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해도 대기업들의 화두는 「21세기 황금어장인 영상시장에 누가 먼저 낚시대를 드리울 것인가」였다. 그러나 해외시장에서의 제살깍아먹기식 판권구매로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난 관련업체들은, 외산 히트작을 경쟁적으로 수입, 유통시키는 낚시법이 미래의 황금어장을고스란히 선진국 메이저사에 내주고 빈 연못만 차지하게 만든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더구나 IMF한파와 함께 불어닥친 고환율시대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로열티는 대기업들에게 새로운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이제는 수출만이 살 길이다.』
영상소프트업계의 유일한 탈출구는 기획단계에서의 철저한 수출전략으로 우리의 문화상품을 세계화하는 것이라는게 98년을 여는 관련업체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작년부터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PC게임의 수출 전망은 비교적 밝은 편이다. 그동안 국산게임 수출은 개별업체의 거래관계 및 인맥을 통해 일본, 대만 등 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으나 97년9월, 12개 국내 PC게임 업체들이 영국에서 개최된 유럽컴퓨터무역전시회(ECTS)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국제 마케팅을 전개함으로써 도약의 계기를 맞았다. 당시 ECTS에 참가한 12개 게임업체는 외국업체와 활발한 수출상담을 펼쳐, 60만달러 가량의 수출계약을 체결했으며 수출 대상국도 일본, 대만 등 아시아지역에서 미국, 유럽, 오세아니아 지역으로까지 넓히게 됐다.
또한 국산 게임의 질적 향상에 힘입어 개별업체를 통한 수출실적도 PC용 게임만 작년 한해 5백만달러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게임업체들은 97년을 수출원년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올해는 1천만달러 이상의 수출액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게임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LG소프트, SKC, 삼성영상사업단,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최근 환율인상에 따라 수입을 자제하고 중소 개발업체의 제품의 판권을 구입,수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앞으로 국산게임 수출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소프트맥스, 재미시스템개발, 한겨례정보통신, 막고야, 메디아소프트 등 상당수의 중소 게임 전문업체 역시 기획단계에서부터 국내보다는 외국시장을 겨냥한 제품 개발에 주력하는 한편 해외 홍보용 샘플을 제작하는 등 사전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이 큰 효과를 발휘, 최근에는 이같은 국산 게임을 살펴 본 외국업체가 국내업체에 먼저 거래계약을 맺자고 제의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LG에 이은 SK그룹의 영화제작 포기 움직임으로 위축된 영화계 역시 수출에서 가능성을 찾고 있다. 삼성그룹의 영상사업 전위부대인 영상사업단은 올해를 「영상물 수출 인프라 구축의 해」로 정하고 총 4백만달러의 수출목표를 세웠다. 이 회사는 내년에 동남아, 유럽 등에 고정판매망을 구축하는 등 해외배급망 안정화에 주력하고 오는 2000년에는 애니메이션을 주력상품으로 한 국내 영상물의 해외 배급사업을 본격화시켜 약 8백만달러의 수출을 달성키로 했다. 이 회사는 최근 「결혼이야기」 「런어웨이」 「진짜 사나이」 「비트」등 영화 4편을 독일과 러시아, 중국에 수출키로 하는 등 총 56만달러의 수출계약고를 올리는 등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대우도 오는 26일부터 3월6일까지 LA에서 열리는 아메리칸 필름마켓에 「현상수배」를 출품해 약 50만달러, 5월 칸느영화 견본시에는 폴란드 문화성 산하 영화위원회,폴란드 국영TV 등과 공동제작한 「이방인」으로 40만달러 상당의 판권을 판매할 계획이다.
충무로 영화사들도 자체적인 수출계획을 점검하고 있다. 영구아트무비(대표 심형래)는 애미메이션 영화 「용가리」의 시나리오와 제작기획안을 아메리칸 필름마켓, 밀라노영화제 견본시 등에 선보여 세계 각국으로부터 약 6백45만달러어치의 사전판매계약을 체결했다.
미라신코리아는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를 일본 배급사 스리스코퍼레이션에 미니멈 개런티 5만달러에 판매했고 백두대간은 하틀리-메릴 국제 시나리오 콘테스트에서 최고상을 차지하면서 화제가 됐던 이광모 감독의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아름다운 시절」을 일본 배급사 시네쿼논에 10만달러에 사전 판매했다.
