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錫昊 미국 남가주대 교환교수
새로운 방송법 개정을 둘러싸고 지리하게 끌어왔던 갈등이 최근에 벼랑으로 치닫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방송언론에 대한 정부의 장악을 저지하겠다는 야당과 시장원리를 강조하며 방송시장의 구조적 개편을 주장하는 여당의 담론적 논쟁이 치열하다. 앞으로 이들의 갈등이 어떻게 풀릴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내다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 가운데 방송 또는 언론의 구조를 개편할 때마다 정치적 논의가 끊이지않았다. 그만큼 방송의 이념 논리가 시대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방송의 정치성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최근의 논의를 주시해 보면 방송의 내용보다 방송의 운영에 더 많은 중점을 두는 것 같다. 무엇을 내보내느냐가 아니라 누가 방송을 내보내느냐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방송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약간씩 편중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방송의 소유 방식에 따라 방송의 내용이 어느 정도 결정될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빼놓을 수 없는 방송의 요소는 시청자이다. 궁극적으로 국민의 눈과 귀에 색인되는 내용에 따라 방송의 평가가 결정된다. 아무리 위장된 방송내용이든 아무리 미화된 방송편성이든 깨어 있는 국민은 나름대로 방송을 평가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방송은 운영상으로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방송을 규제하는 정부, 방송을 실현하는 방송인, 방송을 접하는 국민 등 삼각관계의 원활한 조화가 형성될 때 비로소 건강한 방송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방송은 두 가지 요소를 함께 하고 있다. 하나는 「언론」(Journalism」이고 또 하나는 「오락」(Entertainment)이라는 사실이다. 방송의 기능은 언론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오락의 기능 면에서도 막대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방송의 오락적 기능은 단순히 소모적인 것이 아니라, 간과할 수 없는 문화성과 산업성이 깃든 것이다.
특히 뉴미디어 시대로 지칭되는 현대에 있어서 방송은 단순히 종전의 무선 방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신과 컴퓨터 기술이 필수적으로 접목되는 복합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기술로 전환되는 중이다. 따라서 방송을 둘러싸고 언론의 측면에서만 강조되는 이념적 논쟁은 설득력이약하다. 그리고 방송의 본질은 무선 기술에서 출발했지만 유선과 무선이 함께 어우러지는 기술적 도약에 힘입어 시간적, 공간적 제한을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극복한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
현재 우리의 방송이 겪고 있는 현안은 이념적 논쟁 외에 산업 기술적인 면에서 국가의 장래를 걸 만큼 심각한 지경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방송의 선진화를 위해 쏘아 올린 혼합형 무궁화 위성의 경우 방송의 운영상 공백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340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우주공간에서 손실되고 있는 형편이다. 케이블TV의 위상도 방송과 비교할 때 아직도 정확히 정립되지 못하는 미완의 매체로 남아 있다.
따라서 이 시대의 방송법 개정에 대한 논란은 어느 하나에 치중해서 논박을 유발해서는 안된다. 한국의 정권 교체의 역사에 있어서 방송의 존재가 애증의 대상으로 점철되었던 과거에 너무 연연하기보다는 내일의 우리 후손들을 위해 기초기술의 기반화를 닦는 일환으로 방송의 위상을 설정하는 작업도 뜻잇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방송의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갈등도 반드시 필요하겠으나 방송의 산업적 기술성을 제외 시켜버린 채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좀더 광범위한 시각으로 방송법의 개정에 관한 논의가 돌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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