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특강] 전문가에게 듣는다;케이블TV 성공위한 제언

<전석호> <>1954년 전북 군산 출생 <>고려대 신방과 졸업 <>뉴욕주립대 커뮤니케이션 석사학위 취득 <>미 남가주대 아넨버그 커뮤니케이션스쿨 박사학위 취득<>고려대.중앙대 강사 통신개발원 연구위원 역임 현재 중앙대 부교수 <>논문 "쌍방향 케이블TV의 수용성에 관한 연구" <>저서 "정보사회와 언론"(공저) "뉴미디어조사방법" "정보사회론" 예견했던 대로 케이블TV의 출범이 부진해 보인다. 정부와 해당 사업자들, 그리고 유관단체마다 케이블TV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그동안 애를 써왔다. 그러나 케이블TV의 독특하고 어려운 기술과 경제적 속성에 부딪혀 애쓴 만큼 여러가지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몹시 안타깝다. 더구나 그동안 프로그램의 창의력과 가입자 확보에 대한 우려에 치우친 나머지 가입자를 연결해주는 전송망 구축을 사전에 너무 간과한 것 같다. 기간산업으로서의 전송망 사업자를 너무 신뢰했던 것이다. 또한 많은 비용을 들여 케이블TV에 대한 각종 홍보활동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케이블TV에 대한 국민적 인지는 높아졌을지 몰라도, 적극적인 가입의사는 기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사업자 내부에서도 드러난다. 문화적 창의를 표방하고 사업자로 선정되어 화려하게 출범 테이프를 끊었음에도 계속되는 투자요구에 멈칫거리는 경우가 그것이다. 애초에 케이블TV의 경제성을 충분히 고려했었다면 결코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다. 이제 미루어왔던 본방송 일자도 얼마남 지 않았다. 지적한 것 이외에도 문제점은 상당히 많지만 국민과 약속한 일정 은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 본격적인 평가는 본방송 이후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다만 지난 1월 "전자신문"의 지면을 통해 정부.협회.위원회 관련인사 들이 좌담하며 결론짓던 케이블TV 개국에 대한 낙관론은 현재 시점에서 볼때 잘못 예견된 것임에는 틀림없다.

케이블TV의 국내 정착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냉소적인 비판보다는 격려하는 마음으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케이블TV야말로 국내에 뉴미디어의 대중 화가 어느정도 가능한 것일지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케이블TV의 매체 적 속성은 단순히 정보분야의 기술적 첨단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케이블T V는 기존 TV의 연장이자 미래 멀티미디어에 까지 연결되는 수로에 위치하며 사회변동에 미치는 잠재력을 높게 지니고 있다. 케이블TV를 통해 유통되는 영상물 모두가 현재를 반영하는 동시에 미래를 이끄는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대하는 케이블TV의 다채널이야말로 제한된 공중파TV 의 한계를 극복, 문화적 다원성을 실현시킬 중요한 기술적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케이블TV가 지니는 기술적 가치는 문화적 상승효과가 나타날 때 그 진가가 발휘될 것이다.

이렇듯 케이블TV의 긍정적 기능성을 인정하면서 왜 우리는 케이블TV의 출범 을 긴장과 불안으로 바라보는가. 주관적인 논리에 그칠지 모르지만 두가지 면에서 살펴보고 싶다. 첫째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케이블TV를 비롯해 모든 새로운 뉴미디어 기술이 그렇듯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민주적인 바탕으로미국에서 태어난 기술산물이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며 반민주적인 사회환경 속에 이전되기까지에는 매우 어려운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합리성과 논리성이 인간생활의 질적인 측면을 반드시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사회가 낳은 인간성 상실의 갖가지 폐단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미래의 중추 기술분야로서 뉴미디어 또는 정보기술의 본질은 조그만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한 논리적 완벽성과 인간의 편익을 가장우선시하는 합리적 극대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서구사회, 특히 세계제일의 국가인 미국을 키워낸 사고철학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생활주변에 자리잡은 모든 기술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직은 선진국만큼 미치지 못하는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요소들 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장기적인 연구개발보다는 단기적 이익에 그친 제품 생산으로 인해 소비자 입장에서의 국민적 피해가 얼마나 막심한가. 논리가 결여되니 제품의 수명이 불안정하고 편익이 간과되니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제 뉴미디어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차원에서 그러한 단기적 안목의 적당주의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여건에서 케이블TV의 기간구조의 대부분은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그 외국기술을 사회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합리성과 논리성이 결여된다면 안정된 정착이 이루어지기까지수많은 시행착오가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그 손실의 규모는 엄청나게 클 것이며 손실의 범위는 경제뿐 아니라 문화적 영역에까지 이르게 된다.

