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행정규제 유감

朴在麟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상무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어떤 중소기업 사장이 한 모임에서 『우리나라에서법대로 사업해서 성공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하자 동석했던 기업인들이『당신 사업 처음 하느냐』며 면박을 주었던 일이 있었다.

물론 농담처럼 사석에서 오고간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서 기업활동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행정적 규제가 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기업활동에 대한 행정규제는 기업의 창의와 경쟁을 제한하게 되어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효율성을 저하시켜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하지만 실제로부딛쳐 보면 투자나 기술개발 등 기업활동 자체에 제동이 걸리는 예가 허다하다. 더욱이 세계무역기구(WTO)체제라는 무한경쟁의 세계화·개방화시대에는 행정규제가 기업의 존립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 90년부터 행정규제 완화를 정책과제의 하나로 추진하기 시작했고 특히 93년에 출범한 문민정부는 이것을 제도개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를 위해 행정규제완화위원회·행정쇄신위원회 등이 발족됐고 규제완화특별법이 제정되었으며 民官 공동의 추진계획을 수립, 시행함으로써 실제로많은 분야에서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 왔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93년 문민정부 출범 이래 지난해 8월까지 1천4백69개과제중 1천3백41건이 이미 개선되었고 1백28건의 과제가 추진중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례로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경쟁촉진 및 진입제한 완화 등으로 신규 정보통신 서비스사업에 재계의 투자가 활성화되고 이동무선전화기 등의 가입설비비 폐지 및 기술기준 확인증명제도의 개선 등으로 관련업계의 수요가 급증하고 이용자들의 비용부담도 크게 경감되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지난 한해만도 38개 부문의 규제가 완화되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재계는 그동안의 추진성과가 단편적이어서 아직도 그 성과를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며 더욱 더 실질적인 행정규제 완화를 촉구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규제를 하고 있는 측의 입장이나 논리도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있고 또 경제단체들이나 업계에서도 총론과 분위기만 갖고 단기간에 너무성급한 기대를 갖고 있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문제는 기존의 행정규제도 보다 과감히 완화해야 하지만 지금도 시류의 사유를 내세운 새로운 행정규제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 새로 도입되는 규제형태를 보면 소비자보호·환경보전·부동산투기억제·저작권보호등 대부분 사회발전을 사유로 하고 있고 얼핏보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 방법이 그동안 익숙한 행정규제 일변도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전자산업 측면에서 새로운 규제들을 보면 간이무선국 장비(휴대형 무전기)에 대한 기술기준 확인증명제, 가전제품 등에 대한 리콜 서비스제, 에어콘등에 대한 폐기물 예치금제 등이 있고 또 제조물책임법·사적복제보상금제등의 도입도 추진되고 있다.

기술기준확인증명제는 이미 지난해 문제가 되어 97년에 폐지가 예고된 품목까지 시행토록 돼 있는데 이런 것은 졸속행정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리콜 서비스제는 형식검정제를 시행치 않고 있는 미국 등에서 시행하는 제도인데 우리는 형식검정제를 그대로 두면서 또다시 같은 목적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이중적 규제제도이다. 에어콘에 대한 폐기물 예치금 제도는 에어콘이 아직까지 보급 초기단계인 데다 부품의 재활용률이 높아 廢에어컨을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인데 이를 폐기물예치금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부가 개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행정규제 완화의지가 아직 공직사회에 충분히 인식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정부는 새로운 행정규제를 도입·시행할 경우 담당자를 기록케 하는 행정규제 실명제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하니 한번 더 기대해 보아야 하겠지만 잘못하면 정책의 불신만 초래할 우려도 없지 않다.

오늘날처럼 다양화되고 자율화된 사회에서 행정규제의 실효성과 그 부작용에 대해 좀더 깊이 따져 보아야 할 것이며 세계화라는 무한경쟁 속에서 우리기업만 손발을 묶는 우를 범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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