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월드] 번들용 제품 SW시장 "천덕꾸러기"

소비자들이 제값을 치루고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는 얼마쯤될까.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들어 PC를 구입한 사람중 유통점에서 정품 소프트웨어 를 구입해 설치하는 경우는 전체의 30%를 밑도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워드프로세서나 스프레드시트, 데이터베이스 등 3대 업무용 패키지를 구입한 사람은 전체의 10%에도 못미친다.

그렇다고 이들 대부분 PC사용자들이 불법복제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는것도 아니다.

이들 공짜 소프트웨어의 정체는 다름아닌 대기업 PC메이커가 제공한 정품 번들 Bundle 소프트웨어다. 올해부터는 멀티미디어 주변기기업체와 컴퓨터전 문서적 출판사 및 잡지사 등도 가세하고 나서 정품의 옷을 입은 공짜 소프트 웨어를 더욱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번들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업체들이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을 대표하는 간판급 기업이라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한글과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 LG소프트웨어 등 한국의 소프트산업을 주도한다고 자처해 온 메이저업체들이 공짜 소프트웨어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업체는 그룹사를 통해 OEM형태로 제품을 공급하거나 특정 기업과 손잡고 번들제품을 경쟁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주요 PC메이커들이 번들로 제공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목록을 살펴보면 이같은 실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표참조>공짜 소프트웨어 공방이 가장 치열한 분야는 PC마다 필수품으로 하나씩 끼워주는 워드프로세서 제품군. 삼성 은 자사의 멀티미디어PC 매직스테이션 시리즈에 6만5천원씩 판매되는 워드프로세서 훈민정음을 한 카피씩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훈민정음4.0의 경우 지금까지 약 10만카피가 번들제품으로 공급됐다. 지난해 무려 25만카피나번들 된 훈민정음3.0까지 합치면 35만카피에 육박하는 수치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훈민정음이 번들제품을 포함, 올해까지 총 50만카피가 판매돼 글을 바짝 추격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삼성은 또 올해 롯데 직영매장과 소프트웨어 유통전문점을 이용한 특판, 그룹차원에서 추진중인 컴퓨터 2백만명 무료교육 이수자를 대상으로한 할인판매 등도 계획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전문업체인 한글과컴퓨터(한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컴은 그동안 대우통신에 4만카피 이상, 한국IBM과 뉴텍컴퓨터에 각각 1만카피 가량의 글2.5 제품을 공급한 상태다. 한컴은 그러나 5대 PC메이커를 포함한 주요업체를 대상으로 일정수준까지만 번들제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무상배포와 관련, 한컴은 글2.5를 내놓으면서 윈도즈용 글2.0을 무료로 업그레이드해 주는 무상쿠퐁 판매정책을 채택해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포스데이타가 엄청난 광고홍보비를 지출하면서 전략제품으로 밀어부치고 있는 일사천리도 3대 번들제품중 하나.

포스데이터는 지난 3월 뉴텍컴퓨터와 한화통신 등 일부업체에 일사천리 3만2 천카피를 번들형태로 판매하는 등 피치를 올리고 있다. 이 회사는 다음달부터 세진컴퓨터에 월 1만개 가량을 번들로 공급할 예정이며 LG전자의 심포니 홈 모델에도 제품을 번들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포스데이타는 삼보컴퓨터의 프린터 스타일러스에도 클립아트 에디트용으로문서저장기능을 제외한 일사천리 전체 제품을 공급한 상태고 영진출판사 학 습용 서적에도 부록 형태의 CD롬 타이틀로 제품을 공급했다. 일사천리는 지난해에도 유통판매 5만개를 포함, 컴퓨터 잡지부록 및 번들제품으로 총 17만 카피를 판매했다.

LG소프트웨어도 지난해부터 윈도즈용 워드프로세서 윈워드를 배포하면서 이름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LG소프트웨어는 윈워드1.0을 지난해에 총 10만여카피 공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가운데 정상적인 경로를 거쳐 판매된 제품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LG는 최근 발표된 윈워드2.0은 무상배포를 전면 중단한 상태. PC통신 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한 공짜 소프트웨어 배포가 기업이미지 개선이나 제품소개방안으로 부적합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LG는 지금까지 2.0버전은 판매개수가 1만개에 불과하지만 조만간 LG전자와 세진컴퓨터에 제품을 번들로 공급할 계획이어서 전체적인 판매수량이 크게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부 업체들이 목소리를 높였던 소프트웨어 제값받기운동은 이미 빛을 바랜지 오래다.

SW업계가 번들제품에 무게중심을 싣고 있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먼저 올 8월로 예정된 윈도즈95 발표가 임박했다는 점이다. 윈도즈95는 도스와 윈도즈를 하나로 통합한 제품. 매킨토시와 같이 마우스 하나로 대부분의작업이 가능한 획기적인 그래픽환경의 운용체계다. 도스가 필요없는 시대가눈앞에 닥친 것이다.

환경이 바뀌었으니 응용프로그램도 바뀌는 게 당연하다. 논길을 달리는데는트랙터가 그만이지만 새로 도로를 내고 아스팔트 포장까지 했다면 굳이 트랙 터를 고집할 이유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음달 발표될 예정인 윈도즈95는 16비트 코드체계로 설계된 윈도즈3.1과는 달리 32비트 운용체계로 고속처리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려면 32비트 API를 이용해 새로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한다. 또 윈도즈3.1 환경에서 작성된 일부프로그램은 윈도즈95에서 충돌을 일으키거나 오동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기존 운용체계와 완전히 다른 윈도즈95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시장 변혁기가 조만간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성급한 업체들이 무작정 깔아놓기식 번들까지 강행하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시장선점을 위해서다.

유통판매에 대한 부담감도 주요한 원인이다. 싼값에 제품을 처분한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시장에서 성공할런지 여부조차 불확실한 제품을 한꺼번에 수백 카피에서 수만카피까지 팔아치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몫돈까지 챙길수 있으니 SW업체들이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소프트웨어 업체가 정상적인 유통판매보다는 번들제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간판급 SW업체들이 한국의 빌 게이츠를 꿈꾸면서 참신한 제품을 개발중인 중소업체들을 선도하기는 커녕 도리어 가격구조를 왜곡시켜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그는 또 "공짜 소프트웨어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SW전문점을 찾아다니면서 값비싼 제품을 제값에 구입하겠느냐"고 반문한다. 남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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