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여년간 쉼없이 일해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우리나라가 이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훈육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던 우리 경제가 금융·외환 위기에 몰리면서 IMF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경제의 실상이 IMF에 의해 그대로 드러날 판이고 이에 따른 경제 기반을 개혁해야 할 실정이다. IMF의 요구사항은 긴축으로 집약된다. 이로 인해 국내경기가 위축되고 경쟁과 개방논리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국내기업들은 뼈아픈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정부가 IMF의 긴급자금지원 요청으로 거시경제 · 정부재정 · 통화 · 산업정책 등 경제전반의 정책방향을 재검토키로 한 데서도 앞으로 닥쳐올 한파를 예감할 수 있다.
전자 · 정보통신업계라고 해서 IMF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것이 전자 · 정보통신업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전자 · 정보통신업계가 IMF태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군살을 빼야 한다. 지금 당장은 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것이 수치스럽고 그에 따른 시장개방 압력과 재정 긴축, 대량 실업사태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나 이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는 최근의 경제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IMF 긴급자금 지원 요청으로 투자 및 경비지출 위축이 불가피해지자 이미 수립해 놓은 내년도 전망을 긴급 수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동안 「한계산업」으로 인식되면서 그 영향력이 줄어 들어 왔던 가전산업은 이번 IMF 긴급자금 지원으로 이러한 축소 추세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가전업계는 수출을 늘리고 통화결제수단을 다양화하는 등 나름대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IMF태풍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인 반도체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막대한 시설투자비가 소요되는 반도체산업은 그렇지 않아도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입원가 상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원부자재에 들어가는 자금이 완제품의 60~70%에 달해 달러화가 상승하면 이 부담이 그대로 원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도체 가격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여서 이중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반도체 업체들은 현재 해외 공장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초긴축 재정을 단행하는 등 IMF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컴퓨터업계는 공공부문과 기업들의 투자 위축으로 그동안 확대 추세에 있던 서버 및 사무용 컴퓨터의 판매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도 시스템통합(SI)사업 위축과 관련,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보통신산업은 반도체나 산업전자에 비해 충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업계의 자구노력은 가속화한다는 입장이다. 인력감축과 투자감소 등을 통해 군살을 빼고 기업을 견실하게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매년 35~40% 이상의 고성장을 구가해온 SI업계도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SI업체들은 내년 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불투명할 것으로 보고 매출 확대를 통한 외형부풀리기보다는 이익 창출 우선의 내실경영에 초점을 맞춰 사업계획 수정에 들어갔다.
공공부문의 투자 위축은 산전업계에 가장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공항과 고속철도 사업이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밖에 크고 작은 공공부문 투자가 축소되거나 연기될 것으로 산전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산전업계는 이에 대한 돌파구로 경비절감과 인력관리 효율화를 추진하면서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시장 개척에 사활을 걸 계획이다.
유통부문은 IMF 구제금융 지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보다는 기업과 일반 소비자들의 소비심리가 위축됨으로써 수요가 줄어드는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또 유통시장에 대한 개방압력이 강해지면서 외국 수입제품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는 것도 크게 우려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IMF의 지원으로 경제가 안정되면 오히려 소비가 활성화할 수도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으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상당기간이 필요해 그동안의 소비위축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영상, 뉴미디어 산업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이들 제품에 대한 로열티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영세한 중소업체들은 아직까지 시장변동 상황을 예측하거나 이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IMF 자금지원이 우리 경제와 기업을 멍들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그동안 부풀려졌던 거품을 제거하고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 산업은 IMF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완전한 구조조정에 성공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대가없는 교훈은 없는 법이다.
<김병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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