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그로브 인텔회장이 한국에 왜 왔나.』
최근 별다른 신제품 발표도 없는 상황에서 방한, 관련업계에서는 한국법인의 지사장 교체와 관련한 지사 독려차원의 의례적인 방문이라는 분석까지 나돌 정도로 방문이유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그로브 회장은 2일 저녁 한국에 도착해 4일 새벽 출국할 예정이어서 사실상 체재일은 하루에 불과하다. 2일 저녁 공항 도착부터 3일 저녁까지 만 하루에 걸쳐 삼성·삼보 등 주요 PC메이커 관계자와의 만남을 비롯, 인텔의 인터네트 전략 홍보차원에서 개최되는 세미나 참석 등으로 빠듯하다.
방문일정을 보면 그로브 회장의 방한목적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호환칩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삼성전자·삼보컴퓨터 등 최대고객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과, 향후 인텔의 인터네트 전략을 소개하는 것 등 두가지로 집약되는 것 같다. PC의 핵심부품인 CPU에 주력하고 있는 인텔이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인터네트 열풍에 부응하는 것은 관련업체로서는 당연히 취할수 있는 행동이지만 회장이 직접 인터네트 전략을 설명한다는 사실 자체는언뜻 보기에도 인텔과 부합하지 않는다. 때문에 관련업계는 인텔이 인터네트를 지향하는 것이 향후 컴퓨팅환경의 주도권에 대한 불안감에 따른 것이라고분석한다.
지난해 몰아친 인터네트 열풍은 인텔에 대한 반발 세력들이 목소리를 키울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윈텔진영(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하는 이들은 『인터네트 시대를 맞아 인텔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강조한다. 『인터네트에 있는 소프트웨어는 어느 컴퓨터에서도 잘 동작하므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나 인텔의 「x86」 칩 아키텍처 같은 기존의 표준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오늘날 데스크톱의 시대에는 컴퓨터 업계를 이끌고 있지만 내일의 네트워크 시대에는 오늘과 같은 번영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인텔 회장의 방한은 인터네트 시대에 대한 적극적인 대비책을 홍보하는 것이 주목적일 수 밖에 없으며 내용은 인터네트에대항하는 대신 인터네트를 끌어안는 것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있다. 또한그간 볼 수 없었던 호환칩 업체들의 약진도 이번 방문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사이릭스와 AMD 등 후발 경쟁업체들이 인텔의 아성을 위협하는 대대적인 「펜티엄 따라잡기」에 나서면서 인텔의 독무대였던 x86계열 CPU 시장에 큰 변화가 일고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인텔의 아성을 흔들고 있는 변화의 핵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일고있는 「사이릭스 돌풍」이다. 사이릭스가 올 초 발표한 「6X86(암호명 M1)」은 인텔의 펜티엄을 겨냥해 출시한 제품. 6X86은 가격과 성능면에서 인텔의동급 제품에 비해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이릭스가 간판 제품으로 앞세우고 있는 「6X86-P1백20+」는 펜티엄 1백20MHz보다 값은 20%정도 싸면서도 처리속도는 오히려 더 빠르다. 최신제품인 「P1백66+」은 아키텍처 구조상 인텔의 펜티엄프로의 특징을 상당부분 탑재하고 있다.
넥스젠을 인수한 AMD의 행보도 종전과는 달리 상당한 힘이 실려있다. AMD는 하반기에 펜티엄프로와 견줄 수 있는 K6를 내놓을 계획이다. 이같은 경쟁체제는 그간 인텔이 주도해온 CPU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상황이다. 업계가최근의 CPU시장을 주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변화때문이다. 즉 인텔의최대 강점으로 꼽혀온 「치고 빠지기」전략이 펜티엄프로에서 막혀 제구실을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최근 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칩시장 분화현상도 인텔에게 결코 호재일 수 없다. PC위주로 진행돼온 마이크로프로세서시장은 각종 전자기기의 멀티미디어화 등 첨단화 추세에 힘입어시장분화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64비트 리스크칩 임베디드시장이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고, 네트워크 컴퓨터용 저가형 마이크로프로세서도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게다가 인터네트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는 자바 명령어를 입력한 「자바칩」을 상반기중으로 내놓아 인터네트 전문 하드웨어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이같은 현상은 인텔의아성에 적지 않은 시련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인텔이 독보적인 강자로부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표준제품」으로의 명성이 시장분화로 상당부분 엷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브 회장은 『앞으로 전세계 모든 네트워크는 PC로 연결될 것』이라고말한 바 있다. 이는 또 이번 강연회의 중점사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로브회장은 『업계 한편에서 요즘 한창 화제에 오르고 있는 5백달러짜리 인터네트 전용장치가 PC를 대체하게 되면 우리 역시 그 조류에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고성능 칩 수요에 주력해야할 인텔의입장에서는 인터네트 전용장치의 등장이 결코 호재일 수는 없다.
인텔은 기존 사업을 강화하고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이윤을활용하고 있다. 이는 이제까지 인텔의 최대 강점으로 꼽혀왔다. 인텔은 현재평균 10억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칩 제조설비를 5곳에 건설하고 있지만 맹추격중인 호환칩들과 고성능CPU의 평가를 절하하는 인터네트 환경 확산으로 숨이 가쁘다. 인텔이 「펜티엄 프로」나 「P7」 등 후속제품의 개발과 생산능력 확충에 쏟아부은 돈이 변화된 패러다임에서 어느정도 효력을 발휘할 수있을지 의문시된다.
<김경묵·정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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