVX」방식의 DVD플레이어를 2분기중 미국의 제니스에 공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이 시장에 가세할 예정이어서 국내업체의 입지확보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 개척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디지털 위성방송수신기 사업에도 서광이 비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유럽에서 디지털위성방송수신기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아날로그 시장을 장악했던 국내업체의 저력이 살아나면서 본격적인 수출주문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건인은 아일랜드에 현지합작법인을 신설하고 유럽시장공략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으며 아남전자는 유럽최대의 디지털위성방송 서비스업체인 카널플뤼스에 공급하는 물량을 포함해 연말까지 총 1천만달러이상의 수출실적을 올릴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TV로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인터넷 세트톱 박스도 해외시장에서 서서히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인터넷 세트톱 박스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우전자는 미국, 유럽, 중남미 등 전세계 40여개국에 이 제품을 선보였으며 올 연말까지는 총 40만대를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테넷 세트톱박스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운영하고 있는 웹TV에 세트톱 박스를 공급하고 있는 소니, 필립스외에도 톰슨RCA, 제니스 등 세계적인 업체들이 이 시장에 속속 가세하고 있어 제품 및 서비스 차별화가 해외시장 진출에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디오 업계 역시 올해 내수시장의 부진을 만회하는 길은 수출밖에 없다는 판단으로 해외영업에 온힘을 쏟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중국에 오디오 생산기지를 확보한 업체들보다는 해태전자, 태광산업, 아남전자, 롯데전자 등 국내에 공장을 갖고 있는 전문업체들을 중심으로 해외영업이 활발하다.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해야 환차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디오 전문업체들은 원화의 화폐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국산 제품을 구매하려는 해외 바이어들의 협상이 급증함에 따라 수출금액을 지난해보다 평균 30% 이상 늘려잡고 있다. 지난해 2천억원 가량을 수출한 해태전자는 회사가 비록 부도상태이지만 현 상태에서도 올해 환차익 등을 감안해 2천8백40억원 어치의 오디오, 통신기기를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5백억원 어치를 수출한 태광산업도 올해 5백50억원으로 수출목표를 상향조정했으며 아남전자, 롯데전자 등도 수출목표를 늘려잡고 해외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오디오 업체들은 특히 수출에 드는 간접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자체 상표를 부착해 판매하는 방식보다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수출을 강화하고 있다. 자체 상표로 수출하려면 세계 각국에 유통망 구축과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하지만 OEM으로 제품을 공급할 경우 해외영업부의 3∼4명으로도 수천달러어치의 수출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디오 업체들이 현재 거래하고 있는 해외 업체들은 RCA, 하만카든 등 미국 대형 가전업체뿐 아니라 티악, 데논, 켄우드 등 일본 오디오 업체들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으며 특히 티악이나 데논으로 수출되는 미니컴포넌트는 해외에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어 이를 공급하는 아남전자와 해태전자의 생산라인이 부족할 정도다.

그러나 환율인상에 힙입은 국내가전 업계의 수출 드라이브 전략이 탄탄대로로 예상되는 것만은 아니다. AV제품 생산에 필요한 각종 원자재의 50%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와 경쟁상대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동남아, 중동지역이 정치, 경제적인 불안에 휩싸여 있어 올해 이 지역에서의 수출증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국산제품 만큼이나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동남아산 제품들이 제3국시장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산제품 역시 국내업체의 수출 드라이브에 위협적인 존재다. 중국 현지제품은 그동안 내수호황에 힘입어 가격뿐만 아니라 품질측면에서도 경쟁력이 급속히 높아졌으며 중국과 동남아에서 생산되는 일본 브랜드제품 역시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는 TV나 VCR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포화상태에 들어서면서 주로 선진국 시장을 공략했던 일본업체들 역시 중저가 시장에도 포문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일본의 후나이사와 오리온사의 VCR이 중저가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또 수출구조가 OEM위주로 형성돼 있다는 점 역시 장기적으로 국내 업계에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외국 업체들은 당장은 국산품의 가격이 싸고 질이 좋기 때문에 OEM으로 제품을 공급받고 있지만 우리나라보다 인건비가 낮고 품질이 안정된 국가가 나타날 경우 거래처를 옮길 확률이 높기 때문. 실제로 일본 오디오 업체들은 중저가 제품들을 위해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옮겼으며 중국 업체들에게 보급형 제품을 공급받고 있는 실정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산 제품이 해외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상품기획력과 마케팅 능력을 육성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IMF국면하에서 돌출된 국내 가전업계의 수출 드라이브 전략은 정보가전, 디지털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와 공교롭게 겹치면서 국내 가전업계에 시련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가전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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