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 부품구매방식 전환 신중 기해야

국내 전자부품업체들이 전반적인 경기침체에다 최근에는 세트 대기업들의 경영악화에 따른 잇따른 비상조치로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부품업체들은 수년전부터 세트업체들의 해외이전 본격화에 따른 국내 부품 수요 증가세 둔화로 어려움을 겪어 왔고 올들어서는 상당수의 선발 세트업체들이 해외공장의 부품구매를 굳이 기존 국내 협력업체에 한정하지 않고 「경쟁력 있는 업체」를 선택하겠다는 이른바 「글로벌 소싱」정책을 추진, 그동안 세트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생각해온 국내 부품업체들에 비상이 걸려 있다. 이어 최근에는 경쟁력 10% 높이기 운동을 추진하면서 부품공급업체들에게 고통분담 성격의 공급가격 인하를 요구, 부품업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으나 이미 부품공급가가 상당폭 인하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일부 세트업체들이 구매방식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부품업체들을 한층 답답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트업체들이 현재 도입을 추진중인 구매방식은 신제품을 개발해 놓고 나서 부품 공급가격을 정하던 그동안의 방식과 달리 신제품 개발 전에 업체들에게 부품 예상공급가를 제출토록 해 이 가운데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에 개발 및 공급을 맡기겠다는 일종의 「입찰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트업체들이야 구매방식을 이같은 방식으로 바꿀 경우 신제품 가격을 개발 전부터 결정할 수 있고, 부품공급업체들간 경쟁을 유도해 부품 구매가격을 최대한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품업체들로서는 이같은 방식이 도입될 경우 부품업체 상호간에 공급선 유지를 위한 출혈경쟁이 일어날 것이 불을 보듯 훤한데다 앞으로는 세트업체와의 가격 등 「협상」은 꿈도 꾸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LG전자가 이미 지난 10월 경영방침 설명회를 통해 협력업체들에 이같은 입찰제 시행의사를 밝혔고 대우전자와 삼성전자의 몇몇 부문도 최근 협력업체들에게 내년부터는 신제품에 채용될 부품 개발에 나서기 전에 공급 가능한 가격을 제출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세트업체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구매제도 변경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 갈수록 치열해져 가는 국제경쟁에 대응하기 위함은 물론 내외부적인 경쟁력 강화 및 원가절감 압력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세트업체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구매방식 변경이 단순히 신제품에 채용될 부품 공급업체를 선정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부품가격질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본다.

부품업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트업체가 가격 인하폭을 제시하고 협력업체들과의 상담을 통해 가격을 조정해 온 기존 협상구도마저 기대하기 어려워 부품 가격질서 자체가 일시에 무너질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세트업체들이 최근들어 품질, 납기 등 가격 외적인 부분에 대한 협력업체들의 적극적인 협력 노력을 도외시한 채 가격 낮추기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납품업체들의 지적을 뒤로 하더라도 최근 「중소협력업체 지원」 대신 「납품가 인하」라는 말이 자주 들리고 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은 분명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경기가 좋을 때에만 찾는 동반성장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동반자로 인식, 함께 건강하게 성장하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납품업체들의 과당경쟁으로 국내 부품업체들이 부실화되면 결국은 세트업체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업체들이 엔高시절에 품질향상과 생산성 제고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듯이 세트업체들이 어려운 상황을 함께 견디며 독려하는 「대형」의 면모를 보여주기를 부탁한다. 부품, 소재산업의 취약이 근본적인 대일 경쟁력 열세의 원인이라는 말이 페이퍼워크용으로만 쓰여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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