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 금속같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엔플라」 전성시대

TV가 처음 세상에 선을 보였을 때 외장 케이스는 나무였다. 만약 플라스틱이 발명되지 않고 나무가 외장재로 계속 사용되었다면 TV가 지금처럼 보편화되었을까.

외장재뿐만이 아니다. 전자제품의 내부를 들여다보아도 대부분의 전자부품이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다. 플라스틱은 이제 금속, 세라믹과 함께 3대 전자소재로 확고히 자리잡았으며 특히 최근에는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금속과 세라믹의 영역까지 넘보게 되면서 가장 성장가능성이 높은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플라스틱이 급부상하는 것은 타 소재와 비교해 제품의 경량화, 소형화, 원가절감 등의 이점이 있고 성형성과 가공성이 탁월한 점 때문이지만 반대로 열과 충격에 약한 점이 최대 단점으로 꼽혀왔다. 따라서 내열, 내충격성을 요구하는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타 소재를 대체하는 정도가 미진했는데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 물성을 개선한 플라스틱이 바로 엔지니어링플라스틱(이하 엔플라)이다.

엔플라가 차세대 전자소재로 각광을 받으면서 80년대 후반부터 삼성, LG, 선경, 효성, 코오롱, 금호 등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들이 앞다퉈 이 시장에 진출, 국내 엔플라산업이 황금기를 맞고 있다. 특히 이들은 전방산업인 전기, 전자, 자동차산업의 성장에 따라 향후 국내 엔플라시장이 연평균 15% 정도의 고성장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고기능성 수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설비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릴 계획이어서 이 시장에서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엔플라는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과 같은 범용 열가소성 수지와 비교해 기계적 강도, 내충격성, 내마모성, 내구성, 내후성, 내약품성 등 각종 물성이 우수한 플라스틱을 말한다.

엔플라는 준엔지니어링플라스틱, 일반엔지니어링플라스틱, 특수엔지니어링플라스틱 등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준엔플라에는 ABS와 PS가, 특수엔플라에는 PPS, PEEK, PI 등이 속하며 이들을 제외한 폴리아세탈(POM), PET/PBT, 폴리아미드(PA), 변성PPO(MPPO), 폴리카보네이트(PC) 등이 일반엔플라로 분류된다.

엔플라시대는 38년 미국의 듀폰(Du Pont)사가 「나일론」이란 상표명으로 PA를 생산하면서 개막됐다. 이후 58년에 역시 듀폰사와 독일의 바이엘(Bayer)사가 POM과 PC를 각각 개발한 후 66년 미국의 GE사가 MPPO를, 70년에 셀레니스(Celenese)사가 PBT를 내놓으면서 이 제품들이 5대 범용 엔플라수지로 불리며 가장 많은 수요처를 확보하고 있다.

이후 폴리이미드, PPS, PEEK 등 특수엔플라가 발표되었지만 값이 비싸 많은 수요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기존 엔플라수지를 얼로이화해 물성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면서 과거에 비해 신규 물질의 개발실적이 매우 저조한 상태다.

최근 엔플라는 다양한 수요에 부응해 5대 범용 엔플라 이외에도 고기능성 소재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데 기존 엔플라에 보강재나 충진재를 함유시켜 물성을 보강한 복합(Alloy)수지의 개발이 활발하다.

이러한 복합수지의 개발은 신규 고분자물질의 개발실적이 저조한 때문인데 그 이유는 신규 엔플라의 개발이 더 이상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데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신물질의 수요가 매우 한정돼 있어 규모의 경제성을 갖추기 힘들 뿐만 아니라 기존 합성수지나 금속 등의 경쟁소재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 소재의 대체에 의한 수요확대가 힘든 반면에 연구개발비와 시간의 투자는 막대해 투자비의 회수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엔플라관련 기술 개발의 초점은 기존 폴리머를 조합해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는 얼로이 또는 블렌드 기술에 맞춰져 있다. 최근에는 PC/PBT, PA/PPO, PA/폴리올레핀 등의 얼로이 제품이 자동차의 내장재와 부품을 비롯해 전자제품과 사무용기기의 부품으로까지 상업화되고 있으며 블렌드 재료 역시 자동차 및 전자는 물론 우주, 항공용 소재로 각광을 받고 있다.

현재 국내 5대 범용 엔플라의 국내 수요는 약 15만톤 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효성T&C, 코오롱, 고합엔플라, LG얼라이드, 한국듀폰 등이 시장경쟁을 펼치고 있는 PA가 연간 4만2천톤 가량으로 가장 많은 수요를 기록하고 있으며,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과 LG화학이 참여한 POM이 3만7천톤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뒤로 PC와 폴리에스터가 각각 3만5천톤, 1만8천톤으로 수요업체에 공급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MPPO와 MPPE가 1만3천톤의 수요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내 엔플라시장은 연간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며 품목별로는 전자산업의 수요비율이 높은 POM, PBT, MPPO 등의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날 전망이다.

우리나라 엔플라산업의 시작은 80년대 초 효성T&C(구 동양나이론), 코오롱, LG화학(구 럭키화학)과 같은 소수의 수지업체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그후 80년대 후반부터 전자, 자동차, 기계와 같은 주요 수요산업의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엔플라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국내 주요 재벌그룹의 섬유 및 석유화학관련 업체들이 수입대체와 함께 제품의 다양화, 고부가화를 통해 경영을 다각화하기 위한 성장전략의 한 방편으로 엔플라사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양산기술에서는 미국, 일본, 유럽과 같은 선진국 수준에 달하고 있으나 PA와 PBT만이 국내 기술로 양산되고 있고 대부분의 수지가 선진국과의 직접 및 합작투자나 기술도입을 통해 주로 일부의 컴파운딩 제품 및 얼로이 제품만을 생산하는 수직적 분업형태를 이루고 있다.

엔플라는 첨단분야로 기술의 확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제품이 국내에서 생산되더라도 기술서비스와 같은 면에서 충분한 기술능력을 보유하지 못할 경우 선진국과의 마케팅 경쟁에서도 밀려나게 된다.

그 결과 국내업체들은 주로 외국기술의 도입에 의존해 왔으며 더욱이 기술보유 선진국들이 기술이전을 기피하고 있어 외국기업과의 합작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국내 엔플라산업은 80년대 후반부터 참여업체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국내업체간의 과당경쟁이 발생하고 있으며 최근 관련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국내경기의 침체마저 겹쳐 엔플라업체들은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또 엔플라수지의 사출, 금형업체가 대부분 영세하고 전문지식이 부족해 수요업체의 하청에 의한 단순가공이나 선진기술을 모방하는 수준에 불과해 이같은 가공업체의 영세성이 수요확대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국산 엔플라수지에 대한 국내 수요업체의 신뢰도가 낮다는 점도 국내 엔플라산업 성장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최근 정보통신, 우주, 항공, 메카트로닉스, 생명공학과 같은 첨단산업의 기술발전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에 적합한 새로운 소재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국내업체들은 다국적 기업의 하청업자로 계속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같은 흐름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엔플라업체 스스로가 변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수요업체들도 국내 엔플라수지 업체들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권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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