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지진 안전지대

컴퓨터 자판(키보드)에 실수로 커피나 물을 쏟으면 시쳇말로 먹통이 됐다가 물기를 말려주면 다시 제 기능을 찾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요즈음 키보드는 내부에 복잡한 배선 대신 얇은 필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이같은 키보드의 필름배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얇고 정교한 회로를 필요로 한다. 그 때문에 반도체는 「동판 에칭」과 유사한 화학적 방법을 사용해 회로를 형성하는데 워낙 정교하기 때문에 동판을 뾰족한 것으로 긁는 것과 같은 물리적 방법 대신 회로를 사진으로 찍어 축소현상해 불필요한 부분을 녹여 없애거나 필요한 부분에 금속이온들을 창에 김이 서리듯 증착시켜 회로를 구성한다.

사진촬영이나 현상 때 흔들리면 핀트가 흐려지는 것처럼 극미세한 반도체회로를 제대로 촬영하고 이를 「웨이퍼」상에 정밀하게 현상하기 위해서는 어떤 진동도 있어서는 안된다. 그 때문에 첨단 반도체공장이나 이에 필요한 핵심 공정장치 및 재료공장은 인근 도로 위를 지나가는 자동차로 인한 미세한 진동까지도 방지하기 위해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고 그도 모자라 그 위에 동판 같은 것을 씌워 외부 진동이나 습기 등으로부터 보호한다. 물론 공장내부도 나름대로 방진(防震)설비를 갖추고 해당 장비들도 정교한 장치가 돼 있다. 반도체나 관련장비 등을 제조하는 공장을 「땅 위에 떠 있는 배」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외부의 흔들림으로부터 이중삼중 보호되고 있는 이 반도체와 관련한 공장들도 이번 4.5도의 지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다행히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곳은 진앙지와 가까운 곳이었고 대부분의 반도체소자 업체들은 이번 지진으로 별 영향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장은 지진 같은 재해에 영향받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업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 이상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주장이 갈수록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반도체를 비롯한 공장들의 설계개념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