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3주년특집] 러시아의 컴퓨터산업

컴퓨터산업 부문에서 러시아가 유아단계에 있다는 지적은 이제 사실이 아닐는지 모른다. 러시아의 컴퓨터 산업이 크게 기지개를 켜고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는 물론이고 러시아의 중요한 산업지역에서 컴퓨터 시장은 이제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사회가 전문화시대로 접어들면서 컴퓨터 산업도 전문화돼 분야별로 재편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고, 은행을 중심으로 새로운 고객들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멀티미디어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보산업도 이제는 미래의 꿈이거나 서방의 부유한 국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특히 교육 부문에서 멀티미디어의 성장 은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 러시아의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대목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인 전망과 더불어 "옥에 티"가 없지는 않다. 컴퓨터 정보를 도용하거나 파괴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면서 정보를 보호하는 문제가 크게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컴퓨터 산업이 도약기에 들어섰다는 것은 이 나라와 이웃하고 있는우리에게도 커다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는 한국정보산업계의 새로운 수출시장으로 또 정보화기술의 협력파트너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의 컴퓨터및 관련산업의 동향을 살펴본다.

컴퓨터 산업전반시장조사회사인 IBS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8월 현재 러시아의 컴퓨터시장은 15억달러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컴퓨터 시장 이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5~6년의 짧은 연륜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성장 속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를 취급하는 거의 모든 외국 회사들이 러시아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러시아 정보산업시장의 성장세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국제 컴퓨터 클럽 레본 압칠란 회장의 말이다. 이 클럽은 서구의 굵직굵직한 컴퓨터 회사 회장을 해마다 러시아로 초청해 포럼을 갖고 있다.

러시아의 컴퓨터 산업이 성년기에 들어섰다는 증거는 이 곳에서 열리는 국제컴퓨터 쇼에 참가하는 업체들의 규모로도 알 수 있다. 지난 4월 모스크바 에서는 "컴텍95"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회는 러시아를 비롯한 옛소련 지역에서 열리는 첨단 전시회 가운데 가장 권위있고 규모가 큰 행사이다. 이행사에 올해 6백여개의 세계적인 기업이 참가해 전시공간이 없어서 신제품을 전부 선보일 수 없었을 정도이다.

러시아의 정보산업, 그중에서도 컴퓨터 산업이 유아기를 벗어났다는 것은컴퓨터 도매 회사들의 "배짱전략"에서도 느낄 수 있다. 러시아에는 "탐포트" 사를 비롯한 큰 컴퓨터 판매회사들이 여럿 있고 이들이 컴퓨터 유통을 좌우하고 있다. 그런데 새로 러시아 시장에 진출하기로 한 서구 컴퓨터 회사의 경우 이전에는 이들 러시아 유통회사와 선을 대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현지의컴퓨터 유통회사들이 너도나도 서구의 새로운 "신입생"을 환영한 까닭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러시아에 뛰어드는 서구의 진출기업엔 러시아 현지의 컴퓨터 도매회사들과 접촉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 리한테 와서 자기들의 거래 조건을 얘기하고 계약을 맺자는 외국 기업이 많습니다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기란 이젠 정말 어렵게 됐습니다" 89년부터 아크바리우스 라는 컴퓨터 유통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이고르 갈킨씨의 말이다. 불공정한 거래라고 할 정도로 이익이 보장되고 거래 조건이 좋아야 새로 진출하는 외국 기업에 길을 열어주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러시아의 컴퓨터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시장의 전문화도 눈에 띄게 현저한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요즘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사이크 베스트"나 스토로에쉬 솔루션즈"라는 이름들은 그 한 예에 불과하다. 이들 기업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새로운 디스크 장치만을 개발하고 있는데 정보저장시스템분야에서 탁월한 위치를 굳히고 있다. 스토로에쉬의 디스크 장치를 공급하는한 회사의 그리고리 코발리그 부대표는 "이제 좁은 의미의 전문화가 우리나라의 컴퓨터 시장을 설명하는 주요한 단어가 되었다"고 귀띔한다.

전산망을 판매하는 회사들도 보다 복합적인 제품을 판매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예를 들어 6년전에 설립된 "옵티마"라는 망 회사는 하도급 업자들과 협력하여 완전한 오피스텔과 첨단 컴퓨터망을 같이 판매하는 전략을 쓰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도 이전처럼 서방으로 달아나기 위해 미국이나 독일대사관 앞에 줄을 서고 있지는 않다. 예브게니 비실로프와 예브게니 카스페 르스키가 "신세대 프로그래머"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지난해컴퓨터 바이러스를 없애는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고 러시아의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비 실로프는 최근 윈도즈 환경에서 쓸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텍스트 편집 프로 그램을 개발하여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대형 컴퓨터 생산도 중단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정보화에 대한 정부 차원의 분명한 프로그램이 없는 상태에 서진행되고 있어 민간부문의 산업 성장을 대변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IBK와 스틴스 코만 같은 대형 컴퓨터 조립회사들은 여전히 강력한 프로세서를 사용하여 새로운 제품을 고객들에게 내놓고 있다. 20~30개에 이르는 중대형 컴퓨 터제조회사들이 어림잡아 한달에 1천여대의 중대형 컴퓨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하고 있다.

