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김영빈 감독의 <불새>는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최인호의 소설이 인상적인 것은 사실이지만,그 매력의 유효기간은 80년대 초반까지다.최인호의 소설 <불새>를 이렇다할 장치 없이 그저 시간적 배경만 90년대로 옮겨 놓는 일이란 위험천만한 작업이 아닐수 없다.
김영빈 감독은 그 위태로운 작업을 했고,<불새>는 철지난 스토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게다가 이 영화가 표현해 낸 재벌의 모습은 상투적이며 지나치게 왜곡되어 도무지 현실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불새>의 이같은 허술한 구조를 김영빈 감독은 알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취약함을,오로지 폼나는 화면속에 다 잡아 넣은 이정재의 고독한 눈빛과 벗은몸으로 보상하려 한 김영빈 감독의 불온한 시도,즉 <모래시계>의 이정재를 <불새>에다 옮겨놓으려는 시도는 시작된 것이다.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새>로부터 관객이 진부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불새>는 몸 하나를 무기로 해서 돈과 사랑을 모두 얻으려 했던 김영후(이정재 분)라는한 불우한 남자의 짧은 일생을 다루고 있다.우연한 기회에 재벌 2세인 강민섭(손창민 분)에게 접근하게 된 김영후는 그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성취시키고 싶어 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차와 아파트와 돈을 제공하는 강민섭을 위해 그가 시키는 어떠한 일이든 실행한다.
윤리적 자책감이나 회의 따위 없이 냉혹하게, 그러나 돈에 대한 욕망이란 가짜의 욕망이며자신의 진짜 욕망은 사랑이라는 것을 김영후는 이내 깨닫는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하필이면그가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강민섭의 여자로부터 왔고, 그 여자만이 자신의 욕망을실현시켜 주리라 믿었다는 데에 그의 비극이 있다. 김영후는 불새처럼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갈 욕망을 욕망해버린 것이다.
<불새>는 욕망에 관한 영화이며, 욕망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 남자에관한 영화이다. 욕망이 슬픈 것은 그 욕망이 결코 성취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욕망하는 자가 이미 알고 있기때문이다. 욕망 때문에 몸을 태우게되리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미 시작된 죽음에의 쾌감 때문에 그것에 대한 욕망을 그쳐버릴 수 없다는 데에 모든 욕망하는 자들의 비극이있다.
일단 성취된 모든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니다.욕망하는 자는 성취된 욕망을 더이상 욕망하지 않기 때문이다.따라서 「욕망하다」라는 동사의 목적어는 늘 죽음이 된다. 욕망한다는것은 죽음을 욕망하는 것이다.
철지난 스토리이지만 <불새>로 부터 관객이 이상스런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이정재에 대해 욕망을 가져버리는 일이 영화관람 도중 발생해 버린 탓일 것이다.그래서일까. 욕망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남자 김영후를 연기하는 이정재의 벗은 몸이, 그리고 고독한 눈빛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남는다.
<채명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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