꾸준히 증가해온 방송프로그램 수출 역시 활기를 띨 전망이다. 방송사계열 프로덕션들은 올해 방송프로그램 수출목표를 전년대비 평균 40% 이상 늘려 잡고 수출용 프로그램 개발 및시장다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이들 3사는 고부가에 의한 수출을 위해 주력상품인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등을 음악/효과(M/E)트랙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하는 한편 유럽, 남미지역 등으로의 시장다변화를 꾀하는 등 아시아지역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크게 낮춰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올 방송프로그램 수출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5백만달러를 돌파한 총 6백만달러에 이르고 이에따라 방송 프로그램 무역수지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MBC프로덕션은 올 방송프로그램 수출목표를 전년대비 25% 증가한 2백만달러로 잡고 수출용 프로그램 개발 및 시장다변화에 전사적인 힘을 모으기로 했다. MBC프로덕션은 이를 위해 주문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오락물」프로그램을 수출상품으로 적극 개발하고 국제규격에 의한 프로그램 제작에 힘쓰는 한편 「복수혈전」과 「영웅신화」 등 인기드라마 수출에도 나서기로 했다.
만화영화 및 드라마의 수출상품화에 주력하고 있는 SBS는 만화영화의 경우 판로가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어 이 부문의 수출목표 달성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드라마의 경우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어 현재 제작중인 김종학PD의 「백야」를 수출상품으로 개발, 선보이기로 했다.
KBS영상사업단은 올해 전년대비 50%가 증가한 총 3백만달러의 수출목표를 세우고 국제규격에 의한 프로그램 제작 및 시장다변화에 주력키로 했다. 이 회사는 올해 유럽지역 시장개척을 통해 수출지역 편중현상에서 벗어날 계획인데 특히 만화영화 및 드라마 수출에 비중을 둘 방침이다.
가장 고전이 예상되는 것은 음반부문. 음반수출은 아직 우물안 개구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어장벽,독창적인 음악장르 부재,어설픈 외국가수 흉내내기 및 국내시장만을 겨냥한 아티스트 발굴기조 등이 음반수출의 걸림돌이다. 지난 96년 이후 김건모,박진영 등이국내에 진출한 외국 음반직배사를 통해 영어음반을 발매했으나 동남아시장 일부에 소개되는데 그쳤다. 주주클럽의 홍콩, 대만시장에서의 작은 성공과 일부 가수가 개인의 자격으로 일본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등 긍정적인 모습도 보였으나 그 결과에 고무되기에는 너무 빈약한 수준이다. 앞으로 한국적 장르개발, 언어장벽 극복 등이 음반수출의 선결과제라고 볼 수 있다.
이같은 관련업계의 수출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우선 게임부문의 경우 문화체육부는 국산 게임SW 국내외 홍보 및 수출활성화를 위해 국산게임 및 관련업체의 정보를 소개하는 공동 인터넷사이트를 개설하는 한편 해외전시회 지원을 2개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문체부가 추진중인 공동 인터넷 사이트는 국산게임에 관한 정보와 업체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 및 민간업체들이 개설한 인터넷 사이트 관련정보들을 한글과 영어로 소개, 국산 게임의 해외진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문체부는 지난해 국내업체들의 ECTS 참가를 지원해 국산 게임의 수출에 기여했다고 판단, 올해에는 ECTS와 함께 미국에서 개최되는 엔터테인먼트 관련 소프트웨어 및 기기전시회인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에도 참가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와 함께 문체부는 매년 우수 국산 게임소프트웨어를 선정, 시상하는 「대한민국 게임대상」에 수출실적이 가장 높은 업체를 선정, 시상키로 하는등 다양한 수출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아울러 만화전문 케이블채널인 투니버스와 협력, 게임동호회 등 아마추어가 개발한 게임 소프트웨어를 투니버스채널을 통해 소개하고 이 중 우수작품에 대해서는 매달 시상하는 제도도 마련키로 했다.
또한 문체부는 영화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편당 3백만원 범위 내에서 문화홍보 지원금을 지급하고 영화진흥공사 내에 수출계약서 작성 및 저작권상담 등 행정지원 전문인력이 상주하는 영상물 해외수출 행정지원센터를 설립, 운영할 계획이다. 또한 재외 문화원 및 민간기업 주재관등에 4~5편의 영화를 공급하고 영상자료원을 통해 우리영화 관련자료를 제공할 예정이며 국제영화제 참가작에 대해서는 편당 7백만원의 자금을 지원할 방침이다.
아직까지 적자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는 영상소프트산업은 컴퓨터그래픽을 비롯한 하이테크 기술이 가미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인적 자본이 풍부한 우리나라가 수출전략 품목으로 육성할 만한 분야다. 앞으로 정부의 지원, 전문업체의 개발노력, 대기업의 마케팅전략 등 3박자가 어울린다면 영상소프트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모인, 이선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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