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다. 오늘부터 2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리운 고향을 찾고 조상에 성묘하는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다. 오랜만에 추석상에 모여 앉아 피붙이들의 따듯한 정을 나누고 한가위 보름달처럼 넉넉하고 포근한 명절을 보낼 것이다.
이맘때면 누구나 「나눔의 소중함」을 한번쯤 되새겨 본다. 나와 내 가족의 안온함에 감사할수록 소외되고 불편한 「또다른 내 가족」들에게도 한가위의 넉넉함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한가위 달은 내 가족의 머리위에도 떠오르지만 함께 사는 이 땅의 모든 이에게도 밝게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신문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전자업계의 많은 사회봉사 그룹 중 삼성전관 직원들로 이루어진 「점자입력 자원 봉사단」을 만났다. 단원 가운데 한 명을 조명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가위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기기 위해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굳이 언론에 오르내릴 만한 것인지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누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라리 그들에게 더 관심을 가져달라』며 인터뷰를 사양하던 점자입력 봉사단이었다.
그들은 손 끝으로 앞 못보는 시각 장애인들과 서로의 사랑과 체온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점자입력이다. 단원들 간에 일정한 분량의 원고를 맡아 이를 워드프로세서에 입력하는 것이다.
이들이 입력한 내용은 하나로 묶여 한 권의 점자책으로 발간된다. 시각 장애인들은 이를 통해 책의 내용을 읽는다. 맹인들이 읽는 것은 점자책의 내용뿐 아니라 손 끝으로 읽어내려 가는 동안 이것을 입력한 사람들의 체온과 사랑도 함께 읽어낸다.
그래서 봉사단 사람들은 「우리는 손 끝으로 입력하고 그 분들은 손 끝으로 읽는다」고 표현한다.
이들의 「손 끝으로 나누는 사랑」은 벌써 2년여 동안 11권의 점자책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침술 등 시각 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책을 의뢰 받아 입력작업을 했지만 최근에는 일반 교양 소설류가 많다고 한다. 맹인들 역시 읽어보고 싶지만 막상 점자로 만들어진 책이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이런 유의 서적이기 때문이다.
입사 동기의 추천으로 봉사단에 자원했다는 김진희씨(전략정보팀)는 『특별히 누구를 돕는다는 생색을 내기는 싫다』며 『타이핑만 할 줄 알면 손쉽게 참여할 수 있고 일부러 시간을 내야하는 다른 봉사할동에 비해 점자입력은 매일 사무실이나 직장에서 틈틈이 할 수도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에게는 큰 부담이 아니지만 많은 시각 장애인들이 우리가 만든 점자책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낀다』며 점자입력을 하면서 본인도 책 내용을 함께 읽을 수 있어 더욱 좋다고 한다. 『나도 즐거우면서 남에게 도움도 준다』는 것이다.
점자입력 봉사단은 현재 24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모두 자원자이니만큼 가입과 탈퇴는 모두 자유롭고 서울 사업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이다. 가입모집에서부터 입력활동 대부분은 사내 전산망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어쩌다 한번 회원들이 모여 점심 식사라도 하는 자리가 마련되면 동료들 사이에 「당신도 봉사단원이었어?」하며 깜작 놀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일단 단원이 되면 중간에 탈퇴하는 예는 거의 없다.
재미있는 것은 단원중 기혼 여성들이 더욱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직장과 가사 양쪽으로 정신이 없을 기혼 여성들이 점자입력에 열심인 것은 가족의 소중함 못지 않게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고 틈틈이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점자입력의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은 3개팀으로 나누어져 매월 3권의 책을 입력한다. 일인당 30∼50페이지 정도를 담당한다. 책 내용이 입력된 디스켓은 맹인복지연합회에 전달된다. 알음알음으로 소문이 나면서 단원수도 늘어나고 서로 바쁜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입력분을 대신 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단원이 아닌 옆자리 동료들도 기꺼이 도움을 준다.
그래서인지 서울뿐 아니라 지방 각 사업장에서도 점자입력에 나서겠다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모임을 처음부터 주도하고 있는 홍성밀씨(홍보팀)는 『점자입력은 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의」』라고 말한다. 그는 『굳이 봉사라는 개념을 동원하지 않아도 입력과정에서 자신도 한 권의 책을 읽는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업에 참여하는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단원들 대부분이 20∼30대 초반의 여성들로 구성된 것은 다소 아쉽다』며 타이핑 속도가 다소 늦고 컴퓨터 초보일지라도 남자 직원들의 가입과 관심이 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씨에 따르면 삼성전관 직원들이 맹인들을 위한 점자입력 봉사에 나서게 된 것은 회사의 특성에서 출발했다. 세계 최대의 브라운관업체인 이 회사의 삼성전관의 정체성과 연관된 분야를 찾다가 맹인복지연합회에 연결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는 디스플레이사업과 연관돼 개안수술 등의 사회사업에도 적극적이다.
점자입력 자원 봉사단은 하지만 회사측의 지원은 생각하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자신들이 즐거워 조그마한 정성과 성의로 행하는 일인데 거창(?)하게 회사지원을 바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맞는 추석은 따듯함과 정겨움으로 가득하고 그래서인지 표정마저 「아름답다」. 곤두박칠치는 경제에 이전투구만 일삼는 정치, 그 와중에도 서로 네탓만 하고 있는 지도층, 그래서 더욱 각박하고 짜증나는 요즈음이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여전히 건강하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싸우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서민들의 몫이라는 사실을 이들은 다시 한번 깨우쳐주고 있다.
<이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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