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설계] 아남산업 황인길 사장

지난 68년 반도체 조립사업 진출로 국내 반도체산업의 시작을 알렸던 아남산업이 지난해 말 반도체 일관가공(FAB)라인을 본격 가동하면서 30년만에 재도약의 깃발을 내걸었다. 아남산업은 반도체산업의 계속되는 불황과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패키징만으로 지난해 1조4천억원이라는 놀랄 만한 성과를 거뒀다. 올해에는 97년보다 57% 성장한 2조2천억원의 야심적인 매출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IMF위기가 아남산업에는 무색하다. 모든 업체가 달러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도 아남산업은 월 1억달러 안팎의 거금이 꼬박꼬박 통장으로 들어온다. 92년 촉망받는 재미 물리학자의 자리를 박차고 아남산업 대표로 변신한 황인길 사장은 아남산업이 위기속에서도 성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30년 동안 한 우물만을 팠기 때문』이라는 한마디로 명쾌하게 정리했다.

대담=부품산업부 박재성 부장

오는 3월 주주총회를 거쳐 회사이름을 아남산업에서 아남반도체로 바꾸는 이유도 반도체업체로서의 전문화에 더욱 속도를 붙이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업구상에 여념이 없는 황인길 아남산업 사장을 집무실에서 만나 새해 경영계획을 들어봤다.

-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너나없이 극심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국내 반도체업계는 D램 가격하락에 환율불안까지 겹치면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악조건속에서도 괄목할 만한 고도성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마디로 전문성을 유지한 것이 유일한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는 68년 반도체 패키징사업에 참여한 이래 한번도 한눈을 팔아본 적이 없습니다. 최근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문어발식 사업확장이나 무리한 차입경영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 아닙니까. 한 분야에서조차 일류가 되기 힘든 세상에 수십 또는 수백가지 업종에 투자하는 것이나 자본금의 20∼30배나 되는 빚을 지면서 정상적인 기업경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 아닌가요. 30년간 오로지 반도체 패키지라는 분야에 매달리면서 최고의 기술과 최고의 신용을 확보했다는 것이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입니다.

-올해 주요 부문별 매출목표는 어느 정도로 잡고 계신지요.

▲96년에 이어 지난해 국내 반도체산업의 계속되는 불황과 IMF사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서 전년대비 24% 성장을 달성했습니다. 올해 역시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년대비 57% 수준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세계적인 패키징시장의 호황으로 패키징과 테스트 부문에서 2조원 정도의 매출이 예상되는 데다 새로 시작한 웨이퍼 FAB부문에서 2천억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남산업은 지난해 말 FAB사업에 참여했고 향후 패키징 라인에 대한 추가 투자요인이 산적해 있습니다. 패키징사업이 호조를 보인다 해도 상당부분 설비투자에 대한 부담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때문에 올해 시설투자는 대규모 투자를 자제하는 대신 생산성 향상과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장비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주력하려고 합니다. 생산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투자는 물론이고 생산관련 투자라고 해도 투자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효율화에 만전을 기할 생각입니다. 이에 따라 현재 건설중인 광주공장의 2단계 증설과 부천에 추가 증설할 예정이던 웨이퍼 FAB 2차라인 계획도 보류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모든 생산시설의 증설을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경제사정이 호전만 된다면 당초 계획했던 시설투자나 연구개발 투자가 즉각 재개될 것입니다.

-올해 대다수 기업들이 감량 내지는 긴축을 기조로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특히 생산성 향상이나 경비절감에 대한 노력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전망입니다. 올해 아남산업의 기본적인 경영방침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다른 기업에 비해 사정이 좀 낫긴 하지만 아남산업 역시 98년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현실을 냉철히 직시하고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한다면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해결의 실마리는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영체질 혁신과 원가 혁신을 통해 경영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사용할 것입니다. 미래예측 능력을 강화하고 위기관리 능력을 배양하는 데 역량을 모을 방침입니다. 원가절감을 위해서는 업무를 재설계하고 관리부문의 거품을 제거함으로써 전반적인 업무 프로세스의 개혁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현재 아남산업은 비상경영상태를 선포하고 97년 1, Mbps분기 실적대비 올해 말까지 40%의 원가절감을 목표로 생산성 향상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조 분야에서 생산성 향상 및 지속적인 공정개선을 통한 혁신적인 원가절감으로 대만이나 동남아 업체의 가격인하공세에 대응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멀티미디어화하는 세트기술 추세에 발빠르게 대응키 위해 패키지기술의 고부가가치화를 적극 추진, 수익구조 개선에 나서려고 합니다.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 대만 등 후발국들의 도전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는 경쟁력 확보방안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요.

