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는 종자를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다.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러서도 종자만은 보존해 내일을 대비하겠다는 우리 조상들의 의지와, 아무리 어렵더라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는 경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업체들은 반도체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영국, 미국 등지에 현지공장 건설을 추진하며 콧대 높았던 선진국들이 우리의 비위를 맞춰가며 자본을 유치하려 애쓰는 것을 내심 즐겼었다. 영상산업 역시 대기업들이 영화 기획단계에서 경쟁적으로 「입도선매(立稻先賣)」 판권계약을 하면서 금력을 과시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공장건설을 연기하고 판권값을 깎아달라고 사정하는 입장에 처하게 됐다.
국내업체들이 IMF한파를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 제살을 깎아가며 구조조정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최근들어서는 그동안 우리가 그토록 육성하려 애써 왔던 소재부품 및 영상산업 등 아직은 취약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믿어왔던 전략 요소산업들까지 덩달아 매각하거나 정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런지 그동안 외국과 합작 등을 통해 힘겹게 끌어온 「국산화」니 「국내 생산기반 구축」이니 하는 말들이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있고, 일각에서는 『어렵게 끌고 가느니 외국 합작사에 지분을 넘기는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말까지 들리고 있다.
반도체 재료분야에서도 이미 일본 등 합작선에 지분을 양도하는 업체가 늘고 있고 미래 고부가가치 유망산업으로 극찬받았던 영상산업도 대부분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우선 대상에 올라 명맥마저 위태로워 보인다. 모든 기준을 생존과 단기적인 가능성에 맞춰 그동안에도 외국업체들의 무대였던 핵심 소재, 재료 기술과 음반, 영화, 비디오 등 영상산업을 외면할 경우 빈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지는 멕시코의 경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명백하다.
우리가 국가적인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자칫 눈앞의 환난을 해결하는데 급급해 종자들까지 처분하고 있지는 않은지 신중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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