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시대의 규제 (8)
멀티미디어시대가 개막되면서 이 시대에도 규제가 필요할 것인가. 만약 규제가 필요하다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며 기존 규제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고, 또 누구에게 규제를 맡길 것인가 하는 여러가지 질문들이 제기되고있다.
멀티미디어를 구성하는 주요 부문은 컴퓨터.통신.방송 등으로 크게 나눌수있다. 지금까지 이들 부문은 각각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규제되어 왔다.
가령 통신부문은 전통적으로 서비스업체들에 대해 규제해왔는데 이는 서비스제공업체들을 라이선스에 구속시키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통신부문 규제 당사자들은 업체들의 시장진출이라든지 서비스 이용요금, 장비들간의 상호 호환성에 필요한 기술적인 사항들을 문제 삼아왔다.
또 방송부문은 어떤 내용은 방송이 가능하고 어떤 부문은 방송이 불가하다는등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규제가 주종을 이뤘다. 반면 위의 두 부문과 달리컴퓨터부문은 거의 규제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 3개 부문간의 보다 큰 차이점은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제공되는가 하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통신분야에서 정보의 흐름은 대화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용자간에 "1대 1"로이뤄지는 반면, 방송부문은 대화성이 없이 "1대 다"의 방식으로 정보가 제공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의 흐름은 양쪽의특성을 모두 갖는다. 예컨대 전자메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 대1,1 대 다라는 방식이 모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외에 수많은 정보게시판에서이용자들이 정보를 취사 선택하는 "다 대 1"의 정보제공 또한 네트워크에서는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들 3개부문이 종합적으로 제공되는 멀티미디어시대는 몇가지 특징을 가지고 진전된다.
첫째, 멀티미디어 서비스는 광대역 서비스다. 이는 기존의 전화.케이블TV네트워크와는 달리 전송되는 정보의 양이 매우 많다는 의미다. 고기능.광대역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정보매체의 영역도 무한히 넓어지고 있다.
둘째, 멀티미디어 시스템은 디지털방식을 기반으로 한다. 정보의 갈무리.
저장.처리.전송 등의 과정이 디지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멀티미디어시대에는 정보의 이용단위가 가족이나 학교.직장이아닌 개인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전제로 한다면 멀티미디어시대라고 해서 전시대와 특별히 다른규제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규제들이 방송.통신.출판부문에서 가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이들 규제 가운데 일부가 멀티미디어시대에도 존속된다면 멀티미디어 서비스의 완전한 제공에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미디어의 교차소유 제한과 이에 입각한 시장진출의 금지, 서비스 요금을 둘러싼 규제 등은 더욱 그러하다. 음란물 규제 등 일부 사안과 관련한규제는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의 개발을 고려한다면 규제의 대폭적인 완화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즉, 규제에 융통성을 두는 한편통신이외 다른 부문에서의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규제의 담당자로서 국가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가.
국가는 기본적으로 규제자로서,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역할과 함께 기술 개발자로서의 역할 등을 수행해왔다. 아직까지 국가를 대신할 만한 규제 담당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각국 정부들은 직접적인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있었다. 그러나 80년대로 들어서면서 이런 위치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국가들은 민간업체들에게 통신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자리를 물려주었으며 어떤국가의 경우는 정부가 정보통신 기반설비의 운용에서도 한발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각국에서는 서비스를 둘러싸고 민간업체간 경쟁이 시작됐고국가는 관련 법규의 제정에만 힘을 기울였다.
한편 국가는 대규모 통신사업에 참여, 기술 개발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인터네트는 미국의 정부기관에서 시작된 것이었고, "에스프리 프로젝트"또한 유럽각국 정부들의 참여아래 진행된 것이었다.