▲아남산업이 반도체 패키징사업에서 줄곧 1위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시장의 흐름과 고객의 요구를 제때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불황일 때에도 과감한 선투자를 실시하고 신제품이나 신기술 개발에 돈을 아끼지 않은 것이 결국 세계 최대 업체라는 자리를 지켜준 원동력인 셈입니다. 후발업체의 도전을 뿌리칠 수 있는 방법은 끊임없이 기술과 제품 개발을 추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30년 동안 쌓아온 아남의 패키징 기술력을 그들이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 아남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플라스틱 BGA(Ball Grid Array)가 양산되면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이어 BGA성능을 보완한 슈퍼BGA나 MCM BGA와 차세대 패키지기술인 CSP(Chip Size Package)의 일종인 플렉스 BGA나 마이크로 BGA기술도 확보된 상태입니다.

-특정분야에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술력 외에 마케팅 능력과 서비스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케팅 부문에 대한 전략은 무엇입니까.

▲중요한 지적입니다. 아남산업은 창업시부터 긴밀한 유대관계를 다져온 미국의 암코사라는 훌륭한 파트너가 있습니다. 영업과 마케팅을 전담해주는 암코의 존재야말로 전자, 정보통신 분야의 세계 우량기업들을 고객으로 유지하고 있는 든든한 힘입니다.

-현재 아남산업의 핵심사업이랄 수 있는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 부문의 올해 사업전망은 어떻습니까.

▲여러가지 시장여건상 대단히 희망적인 변수가 많습니다. 지난해 이 두 부문에서 약 1조4천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물론 연말에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가격폭락 덕을 보기는 했습니다만 기대를 넘어선 성과입니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더 큰 폭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보다 43% 늘어난 2조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금년도 전체 경제성장률이 극히 저조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히 높은 목표이긴 합니다만 그동안의 내실경영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수치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가동시킨 부천의 웨이퍼 FAB라인이 올 상반기면 본격적인 상업생산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FAB사업은 30년 반도체 패키징사업으로 일관해온 아남산업에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FAB사업에 진출하면서 아남산업은 반도체 디자인에서부터 테스트에 이르는 토털 솔루션을 완비한 명실상부한 반도체 전문업체로서 거듭나게 됩니다. 아남의 FAB사업은 특히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가장 성장가능성이 높은 디지털시그널프로세서(DSP)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때문에 아남산업의 웨이퍼 FAB사업 참여는 국내 반도체산업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라고 지적되는 D램 편중구조를 완화시키면서 전제품을 수출할 계획이기 때문에 국내 반도체산업의 위상을 높이고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됩니다.

-향후 FAB부문의 사업계획을 설명해주시죠.

▲현재 생산하고 있는 0.35미크론 DSP는 전량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사에 공급됩니다만 내년부터는 전체 생산량의 305를 자체 영업으로 판매할 계획입니다. DSP는 점차 다기능, 저전력, 소형화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점차 0.25, 0.18미크론 및 0.13미크론 공정기술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는 한편 업체간 전략적 제휴 및 유관기술 개발에도 적극 나설 방침입니다. 마케팅 부문은 암코사와의 협력을 통해 현재 패키징분야의 거래처를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강화할 작정입니다.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는 첨단제품 설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능별 라이브러리 기반기술을 구비한 기술영업을 통해 고객의 설계요구에 대응할 방침입니다.

-오는 3월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회사이름을 아남반도체로 변경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의도라도 있는지요. 또 2000년대 아남산업의 모습을 어떻게 구상하십니까.

▲아남반도체로 회사명을 변경하는 것은 지난해부터 아남그룹 차원에서 추진해온 CI사업의 마무리단계로 이미 예정된 일입니다. 아남반도체로 이름을 바꾸는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일반 대중이나 투자자들에게 반도체 전문업체의 면모를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자체분석에 따른 조치입니다. 실제로 이름 때문에 여러가지 면에서 아남산업의 이미지와 실상이 잘못 알려져 있었던 것을 바로잡고 내부적으로는 그룹차원에서 반도체사업에 전력투구하겠다는 다짐이라고 봐주십시오.

2000년대 아남산업의 모습을 그려보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남산업은 반도체 전문기업이며 아남그룹 역시 반도체산업에 집중하는 반도체 전문그룹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다만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첨단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국제경쟁력이 한층 강화된 것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정리=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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