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컴퓨터CD 유통구조

일본 동경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시장기가 돌아 역앞 우동집에 들러 우동 한 그릇을 시켰다. 주방장은 삶은 면을 한 움큼 꺼내더니 앞에 놓인 작은 앉은뱅이 저울에 면을 올렸다 덜었다를 신중하게 반복하는 것이었다.

「무엇하느냐」는 질문에 삶은 양의 국수양이 5인분인데 이를 5명의 손님에게 똑같이 나눠주기 위해 저울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선한 감동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진지함, 고객에 대한 섬세한 배려 등 일본이 몇 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꾸준히 성장하는 비결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최근 용산전자상가의 중견 컴퓨터 유통업체들이 연쇄적으로 부도를 내면서 그 여파로 컴퓨터CD업계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재 CD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유통의 무질서다. 짧은 연륜에서 야기된 문제겠지만 순간만을 생각한 덤핑, 마진의 보장이 없는 무모한 가격파괴, 용산에만 의존하는 유통구조 등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정상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모 그룹 회장의 인터뷰 기사 중에 『매출이익이 20%가 되지 않으면 사업을 걷으라』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CD제작사, 총판, 소매업자로서는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긴 안목에서 정상적인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유통구조를 정립하지 않으면 망하기 십상이다.

지금같이 제살깎아먹기식의 유통체계로는 CD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유통분야에서 가장 원시적이라는 출판업계도 유통가격 구조만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또 하나 현재의 용산 일변도의 유통구조로는 CD산업의 성장속도에 부응할 수 없다. 소비자의 요구를 CD공급업체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 CD전문점의 활성화가 절대절명의 과제이다.

대다수의 부모들이 컴맹인 현실에서 CD전문점은 컴맹탈출, 컴퓨터해결사, 좋은 교육CD 등 지역사회의 교육의 장이라는 사명을 가져야 CD산업 발전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보람과 함께 매출도 수익도 높아질 수 있다.

끝으로 정부에 바라는 것은 업계의 성격과 입장을 신속히 파악해 업계가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으면 한다. 최근 출시가 늦어지고 있는 「디아블로」라는 게임의 지연 원인중 하나가 정부의 「검열(?)」때문이라고 한다. 매니아들은 이미 원본을 구해 복제가 성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불법복제를 당국이 조장하고 있는 것과 같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라이프사이클을 고려한 당국의 신속한 업무처리가 시급한 시점이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자신이 속해 있는 자리에서 진지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면 이같은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李晩棟 유레카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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