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맥주를 다시 한모금 들이켰다. 계속 불꽃이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시청 쪽과 광화문 쪽의 맨홀에서도 불꽃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여러 개의 촛불을 켜놓은 듯이 보였다. 흡사 그녀의 오피스텔에서 피어오르던 촛불의 확대처럼 느껴졌다.
여자의 오피스텔에는 각양각색의 촛불이 즐비했다.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까지 앙증맞은 장식을 해놓고 있었다.
여자는 사내를 처음 만날 때부터 초를 준비했다. 긴 초가 다 타들어가도록 쾌락을 맛보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긴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내는 그것을 이루어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것은 정력의 한계라기보다는 영생할 수 없는 인간이 지닌 존재적 한계였다.
관계를 맺을 때마다 하나하나 새로운 촛불이 밝혀지고, 타다 만 초는 그대로 흔적이 되었다. 많은 초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조형미를 갖고 있었다. 촛농은 자유. 정형화되어 흘러내린 촛농은 하나도 없었다. 촛농은 섹스처럼 자유롭게 흘러내렸다. 자유롭게 흘러내린 촛농이 하나하나 새로운 세계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사내는 불꽃의 습성을 알고 있었다. 임의롭게, 그러나 대상이 있어야 했다. 날름거리는 불꽃. 그것은 바로 인간의 혀였다. 사내는 섹스의 과정에서도 그 혀를 충분히 활용했다. 날름거리는 촛불처럼 사내의 혀도 날름거리며 여자의 육체를 탐닉했다.
평상시 아무런 느낌도 느낄 수 없었던 여자에게서도 사내는 혀를 보면 성적 충동을 느끼곤 했다.
남녀의 입맞춤은 두 객체를 하나로 만들려는 욕망의 원초적 단계였다. 그 입맞춤은 욕망 이상의 것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단순한 입맞춤일지라도 그것은 욕망의 전이에 불과한 것이다. 시인과 가수들이 뜨거운 입맞춤을 그토록 노래하는 것은 입맞춤 뒤에 연결되는 좀더 강렬한 행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켜두었던 빨갛고 파랗고 노란 각양각색의 크고 작은 초의 불꽃이 날름거릴 때마다 사내의 혀도 불꽃이 초를 녹이듯 여인의 육체를 녹였다. 그것은 파괴를 위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있어서의 파괴가 여자에게 있어서는 파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것은 현상일 뿐이라는 것도 사내는 알고 있었다.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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