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PC유통업체 부도 도미노 이렇게 극복하라 (6.끝)

최근 컴퓨터 유통업체들의 연쇄부도 사태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정부의 효율성있는 대책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부에 바라는 업계의 요구사항은 크게 우선 급한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단기적인 지원책과 함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수요창출의 장기대책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로서 가장 시급한 것은 잇달아 밀려드는 어음과 물품 대금 등 연쇄부도의 충격에서 헤어나기 위한 「긴급 금융 지원」이다. 지급보증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잇단 부도 사태로 인해 업계의 자생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한국IPC, 멀티그램, 아프로만, 세양정보통신, 한국소프트정보통신 등 5개 업체의 연쇄적인 부도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업체 뿐만 아니라 거래가 없던 중견 업체까지도 금융기관이 거래를 꺼리면서 컴퓨터 유통업계 전반에 걸쳐 자금흐름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용산전자 상우회는 이번 부도사태로 입은 직접적인 피해 규모가 대략 30∼40개 업체에서 5백∼6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중간공급업체와 제조업체들의 간접적인 피해까지 생각한다면 그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권영하 전자랜드 컴퓨터상우회장은 『이번 부도사태로 상가업체들의 어음은 물론 가계수표도 할인이 안되고 있으며 심지어 금융기관에서는 부도전에 이루어졌던 신용대출까지 회수, 간접적인 피해가 상당하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정부도 이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부도여파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납품업체 및 중소업체에 대해 부도업체가 발행한 진성어음 및 6백억원에 이르는 외상매출채권을 일반대출로 바꿔주고 대출금 상환기일도 연장해 줄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1조4천억원에 이르는 부도방지 경영안정자금을 긴급지원해 운영자금으로 활용한다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연쇄부도의 회오리가 한차례 지나간 상황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문제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 발벗고 나섰다는 사실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아무리 좋은 대책도 때를 놓치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 유통업체들이 원하는 것도 바로 당장 시급한 발등의 불을 끄고 부도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긴급 지원책이다. 용산상가 연합상우회는 주초 기자회견을 통해 『더 큰 부도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은행권의 긴급 자금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같은 조치가 나오기 전이라도 원활한 자금회전을 위해 현재 부도 관련업체가 발행한 30∼40장의 진성어음에 대해서 사용업체의 배서를 받아 융통시켜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주요상가의 상우회장들은 또 긴급자금 지원책의 일환으로 『상가업체들의 세금징수를 유예하고 정상 실명거래 어음에 대해 특별조치를 취해주고 세무조사를 유예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중소기업청,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금고 등 관련기관의 긴급지원도 시급하다』고 밝히고 있다.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유통업체들이 긴급수혈책을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중소제조업체들은 금융기관의 대출관행을 개선해 좀더 긴 안목에서 경영 부담을 덜 수 있는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받기도 어렵고 받아도 이자가 높아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 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성원정보기술 이재명 사장은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대출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자율도 대기업보다 훨씬 높은 14∼17%에 달해 자금난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대기업 처럼 신용으로 저리융자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아쉽다』고 지적한다.

고려투윈컴 김명신 이사도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담보를 제공해야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자금난에 허덕이는 벤쳐기업들이 자금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며 『정부는 첨단 정보통신산업을 육성한다는 정책을 말로만 되풀이할게 아니라 일선기업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방안을 한시바삐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있는 유통업체들에 대한 대증요법(對症療法)도 시급하지만 장기적으로 중소업체들의 자금운용에 숨통을 터줘 부도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대책마련에도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 제조업체들의 한결같은 바램이다.

태일정밀 정강환 사장은 이와는 조금 다른 견지에서 정부가 금융관행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사장은 『이번 부도사태로 관련업체간 신뢰도가 극도로 악화돼 있어 정부가 신용사회 정착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국내에 고질적으로 횡행하고 있는 어음제도를 없애는 방안도 적극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수요확대에 나서 업계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즉 당장 긴급 금융지원도 시급한 것이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수요를 진작해 업체들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영경 핸디소프트사장은 『정부가 첨단기업에 대해 저리 장기융자를 제공해 창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실제 수요측면에서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회사를 설립해 제품을 만들기까지 자금은 지원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시점인 구매단계에서는 중소기업체 제품을 외면함으로써 부실기업 양산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안사장은 이에 대해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더라도 판로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며 『정부가 건전한 수요진작에 앞장서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재명 성원정보기술 사장 또한 이 부분에 대해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는 PC 및 주변기기 입찰방식이 업체들의 과열 경쟁을 유도, 제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결국 시중제품 가격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며 『업체의 부실화로 부추기는 현행 공공구매 입찰방식을 개선, 정부가 건전한 시장환경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부도사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긴급자금 지원을 서둘러 관련업체들의 자금운영에 숨통을 터주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수요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 업체들의 자립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함종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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