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차세대 휴대전화 규격결정 의미

세계 어디서든 동일한 단말기로 통화할 수 있는 차세대 휴대전화의 세계 표준규격 획득경쟁이 유럽지역의 단일규격 결정으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됐다.

유럽표준화기구(ETSI)는 지난달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가진 전문가회의에서 오는 2000년 도입하는 차세대 휴대전화시스템 「IMT-2000」의 역내 규격으로 일본 방식을 기본으로 그 경쟁규격 일부를 도입하는 방식을 결정했다.

이로써 IMT-2000 규격과 관련해서는 처음으로 유럽지역에서 벌어진 표준규격 경쟁, 즉 일본에 뿌리를 두고 있는 「WCDMA」와 지역 기반의 「TD-CDMA」간 다툼이 일단락되는 동시에 일본과 유럽지역의 규격 공통화가 이루어지게 됐다.

이에 따라 세계 디팩토 스탠더드(사실상의 업계표준)를 둘러싼 표준화경쟁도 종전의 일본, 유럽, 북미의 3파전에서 일본, 유럽의 새 공통규격과 북미 규격간의 2파전으로 압축됐다.

또 이번 유럽의 규격단일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두개 규격이 일본 방식을 축으로 통합됨으로써 디지털 휴대전화에서 구미세력에 크게 뒤져 있는 일본이 마침내 독자 규격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점이다. 특히 이것은 나아가 정보통신 세계표준화경쟁에서 일본이 구미세에 따라붙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ETSI가 결정한 유럽 단일규격은 TD-CDMA규격을 채택하고는 있지만 극히 일부이고 일본 방식인 WCDMA가 그 축을 이루고 있다.

이는 앞서 WCDMA의 실질적 개발업체인 NTT이동통신망(NTT도코모)이 지난달 중순 표명한 「반대진영 규격 일부 수용」방침과 같은 내용으로 결과적으로는 일본측 의도대로 된 셈이다.

그간 유럽에서는 역내 표준규격을 놓고 독일 지멘스 등이 주축이 돼 개발, 추진하는 지역기반의 독자규격인 TD-CDMA가 WCDMA와 경합해 왔다. 그리고 그 양상은 스웨덴 에릭슨, 핀란드 노키아 등 북유럽지역 통신기기업체를 비롯해 브리티시텔레컴(BT), 텔레컴 이탈리아 모바일 등 통신사업자들의 지지를 받는 WCDMA의 계속적인 우세 속에서 진행돼 왔다.

이 때문에 NTT도코모의 「상대규격 일부 수용」입장은 유럽의 일부 지지업체들로부터 「양보」나 「후퇴」라는 비난도 나왔으나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국제표준을 겨냥한 현실적인 최선의 결정」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사실 지난해 12월 ETSI의 방식결정을 위한 투표에서 WCDMA는 절반 이상(58%)의 표를 얻어 TDCDMA를 눌렀지만 결정에 필요한 득표(71%)는 올리지 못했다. 또 당시에는 지난달 말로 예정돼 있던 2차 투표에서도 결론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실제로도 WCDMA의 득표율은 61%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올 초부터 두 진영은 일원화 길을 모색해 왔고, ETSI에서도 두 규격의 통합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비록 투표권은 없지만 WCDMA의 실질적 책임자인 NTT도코모가 「상대규격 일부 수용」방침을 결정함으로써 단일화 타협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NTT도코모가 이처럼 양보를 통해서도 자신의 규격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유럽지역 표준규격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유럽은 EU를 단일권으로 해 표준을 마련하고 이를 세계 표준으로 육성해 나가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데, 현행 디지털 휴대전화에서 세계 표준으로 통하는 GSM은 그 대표적인 산물이다.

TDCDMA진영은 특허료부담 해소 등 얻은 것이 많다. 우선 특허료와 관련해서는 WCDMA가 구미 기초기술을 근거로 하지만 NTT도코모가 응용기술을 대거 추가했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지적돼 왔는데 이제 혼합기술이 됨으로써 그 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또 지멘스 등 유럽지역 기기업체로서는 「해외기술 채용」이라는 자존심 상하는 일도 모면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최대 관심사는 유럽의 단일규격 결정으로 달라진 세계 표준경쟁 구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여부다.

유력 후보로 남은 것은 일본과 유럽의 공통방식과 북미지역 방식 두개다. 예정에 따르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내년 9월까지 각국에서 규격을 제안받아 표준규격 책정작업에 들어간다. 물론 이들 중 어떤 방식이 세계 표준이 될지는 미지수다.

일단 세력면에서는 일본과 유럽의 새 공통방식이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아시아지역 주요 국가들도 이미 WCDMA로 상당히 기울어져 있다. 중국 역시 이번 유럽규격 단일화로 WCDMA로 기울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본, 유럽 공통규격과 북미방식간의 일원화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미 그 움직임은 시작된 상태다. 미국, 일본, 유럽의 유력 통신기기 제조업체들은 표준규격 결정에 따른 탈락규격측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무선구간을 WCDMA를 축으로 공통화하는 교섭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같은 움직임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사업자로까지 확대될지 여부인데 아직은 특별한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디지털 휴대전화에서 자국방식 PDC(Personal Digital Cellular)를 개발해 지난 92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그러나 PDC는 세계화에 실패하고 국내용으로 전락했다. WCDMA는 따라서 세계표준을 겨냥한 일본의 두번째 도전인 셈이다. 유럽세를 등에 업는 등 기존 PDC와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일본 규격이 세계 정보통신의 표준이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신기성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