물론 중대형 컴퓨터는 외국에서 들여오는 부품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스틴스 코만의 세르게이 아니시모프 대표는 "아직 러시아산 대형 컴퓨터가 인기가 없기 때문에 부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손으로 대형 컴퓨터를 국산화하자는 주장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컴퓨터 산업과 컴퓨터 기술을 뒤에서 밀어주고 있는 분야는 단연 신흥금융계라고 할 수 있다. 크고 작은 은행이 하루에도 여러개씩 생겨나면서 전산화를 다퉈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금융계에 가스회사와 자동차회사및 광산기업들이 전산화에 가세하여 컴퓨터 붐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신규투자액이 많지만 컴퓨터화와 자동화 없이는 경쟁에서 앞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이다.

컴퓨터 시장이 커지면서 이 분야의 정보와 분석기사를 전하는 매체도 20여 개로 늘어났다. 이들은 기업 인기도와 시장이나 제품의 분석 정보를 싣기도하고 성장하는 기업이나 기업인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런 새로운 현상은 중앙에서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앞으로의 컴퓨터 시장은 서비스를 위한 하부구조를 어떻게 구축하고 지역 판매망을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판가름날 것 이라고 이 곳의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멀티미디어멀티미디어분야 가운데 러시아에서 가장 활발하게 가시화되고 있는 분야는 교육 부문이다. 얼마전에 설립된 국가 멀티미디어센터가 그 곳이다. 멀티미디어분야에서 처음이자 유일한 정부기구인 멀티미디어센터에서는교육용 멀티미디어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이를 디스크에 담아 전국에 보급한 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 센터는 특히 러시아어와 외국어를 공부시키고, 러시아의 문화유산을 교육목적에 맞게 프로그램화하여 보급하는 일을 주임무로 삼고 있다. 이 곳에서개발된 "컴퓨터 멀티환경"이라는 과목을 몇몇 종합대학과 단과대학에서 이 미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멀티미디어센터는 전국의 20개 도시에 지부를 갖고 있고, 보다 유용한 정보를 수집할 목적으로 유럽과 미국에도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재정적인 지원을 정부예산에서 받는 이 센터는 그러나 개발된 제품을 보급할 때는 일체의 경비를 수혜자들로부터 받지 않는다. 러시아의 고등 교육기관에 유학오는외국 학생들도 그 수혜자 가운데 하나이다.

이 센터는 앞으로는 외국의 정부나 기관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상업적인 목적으로 멀티 미디어 디스크를 제작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고심중인 컴퓨터 정보 보호지금같은 컴퓨터 붐이 계속될 경우 러시아의 전문가들은 오는 97년께면 러시아에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 정보기기가 약 2천5 백만대 가량 보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이정보의 보안문제이다. 정보의 비밀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산업비밀의 약 20%가 무방비 상태로 빠져나가거나 파괴되어 정보 산업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비보호는 프로그래머들의 고의적인 행동에서 유발되기도 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일어나기도 한다. 프로그래머에 대한 해고와 스카우트바람이성행하면서 얼마전 어느 은행에서는 해고에 앙심을 품은 전산 전문가가 컴퓨터에 고의적으로 방해 프로그램을 집어넣고 나가 이 은행의 돈이 다른 은행으로 쏟아져 들어간 사례가 있기도 했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이름난 상호 의컴퓨터보다는 별로 잘 알려져있지 않은 작은 메이커제품에서 자주 발견되고있다. 통신 라인에 특수 장치를 달아 남의 정보를 가로채거나 팩시밀리나 모뎀 상에서 남의 정보를 왜곡하는 신종 범죄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국영 자동차 회사인 아프로 바즈에서 일어난 이른바 아프로 사건이 그 대표적인 것으로 경쟁사의 전산 전문가가 아프로 바즈의 컴퓨터 통신을 교란시켜 엄청난 금액의 손해를 끼쳤다는 소식이다.

이 때문에 요즘 러시아에서는 정보를 비밀화해주는 암호회사들이 10여개 생겨나 성업중이다. 암호화기술로는 고도의 비선형적 알고리즘이 널리 이용되고 있다. 다만 개인기업들이 영업비밀의 보호 지침을 자체적으로 마련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반면 정부는 기술보호의 지침을 정부 차원에서 표준안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모스크바=김종헌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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