민주성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정치적 차원의 민주성은 많이 성숙되었을지 몰라도 사회내에서의 민주성은 아직도 미숙하다. 사회생활 속에서의 공중질서는 심하게 흐트러져 있고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하여 사회계층간 반목이 아직도 심화되어 있다. 전문성보다는 감성적 연고에 치우친 전근대적인 관용이 통용되고 정의로운 공정경쟁(fair competition)보다는 시기와 질투가 앞서는욕망적 인간관계가 난무하다. 한마디로 공정한 경쟁정신이 미숙한 것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첨단정보기술이 어떻게 성숙될 수 있겠는가. 기술과 문화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성공적인 기술의 인간화는 기술을 수용하는 인간사회의 질서에 달려 있다. 케이블TV의 수용력 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정의로운 기본질서가 이상적으로 토착되는 과정 속에서 케이블TV의 안정적 정착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미시적인 측면에서 케이블TV를 운영하는 경영적 인식에 관한 문제 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미디어 경영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이미 진부한 소재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상업성에 따른 문화적 역기능과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비판이 반복되지만 사회는 다양한 미디어의 존립을 인정하고 심지어 미디어 의존도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케이블TV와 같은 다채널 현상에 대한 상업적 속성을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수많은 비평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미디어의 공익적 기능이 결코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미디어의 공익기능이란 국민들로 하여금 사회생활에 필요한 정당성과 공정성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익기능의 요구와 기대가 채널의 증가로 인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중매체가 지녔던 대중적 차원의 공익성이 케이블TV가 지향하는 개인적 차원의 공 익성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상업성의 지배로 인해 공익성의 인식이 둔화되 어 버리기 쉬운 것이다. 때문에 케이블TV 경영의 이상적 목표는 가입자의 편익을 도모하면서 공익성을 근본으로 출발해야 한다. 상업성의 추구는 이윤극 대화에 매달린 경영으로 흐른다. 이윤극대화를 위해서는 장기적 안목의 투자 효과보다는 단기적 흥행효과에만 매달리게 된다. 그로 인해 단발적이고 일과성에 그친 자극적 영상물이 우선시된다.

체계적인 계획성과 여유있는 전문성의 육성 없이는 창의성 있는 영상물의 공급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우리의 실정에서 볼 때 케이블TV의 손익 분기점은 단기적으로 내다보기 어렵다. 기업적 사명감이 투철히 정착되지 못할 때, 그리고 전문성이 결여된 운영을 지속할 때 갈수록 대외개방의 폭이넓어질 무한경쟁의 현실 속에서 존립하기란 불가능하다. 케이블TV 사업은 단순히 경제적 우선논리에 치우친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서구문화에서 비롯된 케이블TV는 문화와 역사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우리나라에 정착되는 과정이 멀고 험하다는 이론적 결론이 내려진다. 케이블TV의 관건은 반드시 경제적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퍼스널 컴퓨터나 이동통신의 대중적 확산이 급증하는 우리의 현실을 지켜볼 때 뉴미디어의 사회적 수용의 잠재력은 매우 높다. 케이블TV의 장래는 이러한 맥락에서 낙관 적으로 볼 수 있다. 사회가 더욱 개방됨에 따라 개인주의와 다원주의가 팽배 해진다. 사회의 다원성이 정착될 때 다양하고 차별화된 전문적 문화취향의 요구가 자연스럽게 조성될 것이다. 케이블TV는 곧 문화의 다원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미디어임에 틀림없다. 단 그러한 충족은 다원적 욕구의 수준 에 상응하는 영상물이 제공될 경우에만 해당될 것이다.

국내 케이블TV는 사업적 출범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완의 불확실한 모습으로 비쳐진다. 이럴 때일수록 슬기로운 문제해결을 위해 관련자들의 지치지 않는 인내와 노력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현명한 결단이 필요 하다. 케이블TV를 잉태하고 출산하기까지 주무부처인 공보처의 보이지 않는산고의 고충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노고와 고심을 단순히 직무의 수행을 떠나서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결실은 바로 지금부터 나타나지 않나 싶다. 공보처는 기왕 허가제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한만큼 사업자에 대한 자율의 폭을 과감히 넓혀주는 제도적 결단이 요구된다. 즉 육성 의 차원에서 대외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경영의 자율성을 지금보다 확대시켜 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통제 차원에서 경쟁의 질서를 혼탁케 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는 케이블TV의 매체적 속성상 공정거래 여부를 감시하고 조정하는 소비자 차원의 보호기능을 의미한다. 육성과 통제 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은 어렵지 않다. 그 균형을 흔들리게 하는 관리적 편견이 개입하기 때문에 어렵고 복잡해지는 것이다.

한편 케이블TV 사업자의 새로운 각오가 요구된다. 제작비의 가중과 함께 광고시장의 확보가 불투명한 프로그램 공급자의 어려움은 인정된다. 그러나 한국의 케이블TV시장이 단순한 낙관론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었고 그러한 열악 한 상황 가운데 사업에 임하겠다는 사업자의 자질과 동기를 기준으로 하여 경쟁을 통해 사업자로서 선정되지 않았던가. 따라서 이들 초기단계의 사업자 야말로 한국의 케이블TV 정착에 사명감을 지닌 뜻있는 기업으로 기대를 던지는 것이다. 만약 제작에 임하는 투자의식이 결여된 집단이라면 사업자로서의 자격을 포기해야 한다. 일반국민의 수준도 높아져 공중파TV와 비교하여 대중 적으로 적당히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단호히 외면될 것이다. 케이블TV는 전문 채널로 구성된 매체인만큼 심층적으로 구성된 심도있는 프로그램만이 살아남게 된다. 따라서 철저한 전문성의 토대가 없으면 케이블TV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을 다져야 한다. 앞으로 한국의 뉴미디어환경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모될 조짐이다. 갈수록 지능적이고 정교한 컴퓨터와 통신의 기술적 융합이 전개되어 가고 비디오와 위성방송을 통해 해외 영상물의 노출기회도 증가되 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면밀히 분석하면 케이블TV에 부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필요하다 면 정부로서는 과감한 제도적 수정이 뒤따라야 하고 사업자로서는 경영활동 을 혁신적으로 전환시키는 적극적인 용단을 지금이라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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