각국 정부는 또 통신의 자유가 국민의 기본권리로 떠오르게 됨에따라 국민들이 공공 네트워크에 접속,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에 따라 공공 네트워크 이용을 위한 규제개념도바뀌었다. 예전처럼 매체가 많지 않아 매체의 소유에 제한을 받거나 서비스이용요금이 비쌀 때와는 달리 매체의 수가 급증하면서 국가가 규제를 완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20개정도 채널의 서비스만을 제공할 수 있었던 1세대 케이블TV시대와채널 수가 두배이상으로 증가한 2세대 TV시대와의 규제가 동일할 수는 없는것이다. 마찬가지로 위성TV가 보편화되면서 채널 수의 한계도 거의 없어지고데이터 압축기술부문에서 커다란 진전이 예상되는 차세대 디지털TV시대가도래하면 규제의 내용 또한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규제는 어떤 원칙을 가지고 수행되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소프트웨어나 데이터베이스.영화 등의 정보는 멀티미디어시대의 개막과함께 명암을 동시에 지니게 됐다. 한편으로는 판매 등 대량 보급을 통해정보 제작자들이 많은 이익을 취할 수 있게된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전자네트워크를 통한 불법유통이 훨씬 더 수월하게 됐기 때문이다.
미 소프트웨어출판업체 연합회(SPA)에 따르면 지난 94년 한해 불법복제로인한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피해규모가 총 80억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산되고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불법복제를 기술이전의 한 방법으로 간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도국에서는 정보관련 제품의 가격이 높은 편이어서 합법적인 제품에대한 복제요구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불법.합법논쟁을 차치하더라도 불법복제가 정보마인드의 확산을 저해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창작에 따른 보상이 없다면 프로그램 제작자들이상품을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신부문 규제담당자들이 불법복제를 막는데 주력하고 있지만 규제만으로불법복제를 근절시키기란 대단히 힘들다. 이에 선행되야 할 것은 기술이다.
개방된 표준이 뒤따르는 인터네트에서의 암호화 기술의 발전은 규제이상으로상거래에서의 안정성을 높여줄 것이 분명하다.
방송부문에 있어서는 방송시그널 수신에 대한 통제가 있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부분의 유선TV업체들은 암호화 시청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들이 보편화되어야만 비즈니스TV.호텔TV 등 특정 용도를 위한 활용폭도 넓어지게될 것이다.
지난날 규제 담당자들은 매체의 교차소유, 서비스의 교차제공 등을 막는데주력해왔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멀티미디어시대의 도래와 함께광대역 기술의 발전으로 채널의 용량이 증대하면서 이런 규제는 설득력을 잃게 됐다.
앞으로의 규제 담당자들은 통신네트워크의 소유집중과 그 네트워크를 통해기득권을 최대화하려는 업체들의 기도를 막는 방향으로 규제해야 할 것이다.
멀티미디어시대에 하나의 업체가 네트워크와 동시에 프로그램도 관장하는것은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중파 방송업체들이네트워크와 함께 그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할 프로그램을 보유하고자 하는기도가 있다면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규제 담당자들은 하나의 업체가 어떤 분야에서 차지한 주도적인 위치를바탕으로 다른 분야를 압도하고자 하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
현재까지는 각 멀티미디어 관련 부문에서 단일 업체가 시장에서 지배적인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운용체계(OS)인 "윈도"라든지 노벨사의 네트워킹 소프트웨어인 "네트웨어", 인터네트 브라우저인 "네트스케이프", 반도체부문의 인텔사등은 그러한 경향이 다분하다.
단일업체가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시장에서의 우월한 위치를 가지고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의 전송, 하드웨어의 특정부품에서 우위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규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부문에서의 우월한 위치를 다른 부문에 활용하려고 시도하는 업체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결론적으로 멀티미디어시대의 규제는 네트워크 설비를 가지고 있는 업체가프로그램의 제공을 통해서도 이득을 확보하려는 것과 한 부문에서의 유리한위치를 활용해 다른 부문으로 진출하려는 기도를 막는 쪽으로 모아져야할 것이다.
〈정리=허의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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